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향 사 람

▲ 김동수씨
김 동 수씨
백운면 노촌리 下美마을 출신
한강로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
공인중개사
재경 백운중학교제1회동창회장
평장초등학교제8회동창회장
재경 백운면향우회 총무

넓은 벌 동쪽 끝으로/옛 이야기 지줄 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얼룩빼기 황소가/헤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ㅡ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짚 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ㅡ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파란 하늘빛이 그리워/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풀 섶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던 곳/ㅡ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사철 발 벗은 아내가/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ㅡ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서리 까마귀 우지 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곳/ㅡ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1927년대 암울했었던 그 시대의 조국을 떠 올리며 읽어보는 정지용 시인의 향수(鄕愁)는 인간의 마음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그 모습위에 가슴에 그려지는 고향의 영상을 추억으로 돌아가는 아름다움으로 안내 한다. 거기에는 참을 수 없는 강한 정서적 호소와 감각적 끌림이 함께 우리의 육친애(肉親愛)와 성장과정의 원초적 정경을 추억케 한다. 오늘 우리에게 고향이 의미하고 있었던 가난의 어려움을 넘어 그 곳은 평화와 정겨움으로 포장된 낙원의 모습으로, 농경사회를 떠나와 산업사회에서, 더 나아가 정보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이지만 우리로 하여금 인간의 근원(根源)의 위치(位置)를 파악하게 한다.

이 맘 때 이 계절이 되면 괜히 서러워 지는, 그래서 문득 떠오르는 고향 생각에 잊고 있었던 뒷동산이, 실개천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우리 인간에게 존재의 원천이자 삶의 안식처였던 고향으로 향하는 그 마음은 우리에게는 잊고 있었던 어머니의 숨결이다. 각박한 도시의 객지생활에서 소박한 정의 의미와 그 속에 숨겨져 있는 향수를 우리는 잊을 수가 없다. 이렇게 다가오는 가을의 남새가 문득 많은 생각들을 그리움으로, 그 시골마을의 굴뚝에서 피어오르던 저녁연기처럼 가슴에 아리게 뭉쳐온다.

김동수씨. 그라 하여 고향의 그 것에서 예외일수가 없었다. 그도 그의 가슴에 새긴 향수의 추억은 인간으로 돌아가서 그렇게 기억할 수밖에 없었다고 실토한다.
마을 형국이 미인단좌(美人端座)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 하미(下美)마을이다.

김동수씨는 아버지 김평연(76세)씨와 어머니 전갑순(68세)씨 사이에서 1960년6월에 4남1녀의 장남으로 태어나서 고향의 평장초등학교와 백운중학교, 그리고 이웃면의 마령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가 청운의 꿈을 안고 고향을 떠나기 까지 그렇게 깔(꼴)베어 작두질 하며,소죽 끓이고, 소 풀 뜯기며 목가처럼 그렇게 자랐다.

1981년 입대하여 84년 6월 포병하사로 전역한 그는 9월 불안한 객지인 서울 그 미지의 그 바다에 뛰어든다.
영등포의 광명기계공업주식회사의 3년은 엉겁결에 세월을 익히느라 정신없이 보낸 시절 이였다면, 천호동에서의 (주)대아공전의 2년은 자신의 인내를 시험하며 장남으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인식하는 약간은 서러운 세월 이였다. 장남의 위치를 인식하며 앞서 가려는 그를 이끌어 주는 안내자가 없어 보이지 않는 그야 말로 미로 같은 캄캄한 길이였다.

제주도 현지에서 노동판의 일꾼으로 작업 중에 눈에 들어 스카우트되어, 무대의 기계조작과 관리(오프 레이팅)책임자로서의 제주 로얄호텔의 3년. 다시 (주)대아공전에 복직되어 4년. 문산의 (주)청도주택 4년의 공무과장 시절. 다시 서울에서 (주)태웅식품 영업실장 6년. 그가 거쳐 온 인생의 길고 긴 발걸음들이 어쩌면 그의 운명에 끼워져 있는 역마직성의 원인인갑다고 그렇게 인정하는데 그도 망설이지 않는다.

재수 끝에 얻어진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들고 이제 그는 다음 인생의 항로를 시작한다. 그것은 그가 살아 온 인생의 수정이고 운명에 관한 도전일 수도 있다.
그는 1989년에 중매결혼 하여 1남1여를 낳아 지금까지 잘 길러 준 그의 아내 유정임(마령출신.46세)씨에게는 인생의 나그네 길초에서 어렵게 만나 반려하는 동반자로서 고맙고 미안한 부채의무(負債義務) 같은 마음을 항상 갖고 살아간다. 가끔씩 기념되어야 하는 기념일이 되면 잊지 않고 자신이 스스로 만든 떡볶이, 돼지볶음, 김치전, 호박전을 맛있어라 먹어주는 가족들이 항상 고맙고 대견하다.

결혼 이후 셋방에서부터 어렵게 시작하여 말없이 고통을 인내하며 살아 온 그의 아내에게 김동수씨는 그가 서럽고 외로울 때면 불러쌓던 사랑의 18번 「보고싶은여인」을 보낸다고 했다.
우리의 고향사람 김동수씨. 그는 언제인가 그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어떻게 사는 삶이 가장 멋있고 보람 있는 삶 일가. 그는 그것을 고민한다. 그는 씩씩하고 굳세게, 겁내지 아니하는 용기를 갖고 세상을 살고 싶어 한다.

용기란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바른 행동임을 그는 주장한다. 용기란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시도하는 것임을 우리 모두 그에게 전해 주자.
김 동 수 씨 연락번호 ; 018ㅡ252ㅡ5694
/서울취재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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