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 이야기(11) 성수면 구신리(2) - (2)염북마을(상염북.하염북)

▲ 상염북에서 밭에 일을 나가던 송주옥씨를 만났다. 송씨는 깻잎모를 가져다 밭에 옮겨 심을 참이었다. 송씨는 무엇보다 폐광에서 흘러나온 비소 때문에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며 행정당국의 조치를 바랐다.
성수면 구신리 한가운데 있는 마을이 염북마을이다. 염북마을은 다시 상염북과 하염북으로 나뉘는데, 이 가운데 하염북은 새로 생긴 마을이라고 해 ‘새뜸’이라고 불린다.
‘염북(念北)’이란 마을이름은 ‘임금이 계시는 북쪽을 생각한다.’라는 뜻으로 상염북에 있는 충목(忠木)에서 비롯됐다고 전해진다.

현재 두 마을에는 모두 30가구 정도가 살고 있는데, 예전에 비해 인구가 많이 줄었다. 주민 대부분이 노인이고 몇몇 젊은이가 마을을 지키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지만, 옛날 북적북적했던 마을의 모습을 다시 기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염북리는 예전부터 담배농사가 많던 곳이다. 하지만, 지금은 노인들이 많아 손이 많이 가는 담배농사는 모두 포기했다. 대신 고추 같은 밭작물과 벼농사가 반반 정도 된다.

◆염북리 장사 ‘고추장’
염북리는 무주와 장수로 가는 가장 빠른 길목에 있어,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던 곳이다. 그래서 이 마을 아래쪽으로 여러 주막이 성업했다. 지금도 나이 많은 마을 주민들은 어렸을 적 당나귀를 타고 오가는 많은 장사꾼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마을에는 60∼70가구가 살았다고 한다.

이런 주막거리가 성업했을 당시 ‘고추장’이라는 이름의 장사(壯士)가 있었다. 당시 이 사람은 마을에서 소금을 배달하는 장사꾼이었는데, 마을에 건달이 창궐하자 모두 힘으로 제압해 주막거리의 안정을 되찾았다.
이후 마을 주변에서는 건달패를 찾아볼 수 없었고, ‘염북리의 고추장’이란 이름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수해에 떠내려간 충목정
상염북 어귀에는 나이 많은 나무 여럿이 숲을 이루는 곳이 있다. 이 가운데 가장 큰 나무가 ‘충목(忠木)’인데, 나라에 위기가 닥치면 변화가 생긴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염북이란 마을 이름도 이 나무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이 숲에는 ‘충목정(忠木亭)’이란 이름의 정자가 있었는데, 나무의 충정을 기리기 위해 옛날 마을 주민들이 세운 것이다.

그러나 이 정자는 지난해 수해로 물에 쓸려 내려갔다. 마을 주민들은 정자 지붕의 무거운 너와를 걷어내고 가벼운 동판으로 교체해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후회하고 있지만, 지은지 오래된 정자가 당시의 물살을 견뎌내기는 힘들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주변 산이 모두 군유림인데, 나무를 모두 베어내서 물이 불어났던 것 같아요. 게다가 저 위 절골에 폐광이 하나 있는데, 그 앞에 쌓아둔 폐석이 큰비에 쓸려 내려와 다리 아래를 막으면서 물이 마을로 넘쳤어요. 다행히 집이 침수되는 일은 없었지만,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충목정이 떠내려간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죠.”

충목정이 수해에 떠내려가고 행정기관에서는 다시 지어주겠다고 했지만, 아직은 소식이 없다. 그렇다고 마을에서 십시일반 돈을 모아 지을 수도 없는 형편이다. 대부분이 농사짓기도 힘이 드는 노인들이기 때문이다.
  
◆폐광에서 유해물질 나와
지난해 수해로 마을이 해를 입은 것은 충목정 뿐만이 아니다. 폐광에서 흘러나오는 독성물질 때문에 농지가 오염된 것이 무엇보다 큰 문제다.
절골에 있는 이 폐광은 일제 강점기에 금과 동을 캐던 곳이었다. 노인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당시 절골에는 광산 노동자들이 묵던 집이 여러 채 있었고, 광산 운영을 위한 전기가 인근지역에서는 처음으로 공급되기도 했다.

그런데 해방이 되고 일본인들이 물러가면서 이 광산은 아무런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폐광에서는 비소 같은 독성물질이 물에 섞여 마을로 흘러왔고, 물이 흘러들어간 논과 밭은 사용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게다가 폐광 앞에 쌓아둔 폐석까지 비에 쓸려 내려와 물길을 막아 마을에서 입은 피해가 더 컸다.
“비소가 검출되고 나서 있던 흙을 걷어내고 새 흙을 다시 깔았는데, 안심할 수 없는 노릇이죠. 농작물을 수확하면 반드시 성분검사를 받아야 해요. 유해물질이 검출되면 모두 폐기해야 하죠.”(송주옥, 72)

겉으로 보기에 염북마을은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지만, 정작 마을의 젖줄 같은 하천은 폐광 때문에 오염돼 있었다. 물론 마을에서는 수차례 행정기관에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했지만, 속 시원한 답변을 들은 적이 없단다. 일부 주민들은 진안군 외곽지역에 마을이 있어 행정이 관심을 두지 않는다며, 차라리 임실군에 편입되는 게 좋겠다고 이야기할 정도다.

▲ 하염북에 있는 옛 성신분교 폐교. 지금은 개인 사업자가 사들여 보수공사가 한창이었다. 하염북 주민들은 이 학교가 문을 닫을 즈음에 마을이 쇠퇴했다며 안타까워했다.
◆학교 문 닫고 주민도 떠나
하염북은 상염북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집도 몇 채 남지 않았다.
“어렸을 때 15집 정도 살았는데, 학교가 문 닫고 주민들이 떠났어요. 지금은 너무 적적해요.”
하염북에서 나고 자라 결혼까지 한 이정림(84)씨의 이야기다. 69세 때 남편을 여의고 지금은 혼자 살고 있다. 몸이 아파 많은 일을 할 수 없어 마당에 고추 조금 기르는 게 전부다. 요즘은 낡은 집이 적은 비에도 물이 새 걱정이다.

이정림씨에게는 아들 넷이 있지만, 모두 생활이 어렵단다. 그래서 아들네 집에서 지낼 엄두가 나지 않는단다. 게다가 아들이 있어 국민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받지도 못했다. 국가에서 지원받는 것은 고작 버스비 몇만 원뿐이란다. 경제적으로 너무나 힘이 든다.

이런 이정림씨에게 가장 힘든 것은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마을회관은 걸어가기에 먼 상염북에 있어 몇 명 남지 않은 마을 사람들이 모일 곳이 없다.
“그래도 학교가 있을 때는 괜찮았어요. 오가는 사람도 있었고, 아이들 웃음소리도 있었어요. 그러다 점점 사람이 떠나면서 마을이 마을 같지 않아요.”

▲ 마을 약도

▲ 충목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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