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찬팀을 구성하다

/호남한의원 전창기“중국 의서의 잘못을 바로잡아 믿을 만한 의서를 만들어라.” 의학 이론과 처방의 잘못을 바로잡고 올바른 처방만을 가려 뽑는 일은 엄청난 의학적 식견을 요구한다. 누가 그 일을 해낼 수 있을 것인가? 의학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다면 과연 당대 중국 의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감히 그것을 해결하라는 주문을 내릴 수 있었을까? 설사 그런 수준을 갖추고 있었더라도 당대 중국 의학의 잘못을 시정하는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따라서 동의보감 편찬팀은 당대 최고의 명의가 망라되었다. 동의보감 서문에서는 편찬작업이 시작되던 때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짤막하게 기술하고 있다. 병신년(1596)에 ...... 허준이 선조의 명을 받고 물러나 유의 정작, 태의 양예수, 김응탁, 이명원, 정예남 등과 함께 기구를 설치하고 편찬을 시작하여 ...... 새 의서 편찬작업에 허준, 양예수, 정작, 김응탁, 이명원, 정예남 등 여섯 명이 뽑혔음을 알 수 있다. 조선에서 의서 편찬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참여한 경우는 별로 없다. 오직 세종 때 편찬한 좪의방유취좫만이 예외이다. 이때에는 열 명이나 되는 의관과 문관이 참여하여 처방을 분류하고 편집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좪의방유취좫는 애초에 365권으로 편집된, 당시 동아시아 최대 규모의 의서였다. 역시 규모가 큰 의서인 좪향약집성방좫을 편찬할 때에는 의관과 문관 세 명이 참여했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볼 때, 의학 전문가 여섯 명이 동원된 새 의서 좪동의보감좫의 편찬 규모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만하다. 이 여섯 명은 궁중과 민간을 아울러서 뽑은 당시 최고의 재원이었다. 수장을 맡은 허준은 임금을 호종하여 의주까지 간 어의로서 진맥 책인 찬도방론맥결집성의 오류를 교정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정작(1533-1603)은 그의 형 정렴과 함께 당대 최고 수준의 단학 수련가이자 시인으로 평가받던 인물이다. 민간의 유의까지 포함시킨 데에는 새 책 편찬에 의학에 밝은 사람을 모두 망라하려 한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양예수는 명종 때의 어의 정경선이 지은 좪의림촬요좫를 교정할 만큼 당대 최고 수준의 명의로 손꼽히던 인물이었다. 어의 김응탁은 왕세자의 병을 고쳐 의술을 인정받은 바 있고, 이명원도 어의로써 노련한 의사로 평가를 받았다. 정예남은 잡가 출신 시인 여섯 명 중 한 사람으로 문필력이 상당한 인물이었고, 김응탁과 함께 왕세자 진료로 공을 인정받은 바 있다. 선조의 명을 받은 허준은 이렇듯 당대 최고의 의원들로 구성된 호화스러운 팀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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