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이야기 (25) 동향면 신송리(3)…바깥누룩골(외유)

▲ 마을 앞에서 바라본 바깥누룩골. 도로에 바짝 붙어 있는 마을답게 예전에는 주막이 즐비했다고 한다.
일교차가 커지면서 제법 아침 공기가 쌀쌀하다. 들녘엔 일찌감치 추수를 마친 논과 추수를 기다리는 노란 벼가 가득한 논이 엇갈려 있다. 가끔 벼를 수확하는 농기계와 농민들이 분주하게 일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동향면 신송리의 두 누룩골 가운데 바깥누룩골(외유마을)을 찾아갔다. 동향면 자산리에서 국도 13호선을 따라 대량리를 거쳐 고개를 넘으니 도로가 두 갈래로 나뉜다. 왼쪽은 안누룩골(내유마을), 수침동으로 가는 길이고, 곧바로 가면 바깥누룩골과 쇠용골(호천), 고부마을로 가는 길이다.

바깥누룩골은 도로를 접하고 있어 바로 찾을 수 있었다. 마치 지나는 사람들에게 마을의 존재를 확실히 각인시키려는 듯이 도로 가에는 이정표와 표지석, 버스정류장이 외유마을을 가리키고 있었다.
도로 오른쪽으로 즐비하게 늘어선 마을 모습이 참 평온해 보인다. 도로와 인접한 곳에 마을회관이 보이고, 빼곡하게 주택이 늘어서 있다.

▲ 동향 신송리 외유마을
◆바깥누룩골은…
바깥누룩골의 현재 정식 명칭은 외유마을이다. 이것은 마을에 수구막이 구실을 하는 마을 숲에서 비롯됐는데, 기록에서는 숲에 느릅나무가 많아 ‘유(楡)’자를 쓰게 됐고, 안쪽에 있는 내유마을과 구분하기 위해 바깥이라는 뜻의 ‘외(外)’자를 덧붙여 ‘외유’라는 명칭이 붙었다고 적고 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마을을 찾았을 때는 굴참나무가 대부분이었는데, 마을에서 만난 주민 역시 느릅나무를 볼 수 없다고 말했다.

한때 서른일곱 집에 달했던 이 마을에는 현재 열한 세대에 스물두 명이 살고 있다. 대부분은 60대 중반 이상의 노인들인데, 도시로 갔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젊은이도 있다. 마을에서는 젊은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으면 마을이 앞으로 10년 후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바깥누룩골에서 생산하는 주요 농산물은 벼와 고추 등이다. 그리고 마을 곳곳에는 유난히 대추나무가 눈에 많이 띄었다. 그래서 고추를 말리는 비닐하우스에는 빨갛게 익은 고추와 대추를 함께 말리는 풍경도 볼 수 있었다.
  

▲ 동향 신송리 외유마을
◆마을 집어삼킨 대형화재
동향면 신송리는 비교적 부유했던 곳이라고 한다. 넓은 뜰도 적고, 대부분 산지를 개간해 만든 농경지에서 농사를 지었으면서도 부유했다는 것은 아마도 주민들이 매우 부지런했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장수군으로 넘어가는 길목을 차지하고 있어 상인들의 통행이 빈번해 일찌감치 주막이 서는 등 상업적으로도 번창했던 것으로 보인다.

바깥누룩골 역시 신송리의 여느 마을과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주민들은 서로서로 어울리며 행복하게 살았다.

그런데 한 70년 전쯤 큰 사건이 하나 벌어졌다. 마을에서 한 집에 불이 났는데, 마침 강한 바람까지 불어와 불이 빠르게 마을 전체로 번졌던 것이다. 결국, 마을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 인근 마을로 이사했고, 이사할 여력이 없던 주민들만이 남아 지금에 이르고 있단다.
  

▲ 동향 신송리 외유마을
◆물이 부족했던 마을
기록에 따르면 내유마을, 수침마을, 외유마을이 함께 매봉산 당골 큰 정자나무가 있는 곳에서 무제를 지냈다. 옛날 바깥누룩골 주민들은 마을 뒤편에 있는 공동우물에서 식수를 길어 날랐고, 산에 있는 농경지에 물을 주기 위해 마을 앞 작은 하천에서 물을 길었다. 그런데 식수는 늘 부족했다는 것이 주민들의 설명이다.

다행히 지금은 마을 뒷산 계곡에서 물을 받아 탱크에 저장한 후 각 집으로 보내는 간이 상수도를 이용하고 있다.

하지만, 한 번은 물이 너무 많아 손해를 입은 적도 있다. 바로 2003년에 있었던 수해 때문이다. 당시 갑자기 많은 비가 내리면서 불어난 물이 마을 앞 논밭을 휩쓸고 내려갔던 것이다. 지금은 수해복구 공사를 마무리해 그 뒤로는 비 피해가 없었다.
  

▲ 동향 신송리 외유마을
◆야속한 하늘
올해는 어느 마을에 가봐도 농민들의 한숨소리가 크다. 1년 내내 피땀 흘려 농사를 지었지만, 수확기를 앞두고 오랫동안 이어진 비 때문에 수확량이 평년의 절반 정도에 그쳤기 때문이다.
바깥누룩골을 찾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마을에서 만난 성일권(70)씨는 바람을 일으키는 기계(풍구와 같은 구실)를 이용해 수확한 벼이삭의 쭉정이를 걸러내고 있었다.

“내가 한 해에 보통 콤바인 포대로 130∼140개를 수확하는데, 올해는 여든 개를 못 채울 것 같아요. 게다가 알이 없는 게 많아서 이렇게 쭉정이를 걸러내는 작업도 해야 하니 일이 배로 많아졌어요.”
비닐하우스에서 말린 고추를 정리하던 이인순(73)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비가 좀 많이 왔나요. 고추는 건지는 것보다 버리는 게 많은 것 같아요.”
농민은 하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하지만, 이럴 땐 정말 하늘이 야속하다. 누구한테 하소연도 못하는 상황이니 말이다.

올해는 날씨 때문에 농작물 수확이 크게 줄었다고는 하지만, 매년 주민들을 괴롭히는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멧돼지다. 매년 멧돼지는 논밭을 파헤치며 주민들을 못살게 구는데, 올해 봄에는 조상들이 묻힌 산소를 파헤쳐 한바탕 소동이 일기도 했단다. 당시 봉분 주변의 풀을 깎기 위해 산에 올랐던 한 일꾼이 봉분이 파헤쳐 있어 도굴된 것으로 생각하고 후손들에게 연락했다. 그리고 후손들이 모여 현장을 살펴본 결과 사람이 아닌 멧돼지가 범인이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인근에 있는 다른 봉분도 살펴보니 상당수가 파헤쳐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산짐승이 한 짓이다 보니 이렇다할 대책을 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 동향 신송리 외유마을
◆이웃사랑 남다른 곳
마을 주민이 몇 명 되지 않다 보니 주민들은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다. 대부분 성씨가 다른 각성바지 마을이지만, 주민들은 누가 아프면 너나 할 것 없이 아픈 사람을 챙겨 보살펴주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또 수시로 찾아가 상태를 지켜보기도 한다. 한 주민은 “이런 게 사람이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요즘 마을엔 걱정거리가 하나 있다고 한다. 마을에 부모가 모두 떠난 집에 살고 있는 청소년 형제 때문이다. 학교는 물론 마을에서도 나름대로 신경을 쓰면서 보살피려 했지만, 이 학생들이 자꾸 잘못된 길로 가려 한다는 것이다.

“좋은 말로 타일러도 이젠 말을 듣지 않아요. 더군다나 다른 마을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서로 안 좋은 물이 드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차라리 군에서 기숙사 같은 것을 지어서 이런 학생들이 지낼 수 있도록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래서 학생들이 건강하고 쾌적하게 생활하고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죠. 그러면 이렇게 가정환경이 좋지 않은 학생들이 비뚤어지지 않고 건강한 성인으로 자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동향 신송리 외유마을

▲ 동향 신송리 외유마을

▲ 마을 약도

▲ 지지문
바깥누룩골이 시작되는 곳이 옛날 서낭당이 있던 자리다. 옛날에는 마을에 들고 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돌을 쌓아서 제법 보기 좋은 돌무더기가 있었는데, 새마을운동 때 길이 나고 이후 도로포장을 하면서 모두 파헤쳐 졌다고 한다.

특히 서낭당에는 애틋한 사연이 담긴 바위가 하나 있는데 이 바위 역시 도로 공사 당시 시련을 겪었다.

크지 않은 바위 한쪽 평평한 면에 뚜렷이 ‘지지문(知知門)’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는 바위인데, 옛날 과거시험을 보러 떠난 남편의 소식이 끊기자 남편을 그리워한 부인이 새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그런데 공사를 하면서 이 바위를 파낸 후 땅속에 묻어버렸다.
마을에서는 이 바위를 찾기 위해 곳곳을 파보며 찾아 헤맸고, 결국 찾아낸 바위를 도로 가장자리 한쪽에 세워두었다. 바로 도로 가에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찾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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