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한가위 밑 장 풍경>
물건 값 깎으려는 손님과 상인의 기분 좋은 실랑이
추석에 볼 가족 생각하며 웃음꽃 만발

▲ 바다를 옮겨놓은 것 만큼 다양한 생선이 펼쳐져 있고, 고르는 재미로 이것저것 물건을 선택하고 있다. 대목 장 답게 사람이 붐볐다.
추석 대목을 앞둔 19일은 우리 고장 진안읍의 장이 서는 날이다.
목욕탕에 갔다. 3천 원을 내고 들어갔다. 어린 시절 큰 대야(‘다라이’라고 부르던)에 펄펄 끓인 물을 반쯤 붓고 찬물을 부으며 온도를 맞춰 목욕을 하게 하던 어머니의 소리가 들린다. 그땐 왜 그리 목욕하기가 싫었는지. 설과 추석에 대대적으로 하던 목욕도 이내 어머니의 고함과 빗자루를 드는 모습까지 보고서야 목욕을 했던 기억이 난다. 큰일을 앞에 두고는 목욕하던 선인들의 의기찬 모습을 연상하기도 하며, 모든 정성을 들이고자 자신의 몸을 먼저 씻던 도공의 의연한 모습을 연상하기도 하며, 내 고향의 물에 내 몸을 씻었다.

4천 원을 내고 콩나물 해장국으로 아침 허기를 채웠다.
남쪽에서 태풍이 올라온다고 하며 저녁 무렵부터 비가 온다고 예보하고 있으나 아침은 날이 참 좋다.
쌍다리 부근은 일찍부터 시끌벅적 이다. 30여 년을 지키던 옛 영화칼라현상소 자리에 전기·전자제품 판매점이 개업하는 날이다. 또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보세제품을 판매하는 곳도 개업한다. 두 집이나 개업하니 오늘이 정말 대목을 앞둔 날이긴 한가보다. 어제도 경양식집 한 곳도 새 주인을 맞이하고 개업했다. 활기를 느끼니 기분이 좋다.

어디부터 시장이라고 말하기가 어렵게 읍내는 차와 사람으로 붐빈다. 지역민이 말하는 뜨내기 장사꾼들은 이른 아침부터 임의적인 자기 자리에 텐트를 치고 물건을 진열하고 있다. 간간이 가격을 물어보는 손님들과의 흥정도 이어진다.

새벽같이 나와 머리(아마도 뽀글뽀글 파마겠지)를 하고 색색의 보자기로 머리를 감싼 채 장을 보는 할머니들의 모습이 재밌다. 누가 물어보지 않았는데도 “우리 셋째 아들 큰 아이 줄려고 그래”라며 물건의 사용처를 설명하는 할머니의 얼굴엔 환한 미소와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걸려있다.

수입 조기 20마리에 1만 5천 원을 받으려는 생선 파는 아줌마와 1만 1천 원만 받으라는 할아버지의 실랑이가 벌써 5분째 계속되고 있다. ‘안 팔면 될 텐데….’‘안 사면 될 텐데’하는 생각은 뭘 모르는 이야기이다. 결국, 할아버지의 승리로 마무리되며 많이 팔라는 말과 추석 잘 보내라는 덕담이 오간다.

밤 1되에 3천 원을 받고 파는 아저씨는 동네에서 주운 것이라며 맛이다고 자랑이시다. 옆에 자리한 다른 아저씨는 직접 기른 것이라며 배 8개에 1만 원을 받고 팔며 꿀맛이라고 자랑이시다. 요즘은 꿀이 진짜 꿀을 찾기가 어렵다고들 하는 말과는 별개로 맛있는 것에는 거의 꿀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꿀 사과, 꿀 배, 꿀 빵, 꿀 포도….

가장 분비는 데는 역시 생선 파는 곳이다. 꽁꽁 얼은 동태들은 납작한 포가 되어 소비자에게 건네진다. 아마도 부침개 용도일 것이다. 가격을 부르는 것에 맞춰 포를 떠준다고 한다.
가격 흥정에 지친 사람들이 시장터 한가운데 도넛츠 판매점에 오면 군소리 없이 돈을 내며 사먹는다. 아저씨가 만들고 아주머니는 튀겨내거나 쪄낸다. 4개에 1천 원을 받는데 2천 원어치 이상사면 잘못 센 것처럼 꼭 한 개 정도는 더 들어간다. 알아서 더 주는 ‘정’이다.

“맛있는 놈이여?”“그려”“이놈이 맛있는 놈이여?”“그렇당께”“이놈 하나 더 줘”“안되야”“그냥 줘”“이러면 손핸디….”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 하는 말이 떠오른다. 흥정은 과정이 과해도 결과는 행복이다.
방앗간을 찾았다. 기계를 손봐야 한다며 잠시 손을 놓고 있는 주인은 “설 대목보다는 추석 대목이 원래 더 큰 거여”라며 기대를 표하면서도 “사람들이 많이 떠나서 그래도 예전 만은 못해”라고 말한다.

휘영청 밝은 둥근 보름달을 바라보며 이날 같기만을 기원한 우리 어르신들의 기원에는 부족함이 없는 충만함도 포함되었겠지만 노력하여 얻어지는 결과가 또한 그리 가득하기를 기원하는 것이리라. 진안 내 고향 사람들의 하루하루 삶이 활기 띤 추석 대목 장처럼 언제나 행복하기를 바라며 주섬주섬 산 물건들을 고쳐 잡으며 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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