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인옥씨
정   인   옥  씨

안천면 신괴리 괴정마을 출신

전 업 주 부(專業主婦)

용산구 한남1동 96/3. 신성미소시티801호

(탤런트 윤은혜의 어머니)

 

가슴 찡한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를 엮어 우리들의 가슴에 잔잔한 감동과 진심으로 감동하는 진한 눈물을 우리들에게 보여주게 하였던 《연탄 길》의 이철환 작가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메시지를 전한다.
「나팔꽃이 피어있던 자리에는 누가 다시 씨앗을 심지 않아도 이듬해에 나팔꽃이 다시 피어납니다. 여기 주인공들의 사랑은 그 사랑을 닮은 다른 사랑으로 다시 태어 날거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인식이 우리의 삶을 설명 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인식 자체가 반드시 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버스나 배로는 철도 위를 달릴 수 없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철로를 깔아놓으면 우리의 마음속을 달릴 수 있는 것은 오직 기차 뿐 입니다.」

한사코 면담을 사양하는 정인옥씨에게 고향의 이야기를, 또는 그것들이 본인에게 내 세울 수 있는 직접적인 이야기는 아니라 하드래도 항간에서 국민여동생이라고 까지 일컬어진다는 탤런트 윤은혜, 그의 외가(外家)쪽이 우리의 고향 진안이라는데 어째 아무 이야기 거리가 되지 않겠는가 하고 바짝 다가앉았다. 필자가 서투른 솜씨로 조사해 간 자료를 내 민다.

윤은혜, 가수로, 탤런트로, 또 영화배우로 우리에게 이미 가깝게 익숙해져 있는 그녀다. 잠꼬대를 잘 해 그의 별명은 꼬대. 푸우. 아줌마. 또는 소녀 장사로도 통한단다.
1998년 SBS가요제전 신인가수상. 가요대전 인기상. 스포츠 서울 가요대상 신인상. 1999년부터 2005년까지 그룹 베이비 복스의 최연소 후진 멤버로 출발하여 그 해에 제10회 서울가요대상 최고가수상을, 2002년에는 SBS대전 본상으로, 2003년에는 코리안 뮤직 어워드(KMA)에서 올해의 가수 상을, 2006년에 들어서 그리메상 최우수 여자 연기상, MBC연기대상 여자신인상, KBS연기대상 신인연기상, 베스트 커플 상, 전국촬영감독들 투표에 의한 아미에상(여).

이것들 모두가 문외한인 필자의 눈으로 볼 때에도 대단한 수확임을 짐작 할 수 있겠는데 본인이 아니라 하지만 거기까지 오는 그 동안의 엄마의 뒷받침과 그 치맛바람은 또 오죽 했겠는가 하고 들이밀어 본다. 정인숙씨 그녀는 도무지 긍정하는 기색이 아니다. 필자 모르는 척 그냥 윤은혜 예찬을 계속한다.

2002년 긴급조치19호로 출발하여 카리스마 탈출기의 한민주역의 영화 쪽 이야기. 쩐에죽고 쩐에 산다는 금전예찬론자 이지현으로 분한 포도밭 그 사나이. 교복치마 속에 추리닝을 입고 다니며 비속어를 남발하는 판타지적 가상 역사만화를 원작으로 한 「궁」에서의 명랑소녀 신채경으로 분한 윤은혜의 명랑 병 황태자비 이야기에 이르자 정인옥씨가 비로서 반응을 보여 대화에 참여한다.

그리고 현재 윤은혜가 출여하고 MBC에서 저녁 10시에 방영되고 있는 월, 화 드라마 「커피프린스1호점」에 이야기가 미치자 정인옥씨 그녀의 눈빛이 빛난다. 이선미 작가의 동명소설인 이 작품에서 윤은혜의 역은 고은찬이다. 초록빛 청춘들의 사랑과 꿈을 그린 희망찬 이야기 속에서 우리의 고향사람 윤은혜씨는 철없는 엄마와 동생을 부양하며 살아가는 소녀 가장이다. 먹고 살기에 바빠서 남자 여자 상관없이 살아가는 스물네 살의 꽃다운 남장처녀역이다.

그런 그녀에게 정말 여자이고 싶어 하는 사랑이 찾아온다. 남장 여자로 명동을 걸으면 여학생들의 비명과 플래쉬에 시달리지만, 알고 보면 은찬(윤은혜분)은 기합소리로 다져진 걸걸한 목소리와 의협심, 그리고 무술실력으로 다져진 허름한 옥탑방의 씩씩한 소녀 가장이다. 앞으로 안방극장 극중에서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으로 하고, 이제 이쯤에서 소녀 같지 않은 소녀, 윤은혜의 이야기에서 시선을 돌려 연예인 엄마 같지 않는 연예인 엄마, 정인옥씨를 만나 보기로 하자.

필자의 편견이었을까? 모시고 있는 시어머니의 병시중을 들다 나온 정인숙씨는 여느 우리 주위의 전업주부의 그 모습에서 하나도 다른 것은 없었다. 다만 유명 탤런트를 딸로 갖은 그녀의 조심성 곁에는 그 딸의 주의를 지키려는 엄마의 그 기도하는 마음의 그늘은 그녀도 그가 다른 여자와 하나도 다름없는 우리의 그 엄마인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고향에서 정병진씨와 전재숙씨를 아버지와 어머니로 하여 5남1여, 육남매의 양념 딸로 그녀가 태어난 것은 1958년 이였다. 집안형편도 남부럽지 않을 만큼 살았고, 그녀는 부모와 형제들의 귀여움도 한 몸에 받으면서 안천초등학교, 안천중학교, 전주여상을 졸업하고 당시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하여 그의 후견인 역을 담당하던 둘째오빠의 조언에 따라서 서울의 회계사무소에 취업한다.

그녀의 나이 스물세 살. 그녀의 운명적 그림자를 그녀가 만난 것은 교회의 청년집회에서였다. 남편 윤여훈(완주고산.51세)씨는 그녀가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도 다시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그녀는 그렇게 필자와 대담 중 처음으로 얼굴을 붉힌다. 그들의 사랑은 그렇게 험곡과 반대를 겪으면서 월세 살이 4년의 인고와 10년 전세살이의 그 질곡(桎梏) 속에서, 열일곱 번의 이사 속에 서도, 그 사랑 때문에 지나 간 그 세월의 아픔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노라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회고한다.

우리의 고향사람 정인옥씨, 그리고 그녀의 잘 자란 우리의 딸 윤은혜씨.
삼년 전 돌아가신 그녀의 엄마가 고명딸을 생각하며 가슴에 박힌 대못 같은 그 한을 찾아서 살아생전 나팔꽃을 울타리에 심으면서 가꾸시던 거기를 찾아서, 그 고향, 그 시골 집,그 장독대의 곁에 심어 있을 백일홍도, 분꽃도, 그리고 또 더 많은 울밑의 봉숭아꽃도 엄마의 손길로, 엄마의 얼굴로 기억할 것이다.
[정인옥씨 전화번호 010ㅡ5520ㅡ9998]
/서울취재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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