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 은빛ㆍ어울림 백일장

▲ 백일장에 참가한 한 할머니가 글솜씨를 뽐내고 있다.
아직은 서투르고 투박하기 그지없는 한글 솜씨, 아무렴 어떨까요,
늘 한구석에 외롭게 가려져 조명받지 못했던 우리 할머니들과, 머나먼 타향에서 남편의 나라로 시집와 고국의 그리움을 지니고 살아가는 외국인 주부들에게 한글교실은 한줄기 빛이 됐습니다.

특히, 지난 28일은 ‘은빛·어울림 백일장’을 맞아 가슴속에 담아둔 마음, 가족을 향한 그리운 마음 등을 한글로 표현해 한글공부의 성과를 가늠하는 날이라 더욱 의미가 깊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그녀들은 까막눈이라고 쉬, 쉬 할 필요도 없고 버스를 잘못 탈까 봐 조마조마해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더욱이 백일장에 참가해 글솜씨까지 뽐낼 수 있으니, 늘그막 한글공부가 제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할머니들이 돋보기를 치켜세우며 주름진 손으로 한 자 한 자 정성을 다해 한글을 써내려갑니다.   
할머니들이 살아온 인생이야 소설로 쓰자면 몇 권이야 우습지만 아직은 한글이 서투른 탓일까요? 용지의 반도 못 채우고 전전긍긍하기도 하며 집에서 미리 써온 연습장을 곁눈질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옆에 있는 할머니에게 “여적이 맞냐? 여직이 맞냐?”라며 물어보며 결국 “여적(아직)”이라고 써내려간 귀여워(?) 보이기까지 한 이홍례 할머니(동향면).
특히 이홍례 할머니는 수십년 전에 소꿉놀이를 하다 친구의 아버지에게 혼난 기억을 더듬어 “곱뿐아. 느 아버지는 느만 혼내지, 왜 우리꺼지 혼내야?”라는 재밌는 문장을 적어 넣어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또 은빛문해반 최고령의 오기남(81, 진안읍) 할머니는 “시골집에 자식들이 놀러 오면 너무 즐겁습니다.”라고 쓰는 한편 “산천초목 초연한데 돌아갈 길 너무 멀구나, 지난날이 너무 그립다.”며 흘러버린 세월을 슬퍼했습니다.

옆에서는 외국인 주부들이 남편과 아이들, 먼 고향의 부모님들에게 그리움의 정을 꾹, 꾹 써내려가느라 바쁩니다. 특히 우라바야시 데쯔꼬(안천면)씨는 한 자라도 틀릴까 봐 아예 한국어사전을 펼쳐놓고 세심하게 글을 써내려가 주위의 탄성을 자아냈습니다.

다음달 출산을 앞둔 팜티수안 주부(부귀면)는 베트남에 있는 부모님에게 “엄마, 아빠 보고싶어요. 우리 가족 좋아요. 친구들은 몇 명이나 결혼해요?”라며 아직 서투른 한글로 부모님과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을 듬뿍 담았습니다.

이날 모든 참가자에게 필통, 연필, 지우개의 사은품이 주어져 필통 대신 치약 포장상자를 들고 다니던 동향면에 사는 고금옥 할머니에게 좋은 선물이 됐습니다.
어르신들에게 한글을 가르쳤던 선생님들에게도 이날 백일장은 의미있는 시간이 됐습니다.

한글교실 교사 구점순씨는 “나이가 드셔서 창작 글짓기를 힘들어 하세요.”라며 “원래라면 수업을 듣는 할머니가 더 많지만 다들 긴장을 많이 하고 두려움이 앞서서인지 백일장 참가를 포기하셨습니다. 오늘 백일장에 참가하신 할머니들이 용기를 잃지 않고 끝까지 임해주어 고마울 뿐이에요.”라고 말했습니다.

한편, 이번 백일장에서 은빛문해반은 ‘어릴적에 친구생각’이란 제목으로 옛 친구와의 소꿉놀이를 쓴 이홍례(동향면) 할머니가 세종대왕상을 받았습니다. 고금옥(동향면) 할머니와, 이이순 할머니(마령면)가 일등에 버금가는 버금상을, 오기남(진안읍) 할머니와 심봉순 할머니(마령면)는 이쁜글씨상을 받았습니다.

또 어울림 반(외국인 주부모임)에서는 우라바야시 데쯔꼬(안천면)씨가 세종대왕상을 받았습니다. 람티미한(부귀면)씨와 아지벨코바 쿨바르친(부귀면)씨가 버금상, 팟싸라와디 싸오와롯(진안읍)씨와 로사린(부귀면)씨는 이쁜글씨상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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