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천 장등마을 할머니들의 겨울나기

▲ 차가운 겨울 날씨 속에서도 할머니들의 즐거운 두부 만들기는 계속됐다. 사진 왼쪽부터 이정화(64), 박복희(76), 임정덕(70), 이소순(65), 임성분(78), 고두영(73) 할머니. 그리고 유일한 청일점으로 있던 서오득(74) 할아버지.
지금 주천면 대불리 장등마을에선 고소한 손 두부 냄새가 마을 전체에 가득하다. 마을을 찾은 12월 21일, 장등마을 회관 앞 공터에선 마을 할머니 여섯 명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오전에 한차례 두부를 만들고 또 다시 두부와 메밀 묵 만들기를 시작한 할머니들은 차가운 겨울바람이 추운 줄도 모르고 마냥 즐겁기만 해 보인다.

◆추억을 선물하다
[겨울이면 장날에 어머니가 콩 불려 갈아오면 큰 소죽솥 잘 씻어서 장박불 지피고 비리지근한 손 두부를 만들어 먹던 정겨움을 생각한다. 마을 어른들과 이웃이 막둥이 뜀박질 보다 앞서 들어오시고 겨울 한낮 고신 볕에 고드름 녹아떨어지던 깡마른 마루가 그 바람에 제법 사람 엉덩이 덕도 보고 시끌벅적하였다.]

지난 19일 진안신문 자유게시판엔 서병철(작성자)씨가 장문의 글을 올렸다. 고향 장등마을 할머니들의 손 두부 만들기를 소개하는 글로 그의 글에선 어린 시절 고향의 추억이 가득 묻어난다.

옛날만 해도 두부는 슈퍼나 가게에서 사서 먹는 음식이 아닌 손수 해 먹던 음식이다. 하지만 지금은 시골에서조차 명절이나 큰 행사 때를 제외하곤 두부를 직접 만들어 먹지 않은지 오래다. 그만큼 손 두부는 이제 추억의 음식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장등마을 할머니들의 손 두부는 타지에 살고 있는 고향사람과 마을 사람들에게는 맛을 떠나서 옛 추억을 선사하는 것에 있어서 소중한 선물이 되고 있었다.

▲ 겨울바람은 차갑지만 장등마을 할머니들은 두부 만들기에 추운줄도 모른다. 서로 도우며 일하니 두부만들기도 금새 뚝딱이다.
◆일하면서 얻는 즐거움
“겨울에 아무 일도 안하고 있으면 허리도 아프고 어깨만 아픈데 일하니까 얼마나 좋아”
처음 어떻게 시작됐냐는 물음에 이날 모인 할머니들의 하나같은 대답이다.

장등마을 할머니들의 손 두부 만들기는 작년 임정덕(70)할머니의 제안으로 처음 시작해 올해로까지 이어졌다. 올해는 시작한지 이제 5일이 됐다는데 이날만 해도 작년에 두부를 먹어 봤던 군청 직원이 오전에 두부 20모를 사 갔다고 하니 할머니들의 손 두부를 기다린 사람들이 적지 않았음을 짐작케 했다.

“작년에 먹어봤던 사람들도 많이 사가고 전주, 금산, 대전 등에서도 사러 오지.”
두부를 만들어 머리에 이고 나가 동네 주민들한테 처음 팔기 시작한 손 두부는 이제, 입소문을 타고 지역뿐 아니라 타지에서도 찾는 장등마을의 자랑이 되어 있었다.

이날 두부를 만들고 있던 마을 할머니들은 적게는 64세부터 많게는 78세까지, 고령의 나이임에도 겉으로 보기엔 비교적 건강한 체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아마도 큰 솥에 삶았던 콩을 들어 올려야 하는 일부터, 수시로 움직이며 이것저것 많은 일들로 인해 할머니들 스스로 건강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또한 할머니들은 모든 일을 서로 합심하며 척척 해가고 있었다. 할머니들 틈 사이로 청일점으로 있던 서오득(노인회부회장, 74) 할아버지의 도움의 손길도 비교적 자연스러워 보인다. 이렇게 자주 나와 할머니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냐는 말에 할아버지는 마냥 웃고, 바쁜 손을 움직이던 할머니들에게서 스폰서라는 대답이 들려왔다.

“여기 있는 두부 발, 두부 틀 모두 동네 할아버지들이 만들어 준거야. 할아버지들은 우리 스폰서라니깐.”
그러고 보니 두부 발, 두부 틀, 두부 짜는 나무 등 동네 할아버지들의 수공예 작품(?)들이 상당하다. 할아버지들의 수공예 기계로 만드는 할머니들의 정성이 담긴 손 두부. 거기다가 즐거운 웃음과 행복이라는 양념이 들어갔는데 어찌 그 맛이 좋지 않을 수 있으랴!

◆“올해는 지다란(긴) 상을 살 거야”
할머니들의 두부 만들기가 중반을 향해 가고 있을 때쯤 동네 주민 한 사람이 한 포대 가득 콩을 들고 찾아 왔다. 휴일 행사에 쓸 두부를 주문한 것이었다.
“가끔씩 이렇게 두부 만들어 달라고 찾아오기도 하지. 그럼 돈 받고 해 주고 있어.”

마을 주민이 주문을 맡기고 간 다음 차량 한 대가 들어와 콩 한 포대를 마을회관 앞에 놓고 갔다. 주문 들어온 것이 아닌 다음날 할머니들이 사용할 콩이란다.
“콩은 모두 동네사람들이 농사지은걸 팔아서 사용하고 있지.”

작년엔 콩 서너 가마니를 팔아 두부를 했다고 하니 올해 두부 만들기가 끝날 때쯤이면 과연 얼마큼 많은 양의 콩이 소비되었을까 내심 궁금해진다. 콩이 많이 소비된 만큼 장등마을 할머니들의 손 두부 인기를 증명해 줄 테니 말이다.
마을 할머니들은 올해 두부와 메밀묵을 팔아 사고 싶은 것이 있다. 바로 마을 행사 때 사용할 수 있는 긴 상이다.

“작년엔 이익금으로 두부 만들 때 쓸 살림살이랑 마을에 쓸 의자를 사다 놨으니 올해는 지다란(긴) 상을 사야해. 그러니까 두부 홍보 좀 많이 해줘.”
할머니의 안내에 따라 들여다 본 마을회관 창고 한 켠엔 마을주민들이 사용할 수 있는 의자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 서서히 두부가 제 모양을 갖춰가고 있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사각의 두부 틀엔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두부가 하나가득 찰 터였다.
◆소박한 꿈이 담긴 하나의 공동체
할머니들이 두부를 만들고 있는 동안, 동네 주민들은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말 한마디라도 거들고, 그러면 할머니들은 두부 먹고 가라고 성화다. 그런 소란스러움에 마을엔 작은 활기가 돈다.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이렇게 마을 사람들이 오고가고, 할머니들이 부지런히 움직이는 동안 이제 제법 두부가 서서히 만들어지고 있었다.

잠시 후 마을회관에 들어갔다 나온 할머니가 방금 만들어진 순두부를 한 그릇 가득 담아준다. 그 위에 양념간장 풀어 후루룩 먹어보았다. 따끈하고 고소한 부드러운 순두부가 씹기도 전에 절로 넘어간다. 순두부 맛이 이럴 진데 제 모양 갖춘 두부의 살살 녹아드는 맛도 가히 짐작을 하고도 남음이다.

장등마을 할머니들의 손 두부 만들기, 한 할머니의 작은 제안에서 시작된 일이 이제는 마을 주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하나의 공동체 일이 되었고, 그 속에서 마을 주민들은 서로 소통하며 정을 나누고 있었다. 한 곳에 모여 살아가는 이야기를 풀어내며 화합을 쌓아가고 있었다.

마을의 발전을 향해 더 좋은 꿈을 꾸고 있었다.
두부 틀 한판에 20모가 나오는 두부 한모는 3천원, 우린 3천원에 두부만 사는 것이 아니다. 옛 추억을 사고, 정을 사고, 장등마을 사람들의 소박한 꿈도 사서 함께 공유하는 것이다.
장등마을 손 두부 맛을 보고 싶다면 ☞ 마을회관 432-1661
사진 이용원 yolee@ja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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