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중학교 임상철 교사

▲ 백운중학교 교무주임으로 있는 임상철 교사가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하고 있다.
인간은 인연으로 묶인 매듭이라고 생각한다. 그 매듭을 풀기란 그리 쉬워 보이지 않아보인다. 백운중학교 임상철(50) 교사를 보고 느낀 점이다. 임 교사는 85년도에 첫 발령을 받고 진안과의 인연을 안천중학교에서 시작했다. 안천중학교에서 근무할 당시부터 안천면에 집을 장만했고, 86년도에 설효숙(46)씨와 신혼생활 또한 안천면에서 시작했다.

이후 전주 전라중학교로 발령을 받았지만 기간을 채우고 난 후에 다시 진안으로 돌아와 현재까지 백운중학교에서 근무 하고 있다.

대부분 교사들은 시골학교를 선호하지 않는다. 투철한 사명감 없이는 생활하기 어려운 곳이 시골학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상철 교사는 특이하게 진안이 좋아 진안에 살고 싶어한다.

“진안에서 평생을 살려고 왔어요. 제가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첫 아이를 진안에서 낳았고, 둘째까지 임신 후 발령을 받은 곳이죠.”

안천중학교에 첫 발령을 받았을 때에는 방과 후 특수반을 운영했다. 이때에는 밤늦게까지 아이들과 씨름을 할 때였다. 그 덕분에 아내 설효숙씨가 행복한(?) 고생을 시작했다.

“남편이 방과 후 특수반을 늦게까지 가르치고 돌아오는 시간이 항상 10시 반을 넘겼어요.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좋아서 그런지 교사로서 해야 할 일이 많은지 몰라도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죠. 그래도 남편이 하는 일이라 뭐라 말할 수 없었어요. 아마도 교사로서 사명감이 아니었나 싶어요. 남편이 교사가 안되었다면 지금쯤 무슨 직업을 갖었을지 궁금해요.”

아내 설효숙씨는 남편 임상철씨의 천직이 교사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혼자 시간을 보내면서 남편의 일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내조를 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남편이 밤늦게까지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니 남편뿐 아니라 학생들 도시락까지 챙겨야 했어요. 남편도 그것을 원했고요. 전라중학교로 발령받아서도 밤 11시를 어김없이 넘기더군요. 그러더니 주말에도 도시락을 챙겨 학교로 출근하는데 학교에 출근하지 않으면 불안한 사람처럼 그러더군요. 어쩌겠어요. 남편이 하는 일인데 잠자코 지켜볼 뿐이죠.”

이러한 임상철 교사의 성실성과 열정에 안천중학교에서는 학부형들이 자발적으로 상장을 만들어 전달하기도 했다.

▲ 임상철, 설효숙 부부와 2명의 딸이 함께 찍은 가족사진
◆졸업생이 찾는 교사
안천중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은 명절 때면 어김없이 임상철 교사를 찾는다. 제자들은 사회 곳곳에서 활동 하고 있지만 임상철·설효숙 부부에 대한 인사는 빼놓지 않는다. 청주에서 과학교사로 있는 제자 홍의정씨는 수몰되면서 전주로 이사했다. 아버지는 가정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던 홍의정씨가 안천고등학교에 입학하기를 소망했다. 하지만, 임교사는 홍씨가 머리가 좋고, 공부도 잘해 전주 사대부고를 생각하고 있었다.

“홍의정 학생 아버지를 설득하기 위해 몇 번이고 찾아다니곤 했어요. 아버지를 설득시켜 전주 사대부고를 보내려고요. 가정형편 때문에 아버지는 안천고등학교에 입학시키려고 했죠. 하지만 의정이 아버지를 끝내 설득시켜 전주 사대부고에 입학시켰어요. 그것도 장학금을 받고요. 의정이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지는 못했지만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주려고 노력을 많이 했죠. 지금도 찾아와요. 조언을 해달라고요.”

이처럼 임상철 교사의 제자 사랑은 남다르다. 설효숙씨가 또 다른 남편의 제자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해주었다.

“한번은 명절날 군산 시댁에 가고 있었어요. 그런데 한 제자에게 전화가 와 차를 돌린 적이 있어요. 명절날 인사 온다는 것이었죠. 어떻해요. 제자사랑이 지극정성인데 할 수 없이 차를 돌려 집으로 돌아왔죠. 아마도 아들 없이 딸만 2명 키우다 보니 제자들이 아들 같은가 봐요.”

이는 임상철 교사의 제자 사랑법이다.

◆제자들 향한 열정 그대로
젊은 시절에는 비를 맞고 수중전으로 축구를 즐기던 시절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는 마음은 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아 실천을 못 한다는 임상철 교사. 하지만 학생들에 대한 열정만은 넘쳐난다.

젊은 시절 안천에서 특수학교(몸이 불편한 아이와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아이들)를 2년 반 정도 운영한 임교사. 그 당시 남학생 5명에 여학생 1명 등 모두 6명의 학생을 가르쳤다.

이 아이들을 데리고 다른 경험을 시켜주기 위해 목욕탕이라도 한 번씩 가려면 남학생들은 임교사가 함께 했고, 여학생은 당연히 아내 설효숙씨의 몫이었다. 또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아이들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행동과 말도 천천히 해야 했다. 한동안은 집에서도 학교에서 하는 행동이 나오곤 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특수학교를 운영한다고 해서 영재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으로 알았죠. 그런데 몸이 불편한 아이와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을 교육하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교육을 하지 못한다고는 할 수 없어 제가 전담했어요. 아이들이 먹는 것을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되면서 집에서 부침개와 국수 등을 가져다 먹였죠. 그렇게 서서히 친해지기 시작하면서 2년 반의 세월을 넘겼어요.”

이처럼 몸이 불편한 학생이건, 생활이 어려운 학생이건 제자들에게는 모두 똑같은 사랑을 전해 주고 있는 임상철 교사.

현재는 교장으로 승진해야 하지만 특수학교를 운영했던 2년 반 동안 근무기록이 없어 승진 점수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 약간의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앞으로도 그의 교사 인생은 제자 사랑으로 가득할 것 같기에 행복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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