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 이야기(31) 주천면 신양리(4) … 하성암(바깥미래)

▲ 마을 앞길에서 바라본 하성암. 길을 따라 몇 채의 집이 서 있다.
주천면 신양리 성암마을은 마을 앞 주자천을 끼고 금평마을과 이웃해 있다. 성암마을은 다시 상성암(윗미래)과 하성암(바깥미래)로 나뉘는데, 하성암에 인구가 급격히 줄면서 이제는 한 마을로 지낸다.

50여 년 전 하성암에는 열댓 가구가 살았더랬다. 이장은 상성암과 하성암을 묶어 한 명이 있었지만, 반장은 따로 두었기에 사람들은 온전한 하나의 마을로 인식하며 공동체를 이루었다. 당시에는 한 집에 3대가 함께 살았으니 인구가 쉰 명은 족히 넘었다.

여름이면 마을 앞 주자천에 마을 청년들과 어린이들이 물놀이를 하느라 어수선했고, 마을 앞으로 펼쳐진 넓은 뜰에서는 농사를 짓는 손길이 분주했다. 하지만, 지금은 노인들만 남았고, 이 주민들은 하루하루 소일을 하며 생활하고 있다.

▲ 마을에서 공동으로 사용했던 우물이다. 갈수기에는 물이 말라 계곡에서 물을 길어와야 했지만 물맛이 아주 좋았다고 한다. 지금은 집마다 관정을 파고 수도를 설치해 물걱정은 없다.
◆흔적 없는 광석과 복고리
하성암에 간 길에 배골산 아래 용담호 가장자리를 따라 난 좁은 길을 따라 들어가 물에 잠긴 광석과 복고리쪽으로 가 보았다. 용담호 수위가 조금 낮아지면서 일부 드러난 곳이 있었는데, 예전의 마을 흔적은 찾기 어려웠다.

용담호 물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조용히 파란빛을 내뿜고 있었고, 가장자리 수풀은 찬 바람에 색을 바꾸고 살살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용담댐 건설을 반대하며 벌였던 시위와 주민들의 울부짖음은 이미 물 아래로 가라앉은 지 오래였다.

다만, 드문드문 보이는 벽돌 조각과 콘크리트 구조물, 길 등이 한때 마을이 있었음을 조용히 말해주고 있었다. 
  

▲ 마을 주민 가운데 반을 만났다. 한때 열 집이 넘었던 이 마을에는 다섯 집만 남았고, 주민은 모두 여섯 명이다. 이가운데 남성은 한 명뿐이다. 하성암이란 마을 이름이 있지만, 지금은 상성암과 한 마을로 지내고 있다. 왼쪽부터 곽순덕, 김화춘, 이정술씨.
◆덩그러니 있는 마을 우물
상성암에서 멀지 않은 하성암. 집 여섯 채가 마을 앞 좁은 길을 따라 나란히 서 있다. 이 가운데 첫 집은 최근까지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남아 있지만 비어있는 상태였다. 현재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은 다섯 집뿐이다.

마을 가운데 집 앞에 입구를 덮어놓은 우물이 하나 보였다. 슬레이트로 덮고 그 위에 돌을 얹어 센 바람에도 날리지 않도록 해 놓았다. 우물 벽에는 관을 심어 양수기를 달아 놓았는데, 농사철에는 농업용수로 뽑아 쓰는 모양이다.

이곳은 예전에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이용하던 우물이었다. 물이 맑고 좋아 식수와 생활용수로 사용하기 아주 좋았다. 하지만, 가끔은 가물 때마다 물이 말라 마을 뒷산 골짜기에서 물을 길어와야 했다고 한 주민은 얘기했다.

물론 지금은 집집이 상수도가 들어오고, 관정도 파서 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생활용수를 이 우물에서 뽑아 쓰지는 않는다.
그런데 마을 주변에 즐비한 밭은 이곳 하성암 사람들 것이 아니란다. 모두 다른 동네 사람들이 와서 농사를 짓는단다.
  

▲ 하성암 앞 주자천은 여름이면 운일암반일암 못지 않게 많은 행락객들이 찾아온다. 그러나 이 행랑객들이 주변을 어지럽혀 대책이 필요하다는게 주민들의 설명이다.
◆운일암 반일암 못지않은 주자천
마을 앞 주자천을 보면 ‘여름에 물놀이하기에 제격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평평한 바위가 깔려 있고 물도 깊지 않다. 또 물이 계속 흘러 내려가기 때문에 물도 맑다. 예전엔 마을 사람들이 이곳에서 멱도 감고 물놀이도 했다.

그런데 요즘엔 여름만 되면 행락객 때문에 몸살을 앓아야 한다. 운일암 반일암에 사람이 많아 그런지 이곳을 찾은 사람이 아주 많다.

문제는 이곳을 찾는 행락객들이 조용하고 깨끗하게 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음식을 먹고 남은 쓰레기는 물론 배변까지 가리지 않고 주변을 더럽힌다. 마을에 몇 명 남지 않은 노인들이 이것들을 치우는 것이 쉽지 않다. 그저 행정기관에서 간이 화장실이라도 하나 설치했으면 하는 바람만 갖고 있다.

행락철뿐만이 아니다. 요즘엔 단속을 피해 새벽에 몰래 낚시하러 오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 역시 골칫거리이기는 마찬가지다. 대책이 필요한 것만은 분명했다.
  

▲ 김화춘시 집에 놓여 있는 119 비상전화. 노인들만 살기 때문에 언제 생길지 모르는 급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 놓은 것이다.
◆주민 절반을 만나다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마을 가운데 있는 집. 마당에서 소리가 나 들어가 보았다. 그곳에서 곽순덕(73)씨가 이것저것을 정리하더니, 마당 구석에 있는 가마솥에 때는 불을 점검했다. 고추장을 담기 위해 콩을 삶는다고 했다.

“마을 얘기 좀 들려주세요.”
“노인네가 뭘 알겠어요.”

곽순덕씨는 옆집으로 가자고 했다. 혼자 얘기하는 것보다는 여럿이 얘기하는 게 더 나을 것이라며 말이다. 곽씨와 함께 옆집 문을 열고 들어가니 집주인 김화춘(80)씨가 이정술(73)씨와 따뜻한 방안에서 이불을 덮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여기에 마을 주민 절반이 모여 있네요.”
하성암에 살고 있는 주민은 모두 여섯 명. 그 가운데 남자는 한 명이다. 내년이면 일흔이 되는데 여섯 명 가운데 가장 젊단다.

“한 명 빼고는 여자들밖에 없어요. 그러니 일도 못하고 이렇게 소일이나 하다가 모여서 이야기 나누는 게 전부예요. 지금 한 사람은 겨우내 동생네 가 있는다고 해 나갔어요. 봄이 되면 돌아올 거예요.”
  

▲ 마을 약도
◆그래도 내 집이 최고
상성암에서 하성암까지 들어오는 길이 좁아 버스는 들어올 수 없다. 그래서 장을 보거나 병원에 가려면 400미터 정도를 걸어서 가야 한다. 관절이 온전치 않은 노인들에게는 쉽지 않은 거리다.

상성암에 있는 마을회관에 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마을회관에나 가야 사람들을 볼 수 있어 겨울에는 자주 찾아가지만, 몸이 아프면 그곳까지 가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또 노인들만 살다 보니 위급한 상황은 늘 걱정거리다. ‘119 비상전화’(긴급 버튼을 누르면 바로 119와 연결되는 전화기)가 놓여 있어 그나마 조금은 안심이 되지만, 마을에 젊은 사람이 없으니 조금 불안하단다.

게다가 요즘엔 유일한 오락거리인 텔레비전에서 계속 ‘나쁜 사람들’만 나와 낯선 사람이 무섭단다. 어떤 사람이 찾아와 혼자 사는 노인들을 해코지할지 몰라 늘 걱정이다.

이런 어려움과 걱정에도 이곳 노인들은 마을을 떠나기 싫어한다. 자녀가 모두 장성해 도시에 자리를 잡았고, 이들이 함께 도시에서 살자고 해도 이곳 하성암이 좋단다.

“올해는 추석때까지 아들네에 있었는데, 영 못살겠더라고. 답답하기만 하고 말이야.”

김화춘(80)씨는 요즘 몸이 좋지 않다. 3년 전에 길에서 넘어져 다치고, 또 방안에서 넘어져 허리를 다쳐 거동이 불편하다. 아들 넷이 함께 살자고 보채지만, 평생을 산 하성암을 떠나는 게 싫다며 거절했단다.

그나마 주말마다 아들 넷이 돌아가며 찾아와 들여다보기 때문에 많이 적적하지는 않다고 한다. 김씨는 아들 넷이 모두 효자라며 흐뭇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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