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향 사 람

▲ 이선구씨
이선구씨
안천면 백화리 下梨(하배실)마을 출신
생명1급부분공업사 대표
안산모악회 회원/백화초등학교 제3회 동창회장
전국자동차경정비협회안산지부 총무
TEC(자동차기술교류협회) 회장
안산시환경감시원/에버그린21 회원
안산시호수지구대자율방범위원회 부회장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 하나, 제우스가 프로메테우스(먼저 생각하는 사람)에게   명령하기를 인간을 만들고  인간에게 모든 것을  주어도 좋으나 불은 인간에게 주어서는 아니 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의 명을 어기고  제우스가 금지한 불을 인간에게 선물하여 제우스의 응징을 받는다. 제우스는 인간을 없애기 위하여 판도라라는 예쁜 여자를 만들고 프로메테우스의 동생 에피메테우스(나중에 생각하는 사람)와 결혼을 시킨다.

판도라는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을 위해 인간의 모든 고난과 악행을 모아 담아서 에피메테우스에게 맡겨 둔 상자를 열고 그것들(인간의 고난, 악행등)을 세상에 모두 퍼져 내 보낸다. 그렇게 인간의 고난, 악행이 모두 세상에 퍼져 나갔으며 푸로메테우스의 의 선견지명(先見之明)으로 상자 안에 마지막으로 한 개 「희망(希望)」을 넣어서 남겨두게 된다.

그것은 인간이 세상을 살아 갈 때에 아무리 힘들고 고생스러워도 희망을 잃지 말고 살아가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소망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라는 그런 의미였을 것이다. 희망도 소망도 잃은 사람은 이 이상 세상을 살아 갈 이유, 그 가치가 없는 무의미한 인생이라는, 신(神)이 우리 인간에게 보내는 한 개 멧세지였을 것이다.

우리의 고향사람 이선구씨가 살아 온 그 인생의 여정을 보면서 우리는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은 절망(絶望)이라고 설파한 키에르케고르의 말을 깊이 생각하게 한다.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의 이선구씨의 삶이 그랬다. 그는 아무리 힘이 들어도 그의 마음에 절망이란 애초에 없었다. 자수성가(自手成家)라는 희망을 마음에 간직하고 그러한 그의 목표를 위하여  그는 그 소망 속에서 살아 왔다.  

오자서란 사람이 전쟁준비를 하면서 낮에는 밭 갈고  밤에는 책을 읽으면서 뜻을 세웠듯이 이선구씨 역시 세상을 살아가면서 밀리는 보이지 않는 학벌의식에 부딪칠 때마다  애석 해 하지 않고 그것을 메우기 위하여 그는 더 피나는 노력으로 판도라의 상자 속에 마지막 남아 있는 희망을 그가 차지하기 위하여 뛰고 또 뛰었다. 그리고 오늘 그는 이 자리에서 뒤를 새겨 보면서 앞을 향하여 숨고르기를 한다. 

이렇게 그는 주경야독(晝耕夜讀)으로 경희대학교에서 경매분석사 과정을 수석으로 수료하기도 하였다.  오늘 그의 존재 이유가 그러 하거니와 그가 갖고 있는 희망 또한 그러하다.
그의 고향 하리(下梨) 마을은 쌍교봉(573M) 서남쪽으로 철마산을 뒤로하여 마을이 형성돠고 500여 년 쯤이나 되는 유서 깊은 마을이다. 조선 순조 때, 삼충사를 지어 충장공 정분, 충민공 임경업, 양혜공 김빈길등을 모시고 봄,가을로 제사를 드리다가 지금은 화천사라 이름을 바꾸어 매년 2월 보름에 향사를 지내고 있는 그런 마을이다.

이선구씨는 고향에서 1957년 3월 이희창(작고)씨를 아버지로, 김분님(83세)씨를  어머니로 하여 4남3녀 중, 셋째로 태어난다. 고향의 백화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먼저 고향을 떠나 자수성가의 길을 모색하고 있었던 형을 따라서 영등포 중학교에 진학하였으나, 아버지의 갑작스런 흉사로 인하여 그의 꿈을 접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다.

여기서 우리는 이선구씨의 고향에 대한 사랑의 의미를 간과해서는 아니 되는 것은  그가 고향에 머무는 3년 동안의 그의 행적이 말하여 주듯이 4H운동에 대한 참여의식도 그렇고, 새마을운동에서 좀 도리 쌀 모으기에 참여한 그의 열성을 보거나, 그리고 지난번 안산에서의 고향고추 팔아주기의 실질적인 산파역을 맡아 동분서주하는 그를 보면서 우리는 그에 관한 고향으로 향하는 사랑을 크게 많이 배울 수 있었다.

고향에서의 여의치 않은 가정사정은 그를 재차 상경하여 문래동에서의 경성산업의 1년, 대한광학 구로공장에서의 1년을 덧없이 보냈고, 주식회사 일진에서의 14년 생산직 총 책임자로서 그의 인생에 도움이 되는  경영수업을 그렇게 마친다.

1992년 8월. 1급정비사 자격증을 소유하고 있었던 동생과 함께 (지금은 필리핀에서 목회중인 목사님) (주)생명1급부분공업사를 안산 고잔동에 세우고 오늘에 이른다.
이선구씨는 고향에 한사코 고집하여 홀로 계시는 어머니를, 그리고 자신의 잘못으로 가산을 탕진하여 아이들을 고생시킨다는 자책감으로 우울한 세월을 그렇게 보내다가 타계하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가끔씩 슬픈 상념에 젖기도 한다.

이선구씨는 자신의 어려웠던 시절을 생각하며 이웃의 어려움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병마에 시달리는 백혈병 환자 돕기에도 앞장선다. 초 고령사회의 노인복지 현실을 지켜보면서 반포지효(反哺之孝:어미에게 되먹이는 까마귀의 효성. 어버이의 은혜에 대한 자식의 효도)의 꿈에 그는 젖어있기도 한다. 그는 발전적 가능성과 희망적 긍정만 갖고 항상 주위를 이끌어 간다.

「기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투철한 기업가 정신과 그 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끈기와 저력, 그리고 개척 정신이다. 어려움이 닥쳐왔을 때 자기가 실패했다고 생각하면 패배하고 말지만 그것을 딛고 일어서서 노력하면 실패는 없다. 성패는 바로 마음먹기에 달렸다.」

정주영회장의 자서전 「이 아침에도 설레 임을 안고」에서 발췌한 이 구절을 그는 항상 마음 한구석에서 새기면서 이선구씨는 오늘도 그렇게 고향을 생각하면서 살아간다.
 (이선구씨 전화번호 011ㅡ747ㅡ1683)
/서울취재본부

저작권자 © 진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