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 이야기(10) 성수면 구신리(1) … (1)살골

▲ 마을 약도
성수면 구신리는 동쪽으로 백운면, 남쪽으로 임실군 관촌면을 끼고 있는 곳이다.
‘구신(求臣)’이라는 명칭은 조선 태조 이성계가 임실 상이암에서 진안 속금산으로 가다가 신하를 구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기록에서 전해진다.

구신리는 원구신, 상염북, 하염북, 장성동, 재골, 살골 등의 자연마을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이 가운데 이번 주에는 구신리에서도 가장 외딴곳에 떨어져 있는 시동마을(矢洞, 살골)을 찾았다.
마을 이름을 보면 이 마을이 화살과 관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록에 따르면 살골 뒷산 너머가 외궁인데, 외궁이 활이라면 시동은 화살에 해당하는 형국이므로 여기에서 마을 이름이 유래했다.

살골은 위치와 교통편의상 생활권이 임실군 관촌면으로 묶여 있다. 버스를 타고 20분 만 나가면 관촌면 시장에 갈 수 있다. 물론 병원에 갈 일이 있으면 관촌으로 향한다.

지금 살골에는 모두 다섯 집이 있고, 주민은 어린이를 포함해 15명이다. 한 때는 주변 산 언저리마다 집이 있었고, 골짜기마다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20여 년 전에는 주민 수가 50명이 넘었다고 하는데, 부자들도 꽤 있었단다. 그런데 지금은 많은 사람이 떠나 마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앞선다.

▲ 살골 마을 전경
◆내 하나 건너면 임실
살골에 가는 길은 두 갈래다. 하나는 백운면 덕현에서 구신재(구신치)를 넘고 원구신을 거쳐 들어가는 길이고, 다른 한 길은 좌산리를 거쳐 들어가는 길이다.

살골에 도착하면 먼저 마을 맞은편에 우뚝 솟아 있는 높은 산이 보인다. 산세가 예사롭지 않은데, 임실군에 속하는 고덕산이다. 그 아래 임실군 관촌면 고덕마을이 자리하고 있는데 살골과 내 하나를 경계로 이웃해 있다.

고덕마을 입구 근처를 잘 살펴보면 도로의 회전구간에 비교적 큰 나무가 서 있다. 그리고 그 옆으로 묘지 몇 기가 보이고, 도로 바로 옆에 파란 플라스틱 바가지가 놓여 있는 샘물이 있다.

샘물 오른쪽 위로 시선을 옮기면 비석이 보인다. 먼저, 선정을 베푼 고을수령의 은덕을 기리는 ‘영세불망비’가 보인다. 그리고 주변을 잘 살피면 영세불망비 말고도 비석 두 개를 더 볼 수 있다.

마을 입구에는 버스 정류장과 ‘시동마을’이라고 새겨진 비석이 마을의 존재를 알릴 수 있다. 이곳에서 마을 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야 살골이 나온다.
  
◆마을회관과 정자나무
살골 마을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난 길 끝에 집 두 채가 보인다. 예전에는 여러 집이 있었다고 하는데, 먹바우골이라는 고유 지명도 갖고 있는 곳이다.
여기에서 더 산 쪽으로 올라가면 비교적 넓은 공터가 나온다. 살골의 많은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담긴 공터다.

20여 년 전 이 공터에는 마을회관이 있었다. 많은 주민이 살았으니 여느 마을과 마찬가지로 이곳에서 주민들이 모여 마을의 대소사를 논의했다. 그러다 농로가 포장되면서 헐렸다고 한다.
마을회관이 헐린 뒤에는 마을에 사람이 줄어 특별히 마을회관이 필요치 않았다. 대신에 지금은 주민들이 모일 일이 있으면 마을 맨 위에 있는 윤용현 이장의 집에서 모인다.

또, 마을회관 옆에는 나이 많은 정자나무도 있었다. 마을 전통에 따라 당산제를 지내던 나무였는데, 기록에 따르면 일제 강점기에 땅주인이 나무를 베어냈다고 한다. 그 뒤에 마을에서 다시 정자나무를 심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길을 내면서 통행에 방해가 돼 할 수 없이 잘라냈다.
  

▲ 송귀남, 서귀례씨 부부가 갓 수확한 담뱃잎을 묶고 있다. 송귀남씨는 올해 담배 농사가 괜찮았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담배 수확 한창
살골에서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잎담배를 재배하는 밭과, 담뱃잎을 잔뜩 걸어두고 말리는 비닐하우스다.
주민들에 따르면 살골이 산간지형이어서 농사 대부분이 밭작물에 의존하는데, 이상하게도 콩은 잘 자라지 않는단다. 대신에 고추와 담배 농사를 많이 짓는데, 비교적 수익이 괜찮은 담배 농사 비율이 높다.

마침 마을 근처 하우스에서 담뱃잎을 묶고 있는 노부부를 만났다. 송귀남(76), 서귀례(73)씨 부부는 장마가 오기 전에 담뱃잎을 따서 말리려고 일을 서두르고 있었다.

“내일모레 비가 온다고 해서 서둘러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밭에서 모두 썩어버리거든요.”
“수확은 다 끝내신 건가요?”
“이거 다 걸어두고 또 밭에 가서 따야 해요.”

송귀남씨는 올해 담배 농사가 잘됐다고 말했다. 말로는 할 게 없어서 담배 농사를 짓는다고 했지만, 그래도 담배 풍년을 맞은 농부의 마음은 성공한 자식을 바라보는 그것과 같은 모양이다.
  

▲ 살골 공동 우물
◆물이 부족해 늘 걱정
마을 이곳저곳을 둘러보아도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모두 어딘가로 농사일을 하러 나간 모양이다. 아마도 본격적인 장마가 오기 전에 해둬야 할 일이 많은 모양이었다.
그러다, 외양간에서 황소 두 마리가 한가로이 누워있는 집에 들렀다. 인기척을 하니 안에서 젊은 청년이 나왔다.

“교통 요지여서 오가는 사람도 많고 부자도 많았어요. 게다가 인심도 많은 곳이 우리 마을이에요.”
윤기수(31)씨는 마을에서 가장 젊은 청년이다. 이날 윤씨는 밭에서 농사일을 하다가 점심밥을 먹고 나가려고 집에 들렀다고 했다.

“사람들이 없어 적적하다는 것 말고는 참 살기 좋은 마을이에요. 다만, 가뭄이 들면 농업용수는 물론 식수까지 부족해져서 불편하죠.”

살골 한쪽에는 지금도 사용하는 공동 우물이 있다. 지금은 우물 안에 물이 가득 고여 있는데, 올해는 물이 크게 부족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옛날 살골은 이웃한 신기리 세 개 마을과 함께 용덕산 날망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전해진다. 나무를 한 다발씩 짊어지고 가서 마치 달집태우기 하듯 불을 피우고 연기를 냈다. 또 돼지를 잡아 피를 뿌리기도 했다.
  
◆마을 앞 교통안전 시설 필요
이 마을 앞 도로에서는 수년 전 두 차례의 교통사고가 있었다고 한다. 한 번은 아홉 살 어린이가 차에 치여 숨졌고, 10년 뒤 오토바이 사고로 운전자가 숨졌다.

 마을에서는 무당을 불러 굿을 하며 마을에 사고가 없기를 기원하는 한편, 행정기관에 교통사고 방지를 위한 시설 설치를 요구했다. 하지만, 행정기관에서는 건널목을 그려놓는 것으로 일을 마무리했다고 한다. 마을에서는 과속방지턱 같은 더 효과적인 시설물을 원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현감 유원규 영세불망비
살골에서 임실군 관촌면 고덕마을 입구를 표시한 비석 맞은편을 보면 우거진 풀숲 사이로 비석이 눈에 띈다. 모두 세 개인데, 그 가운데 ‘현감 유원규 영세불망비’ 하나가 잘 보존되고 있었다.
나머지 두 비석 가운데 하나는 아랫부분이 부러져 기단석에 기대놓았고, 나무 밑에 있는 다른 비석은 많이 자란 풀과 넝쿨 때문에 눈에 잘 보이지 않았다.
영세불망비에 관한 내용은 아래쪽에 문화원이 세운 비석에 잘 나와있다.

『이 비는 고을수령의 선정을 기리는 영세불망비로 1892년 8월에 주민들에 의하여 건립되었습니다. 비의 주인공은 1892년 4월에 진안현감으로 부임하여 1893년 11월에 보성 군수로 전임하였습니다.
비명의 옆에는 민지망의(民之望矣) 청백위경(淸白爲慶) 연멸지호(捐滅之戶) 견호지부(   護之賦)라 각자 되어 있습니다. 호구세를 부담하는 호수(戶數)를 정리해 주고 조세를 공정히 집행함으로써 백성을 보호했다는 뜻입니다…. (중략)…. 불망 비가 세워진 이 자리는 예전에 진안, 임실을 잇는 주요 교통로였으므로 이 길 모퉁이에 세워진 것으로 보입니다…. (중략)』

비석의 내용만으로도 살골이 예전부터 교통의 요지였을 거란 짐작이 가능하다. 보통 교통 요지는 상업이 번창하고 사람이 모이게 마련인데, 살골 역시 예전에는 그러했을 거라고 마을 주민들은 얘기했다. 하지만, 마을 사람 대부분이 떠난 현재 살골의 모습에서는 예전의 번창했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어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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