소설가 박선진의 "올 봄, 진안고을 사람들 책바람이나 나볼까?"(25)

▲ 지음 : 한상복, 출판 : 위즈덤하우스
표지그림에 눈이 머문다. 이야기를 들리는 듯한 살아있는 표정이다.

“아저씨, 나랑 우산 같이 써요”

“뭐라구? 오 고맙구나. 꼬마야. 그런데 우산이 너무 작아서 너 혼자 쓰는게 나을 듯 싶은데. . . ”

“그래도 같이 써요”

“온 녀석도, 가만 있자.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꼬마야. 우산을 들고 내 등에 업히련? ”

“와 맞다. 그러면 우리 둘 다 우산을 쓰게 되는구나. 좋아요. 아저씨 업어주세요”

업자고 한 사람은 아이가 먼저였을 수도 있겠다.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두 사람의 같은 목적은 무얼까. 그건 나보다 상대방을 염려하는 마음이다. 바로 배려라는 아름다운 동기인 것이다.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나를 중심으로 굴러가야 한다. 나는 세상의 중심이다. 그러므로 제일 중요한 건 바로 나다.” 다름 아닌 이글을 쓰고 있는 나의 신조다. 나는 언제나 이렇게 생각한다.

나를 아는 사람이 ‘당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야’ 한다고 해도 나의 지향하는 바는 이렇기에 나는 조금만 부끄러울 수 있다.

이런 때 선물 받은 책이 ‘배려’ 라는 제목의 이 책이었다. 한가족으로 서로 닮은 성격 때문에 성장기에는 서로를 지독하게 미워할 수 밖에 없었던 나의 큰오라버님이 말썽 많던 둘째 여동생에게 보내주신 책. 그러니 “배려” 라는 이 책의 제목을 놓고 나는 거기 깔린 꽤나 심한 배려의 갈등을 겪었다.

인생 늦으막에 일자리를 얻은 철부지 동생을 배려하신 것인지- 아니면 우연한 일시적 감상이 동기가 되셨는지. 그런 갈등속에서 우선 읽는 것이 예의리라 싶어 다른 책을 제치고 손에 들었다

성공만을 목표로 모든 이를 경쟁자로 의식하고 달려가는 현대 직장인의 모습 속에 담긴 이 시대를 지배하는 절대적 가치와 한 때‘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라는 제목의 책이 베스트셀러 군에 들을만큼 우리네의 의식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생활의 가치가 이끌어 가는 모습들이 나란히 그려져 있다.

당신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세상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이며, 그 변하지 않음의 가치는 어디에서 오는가.

스스로를 위한 첫 번 째 행복의 조건 - 솔직하라.

세상은 창조자와 비평가로 채워져 있다. 그들의 모습은 일하는 모습에서도 드러난다. 창조자는 몰입하며 일을 즐긴다. 대신에 비평가는 힘들게 일하며 늘 불만스러워 한다. 그런데 세상은 창조자는 적고 비평가는 넘친다. 아이로닉하게도 비평가는 자신을 비평하기를 즐겨하지 않는다

당신은 어떤 쪽인가.

부모들은 대화를 하자며 아이들을 한데 모은다. 그러나 쉽게 대화의 물꼬가 트이지 않는다. 물꼬를 틀 기술을 알지 못하는데서 꼬이고 있는 것이다. 대화를 하자고 불러드린 부모는 침묵에 못이겨 교훈내지 잔소리를 늘어놓고 자리를 파한다. 그래도 부모의 마음 한곳에 대화를 한 열린 부모가 되었다는 약간의 안도와 자부심도 깃들일 것이고

부모는 그 때 아이가 어떤 눈으로 자신을 보는지 알려하지 않았다. 부모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자신이 아이였을 적에 바라보던 부모의 자리에 자신이 앉아있다는 사실을.

그러기위해서 , 옛날 아이의 눈으로 보는 자신의 모습을 보기위해서는 솔직해야 하는 것을 . 솔직하라.- 그것이 행복의 첫째 조건이다.

자신의 한계와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 그런 솔직함이 있을 때에만 남에 대한 이해가 시작된다. 혹시 당신 또한 ‘아스퍼거 신드롬’ 증후군에 속하지 않는지. 남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일종의 장애를 뜻하는 말이다.

자신에 대해 자신만이라도 솔직하고, 남의 관점에서 사물을 보기 시작하면 그 때서야 소통은 시작된다. 소통이란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 기본개념이니까.

그런데 가만 가만 이렇게 하다간 손해만 보는 것 아냐?

어떻게 사는 일이 꼭 나만 나 아니면 너만 인가. 같이 사는 방법은 생각할 수 없나?.

아무리 자본주의가 판을 쳐도 그것도 사람이 하는 일.

솔직함은 스스로를 위한 배려이고, 남을 위한 배려는 너와 나를 위한 배려인 것. 나아가서는 모두를 위한 배려가 될 터이니 . 우리 모두 그 모두가 아닌가.“ .

앞 못보는 이가 밤에 물동이를 이고 한손에 등블울 들고 길을 갔다. 마주친 사람이 물었다

“정말 어리석군요. 앞을 보도 못하면서 등불은 왜 들고 다닙니까?”

그가 말했다

“당신이 나에게 부딪치지 않게 하려고요. 이 등불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했다. 이게 배려다.

그러나 나는 당신을 위한 등불이라는 그 뒷말이 거슬린다. 그 말 없어도 마주 선 사람은 충분히 부끄럽다. 이래서 나는 배려가 잘 안 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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