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향 사 람

▲ 성영수씨
성영수씨
안천면 백화리 下梨마을 출신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리 코오롱A116ㅡ1902
서울신문 광고마케팅국 관리팀/부장
재경안천면향우회 회원

중국의 전설적인 성인인 하우(夏禹)와 후직(后稷)은 태평한 세상에 자기 집 문 앞을 세 번씩이나 지나가면서도 들어가지 않아서 공자는 이들의 행위를 매우 훌륭하다 칭찬하였다. 공자의 제자 안회(顔回)는 어지러운 세상에 누추한 골목에서 물 한 바가지와 밥 한 그릇으로만 살았으므로, 공자는 가난한 생활을 이겨 내고도 도(道)를 즐긴 안회를 훌륭하다 칭찬하였다.

맹자는 “하우와 후직과 안회는 같은 뜻을 가졌는데, 하우는 물에 빠진 백성이 있으면 자신이 치수(治水)를 잘못하여 그들을 빠지게 하였다고 여겼으며, 후직은 굶주리는 백성이 있으면 스스로 일을 잘못하여 백성을 굶주리게 하였다고 생각하였다. 하우와 후직과 안회는 처지를 바꾸어도 그렇게 하였을 것이다.(禹稷顔子易地則皆然)라고 하였다.

이렇게 일찍이 공자는 원만한 인간관계의 황금율로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 해 보는 역지사지(易地思之: 입장을 바꾸어 상대방의 처지에서 헤아려 보다.)를 들었으며 인간사회의 모든 갈등이 역지사지의 부족에서 생긴다 하였다. 얼마 전 어느 설문조사에서 현대인의 직장생활에서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요인으로 전체 응답자의 51.1%가 동료와의 관계, 또는 업무관계의 갈등이라고 답변 한 것을 본 일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이 사회의 성숙한 이해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의 차이점을 서로가 받아드리는 것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한다. 그래서 성서는「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참음으로 누가 뉘게 혐의(嫌疑)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 하라.」고 우리에게 가르친다.

도심(都心)을 가로지르는 인공(人工)냇가 청계천을 내려다보면서 처음 성영수씨를 마주한 필자가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깊은 생각에 빠져 든 것은 그와의 대화 속에서 그것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 이였다.
1960년생. 금년 나이가 우리식으로 하면 마흔여덟이다.

4남4녀 중 셋째로 태어난 창녕 성씨 독곡파 24세 손이다. 고향에서 백화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농사일을 거들고 있다가, 일찍 상경하여 고생으로 다져놓은 두 형들에 업혀 그래도 초년의 객지생활은 순탄하게 시작한 편이였다. 그는 뒤로 보이는 서울역 일대와 오장동쪽의 거리를 멀리 지켜본다.

거기가 그들 형제의 잊을 수 없는 생활 속의 옛 일터였다. 형들을 따라서 자전거를 타고 계란장수도, 철 따라 얼음 장수도, 또 석유장수로, 그리고 그 속에서도 성영수씨는 그가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었던 오직 한가지의 꿈, 배움의 그 꿈을 위하여 형설(螢雪)의 각고정려(刻苦精勵)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들 형제는 갖은 것은 없었지만 두려움 없이 뛰고 뛰었다. 그들에겐 꿈이 있었고 그리고 청춘이 있었다고 그는 회고 한다.

1981년 전투경찰에 입대하여 군복무를 마쳤고, 그리고 1985년도에는 서울신문사에 입사하여 광고마켓팅부에 배속되어 사원에서 대리, 또 계장에서 과장, 차장, 이렇게 순풍 같은 세월 속에 1988년 10월에는 누나의 중매로 문영순(신태인. 65.10월생)씨와 결혼에 이른다. 그간 다져 온 노력의 보상이라도 받는 기분으로 그들의 신혼은 행복으로 가득 한 나날 이였고 어려웠던 지나간 시절들은 추억의 파노라마처럼 마음속에만 간직하고 있었다.

그것은 행복이었다. 거기는 낙원이었다. 그들만의 낙원이었다. 그러나, 그러나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하였다던가,
1995년은 이 나라 민중 모두가 I.M.F의 폭풍 속에서 전전긍긍하던 그런 시절 이였다. 친한 친구의 빛 보증에 성영수씨의 곁에 실낙원(失樂園)의 검은 그림자가 밀려왔다.

방파제는 밀려 무너지고, 산더미 같은 태풍은 선수(船首)를 난타하고, 부러진 돛대는 흔적을 잃고. 부글부글 끓어올라 주체 할 수 없는 가슴의 분노를 새기면서 그렇게 몇 가지 새로운 철학을 마음속에 익히면서 잃어간 10년을 성영수씨는 영영 잊을 수가 없다.

10살 적 돌아가신 그 어머니의 기억되지 않는 모습을 붙들고 서원(誓願)하기 10년. 하늘과 땅 사이에 오직 나 홀로 낙오되는 설움으로 밤새워 울어쌓기 10년. 잃어버린 그 낙원을 되찾으려는 안간힘으로 발버둥 치던 그 10년을 그는 오래 기억 할 것이다.

폭풍이 가고 고요해진 바다는 더욱 잔잔하다. 성영수씨는 거기서 새로운 인생의 길을 배운다. 은수의 벽을 넘어서 인간을 사랑하는 10년을 그는 배운다. 내 스스로를 다스리며 그렇게 살겠다고 다짐한다.
개구리는 연못이 운동장이며, 올빼미는 밤이 낮이고, 지렁이는 땅속에서 살아야 갑갑하지 않는, 이 지극히 작은 이치들을 그가 깨달은 것이다.

우리의 고향사람 성영수씨.
직장에서는 부장이 되었다. 그의 연륜이 지금 반세기를 읽는다. 이제 제자리에 돌아 온 안도감을 깨닫는다. 인간의 정 위치를 그가 이제 다시 찾아 온 느낌이다. 그는 가끔씩 산을 오른다. 정상을 정복하고 그의 가슴을 열어 호흡을 돕는다. 전율을 느끼면서 자연과의 교감을 만끽한다. 그는 가끔씩 낚시를 즐긴다. 잡념을 버리고 정신적 안정과 심신의 고뇌와 아픔을 밀어낸다. 오늘 그가 서 있어야 하는 자리를 새삼 살펴본다.
인간이 소유하고 있어야 하는 것은 맑은 영혼과 영원의 세계와 깊은 고요와 진정한 평화임을 그가 오래 간직 할 것이다. (성영수씨 연락번호 : 010ㅡ8971ㅡ9466)
/서울취재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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