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형 실버타운에 맞선 신토불이 실버타운 … 홍성은퇴농장

과거 국민의 정부가 ‘생산적 복지’를 추구했다면, 참여정부는 ‘참여복지’를 복지 이념으로 표방하고 있다. 이는 모든 국민에게 고루 복지 혜택이 가도록 하되, ‘퍼주기식 복지’는 지양하고, 수요자에게 찾아가는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의미다.
우선 복지의 폭과 대상을 확대해 전 국민의 안정적이고 질 높은 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보편적 복지와 보건과 복지에 대한 1차적 책임자로서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고, 그동안 정부 주도로 이루어졌던 복지정책의 형성과정에 국민이 주체로 참여하고 서비스의 선택과 제공, 평가 과정에도 참여함으로서 실질적인 ‘참여복지’를 실현한다는 것이 ‘참여복지’의 본래 취지다.

▲ 깻잎과 대파, 어린잎을 재배하고 있는 하우스
◆누구를 위한 시설투자인가?
참여정부가 들어서면 노인들을 위한 시설투자가 크게 증가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종합실버타운 건립이다.
하지만, 주거와 의료서비스를 함께 누릴 수 있는 종합 실버타운 건립은 농촌지역에 있어 또 다른 노인 소외현상 등의 문제점이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1억원에서 2억원 정도의 입주금과 월 150만원에서 200만원 정도의 사용료가 소요되는 종합실버타운은 고소득 노인들이 이용하는 시설로, 사회로부터 소외받는 노인들이 또 다른 노인소외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2억을 투자하고, 월 200만원 가까운 운영비를 부담할 수 있는 정도의 노인들은 최소 10억원 이상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정부의 시설투자 없이도 충분히 여가생활을 즐기며 생활할 수 있는 사람들로, 정부가 나서 소외된 노인들을 외면하고 이들을 위해 투자할 필요성이 있는지 의문이다.”

충남 홍성군에서 은퇴농장을 경영하고 있는 김영철(56)씨의 얘기다.
고소득 노인을 위한 지원이 아닌, 일을 통해 보람을 얻고, 또 함께하는 공동생활을 통해 생활의 즐거움을 찾겠다는 김씨의 생각은 실천으로 옮겨졌다.
  

▲ 어린잎을 손질하고 있는 박영애(농장주 부인)씨
◆일하면서 보람 찾는 ‘은퇴농장’
올해 77세의 강아무씨에게 홍성군 작은 야산 자락에 자리 잡은 ‘홍성은퇴농장’은 이제 제2의 고향이 됐다. 정든 교직을 떠나 매월 180만원 정도의 연금을 받는 강씨지만 이곳에서는 깻잎 수확을 걱정하는 소박한 농민이었다.

하루 5시간씩, 주 5일 근무에 연봉은 600만원 정도.
한달에 50만원 남짓한 벌이지만 숙식 등을 포함한 농장 이용료 35만원 정도를 지불하고도 20만원 가까이 남는다. 매월 지급되는 연금보다 훨씬 소중한 돈이다.

홍성은퇴농장(농장주 김영철, 57)에는 강씨처럼 도시에서 자식과 함께 살다가 시골로 내려와 인생의 마지막을 다시 설계하는 14세대의 노인들이 살고 있다. 교사에서부터 호텔지배인, 전업농 등 출신직업도 다양한 이들은 냉장고, 욕실, 싱크대, 텔레비전, 전화기 등이 갖춰진 7평(보증금 2천500만원), 10평(보증금 3천500만원), 14평(보증금 5천만원)짜리 원룸식 독채에서 독립생활을 즐긴다.

7천평 규모의 농장에는 비닐하우스 12동을 비롯해 텃밭과 농산물 가공시설 등이 마련돼 깻잎과 대파, 어린잎 등을 유기농으로 재배하고 있다.
홍성은퇴농장이 다른 실버타운과 다른 이유는 바로 일을 통해 보람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하루 5시간씩 주 5일 동안 수확 및 포장 작업을 통해 60, 70대 입주자들은 연간 약 500만원에서 600만원 정도의 수입을 올리고, 80대 이상 노인들도 100만원에서 150만원 정도의 돈벌이를 할 수 있다.
“일없이 한 달 내내 낚시를 즐긴다고 즐거운 노후생활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취미나 여가생활도 자신의 일이 있을 때 더 즐거운 법입니다.”

전원생활만을 즐기기에는 하루가 너무 길고, 일을 놓기에 60, 70대 노인들은 너무 젊다는 것이 농장주 김영철씨의 생각이다.

▲ 노인들이 생활하고 있는 원룸식 독채 내부 모습
◆일을 놓기엔 아직 젊다
1995년 8월에 문을 연 홍성은퇴농장은 올해로 꼭 12년째 은퇴한 도시 노인들에게 전원생활과 노동의 즐거움을 전하며 평화로운 노후를 보장해 주고 있다. 시설화되어가는 외국식 실버타운에 맞서 신토불이형 실버타운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노인들에게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김영철씨는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몇 년 전에는 절임류 생산에 도전했다가 7천만원 상당을 모두 땅 속에 묻어야 했다.

“너무 유기농을 고집했어요. 정부에서 시행하는 음식경영대회에서 동상을 차지하며 인지도도 높였지만 정작 물건을 구입해야 할 20, 30대들이 외면을 하더라구요. 간장도, 양념도 모두 조미료 없이 직접 만들었더니 담백한 맛을 있었지만 젊은 사람들 입맛을 따라가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유기농을 포기할 생각은 없어요. 유기농 만이 우리 농촌이 살아가야 할 길이니까요.”

그의 농장에서는 아직도 비료나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다. 깻잎을 갈아 먹는 진딧물을 없애기 위해 농약을 대신해 천적이 사용됐고,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은 하우스 주변은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리 잡고 있다. 12동의 비닐하우스에서 키운 유기농 채소를 판매해 연간 3, 4천만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으며, 6천여평의 텃밭에서는 양념거리를 생산, 가공 및 직거래를 통해 새로운 소득원도 창출해 나가고 있다.

“돈을 번다는 것이 액수를 떠나 입주자들에게는 정신적으로 건강해지는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입주자의 60%가 일을 통해 돈을 벌고 있고, 나머지 40%도 자급자족 형태의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부모님을 찾아뵙기 위해 이곳을 찾은 가족들에게 시골에서 유기농으로 재배한 건강한 농산물을 선물하기도 하고요.”

유기농산물 생산과 함께 그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다시 가공해서 새로운 소득원을 창출해나가는 것 또한 이곳에 입주한 노인들을 위한 은퇴농장의 구실이다.

1995년 8월에 문을 연 홍성은퇴농장. 그곳에는 농장주 김영철(57)씨와 그의 아내 박영애(51)씨, 그리고 올해 28이 된 막내 아들 김경수씨가 있었다.

자식 욕먹일 까 두려워 시설 입소를 꺼려하는 사회적 환경 때문에 아들, 딸이 모시지 않으면 결국 혼자 사는 것이 우리나라 노인복지의 현주소라고 지적한 김씨는 농촌지역에서는 지역 상황에 맞는 소규모 연계사업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현재 우리나라의 노인복지 정책은 20호 이상, 크고 한꺼번에 건립해야 지원이 가능한 상황입니다. 잘못된 정책임에도 바꿀 생각을 하지 않고 있죠. 농촌지역의 상황에서는 대규모 시설보다는 소규모로 연계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마을 경로당을 이용해 함께 잠을 청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마을 공동으로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농촌에서는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와 함께 지역별 특성에 맞는 특산품을 개발하고, 노인 인력을 활용한 수익사업 창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역 농업기술센터는 3박자를 모두 갖췄습니다. 생산과 가공을 돕고, 판매까지 할 수 있는 것이 농업기술센터입니다. 노인들의 인력을 활용한 특산품 개발은 무궁무진합니다. 염소를 사육해 중탕을 생산할 수도 있고, 토종닭을 이용해 마을의 대표음식으로 홍보할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고령화된 지역의 농촌인력을 이용한 수익 창출이 가능합니다.”

올해로 경영 12년째를 맞은 은퇴농장에서 변화가 생겼다.
전원생활과 노동의 즐거움을 전하던 은퇴농장이 이제는 노인들의 ‘케어’까지 담당하는 공간으로 바뀐 것이다.

“농장의 역할이 지금까지는 따뜻한 식사를 대접하고 그들에게 일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몸이 불편하면 병원으로 모시는 일까지였습니다. 그 이후는 가족의 몫이었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거동할 수 없는 노인들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10여 년 동안 이곳에서 세상을 떠난 분도 10여 명에 이릅니다. 함께 지내온 정 때문일 수도 있지만 함께 생활해 온 입주자들이 서로 ‘몸이 아파도 이곳을 떠나지 말라’고 부탁할 정도니까요. 이제 은퇴농장의 역할이 노인들의 아픈 곳을 돌봐주는 역할까지로 확대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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