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을 이야기(34) 안천면 백화리(1) 율현

▲ 마을 약도
안천면에서 무주방향 국도를 타고 거의 경계까지 가보면, ‘백화양어장’이란 곳을 지나자마자 백화리 여섯 마을 가운데 율현(栗峴)을 알리는 표지석과 이정표가 보인다. 이 표지석 아래로 난 마을 진입로를 따라 조금 올라가면 비교적 넓게 펼쳐진 마을이 나온다.

이 마을은 본래 밤나무가 많아 밤고개라고 불리던 마을로 1840년경 한씨, 정씨, 임씨 등이 정착하면서 이뤄졌다. 예전엔 마흔 가구가 넘을 정도로 마을규모가 작지 않았지만, 주민이 떠나고 노인 인구가 세상을 떠나면서 인구가 크게 줄었다. 지금은 스무 가구 정도만 남아 있고, 혼자 사는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그나마 40대 젊은 사람이 남아 있어 노인만 남은 다른 마을보다는 낫다고 하지만, 예전의 북적거리며 어울려 살았던 마을의 모습을 기억하는 주민들에게는 지금의 마을 모습이 안타깝게 다가온다.

◆마을에 들어서며
국도에서 마을까지는 약 1km. 자동차 두 대가 지날 정도의 아스팔트 포장길이 깔끔하게 깔려 있다. 도로 주변 농경지는 대부분 인삼밭이다. 인삼이 주요 작목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다. 그리고 마을을 지키는 수구막이 구실을 하는 참나무 숲에 이르면 마을이 보인다.

이 참나무 숲 아래는 돌로 평상을 만들어 놓았다. 평상까지 가는 길에는 다니기 좋게 계단도 만들어 두었다. 한여름에는 참나무 숲이 만들어내는 넓은 그늘과 돌평상의 시원한 기운이 만나 무더위를 잊기에 안성맞춤일 것만 같다.
이 참나무 숲에서 마을길 건너편으로 크지 않은 돌탑이 마을 입구를 지키고 서있다.

이 돌탑은 예전에 새마을사업 때 없어진 탑을 대신해 마을에서 1983년에 새로 만든 것이다. 당시 마을에서는 돌탑을 없앤 후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자주 생겨 다시 탑을 세웠다고 한다. 이후 마을에서는 정월 초사흗날 오후 3시께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탑신제를 올리고 있다. 부정타지 않은 사람을 제주로 삼아 지내는데, 시루떡과 돼지머리 등을 준비해 제를 올린다. 그리고 제를 올릴 때는 풍물을 울리는데, 잡귀를 몰아내고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한바탕 축제로 제가 진행된다.
  

▲ 새마을운동 때 사라진 돌탑 대신 다시 쌓은 마을돌탑. 지금도 탑신제가 이어진다.
◆사라진 산신제와 기우제
탑신제 뿐만 아니라 마을에서는 산신제와 기우제도 지냈었다. 산신제는 마을 돌탑이 만들어질 때쯤 마을주민인 전선덕씨가 혼자서 지내기 시작했는데, 나이가 80세 중반을 넘어서면서 거동이 불편해 1년 전부터는 지내지 못하고 있다.

산신제는 보통 탑신제가 열리기 한 시간 전에 돼지머리와 오이, 당근, 밤 등 제물을 준비해 축문 없이 조촐하게 올렸다고 한다.
기우제는 마을 뒷산에서 지냈다고 하는데, 지금은 기록에만 남아있다. 옛날 마을에서는 뒷산에서 돼지 피를 뿌리는 한편, 여성 주민들이 챙이로 물을 까불렀다고 한다.
  
◆집집이 대문 대신 견공들
마을에 들어서자 최근에 포장한듯한 널찍한 마을 안길이 눈에 띈다. 도로 양옆으로도 넓은 공터가 많아 농기계와 농자재를 쌓아두기 좋아 보였다. 그리고 이 넓은 안길은 마을회관 안쪽까지 이어지는데, 버스가 들어와 돌려 나가기에 충분한 넓이다. 버스는 하루 두 번, 이른 아침과 점심때 마을회관 앞까지 들어온다.

새로 지은 집도 가끔 보였다. 한 집은 통나무집 형태로 지어 보기에 좋았다. 이 집들은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 지은 것이 아니라, 여기 살고 있는 주민들이 지은 것이란다. 그 중에는 외지에 나가 살고 있는 자녀가 부모님을 위해 새로 지은 집도 있다. 도시에서 같이 살자고 해도 고향이 좋다며 떠나지 않으니, 자식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것 같았다.

그런데 마을에 들어가 보니 집집이 대문이 없다. 담장은 있는데, 대문이 있어야 할 자리는 자동차가 드나들 수 있을 만큼 넓다. 국도와 가깝고, 무주군과 이웃한 곳이지만 안쪽으로 들어와 있어 외부인 출입이 많지는 않은 모양이다. 또 그만큼 마을 인심 좋다는 것을 얘기하는 것 같기도 했다.
대문이 없는 대신 개는 많다. 진돗개와 작은 애완용 강아지들이 거의 집집이 있었는데, 낯선 방문객의 발소리만 나면 온 마을이 개 짖는 소리에 시끌벅적해진다.

▲ 마을 뒷산에 우뚝 서서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는 나이 많은 느티나무.
◆나이 모르는 느티나무 우뚝
마을 위쪽으로 커다란 느티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위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며 우뚝 서있는 이 나무는 나이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둘레가 매우 굵다. 마을에서 만난 박선규(68)씨는 “어렸을 때도 저만했으니 나이를 알 수 없다.”라고 말했다.

느티나무 아래는 돌을 쌓아 올려 정돈해놓았고, 그 위로 정체를 알 수 없는 나무토막 몇 개가 뒹굴고 있었다. 아마도 여름에 낮잠을 청하는 주민들이 이용하는 목침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느티나무가 있는 곳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면 마을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참나무 숲에서 마을 맨 위 주택까지 모두 보인다. 마을 안에서는 몰랐지만, 위에서 보니 꽤 길게 산비탈을 따라 마을이 들어서 있다. 마을 위쪽으로는 축사 몇 곳이 보인다. 대게 젊은 사람들이 소를 키우고 있는데, 한쪽으로는 새 축사를 짓는 모습도 보였다.
  
◆겨울이 더 추운 곳
밤고개는 겨울이 비교적 춥다고 한다. 주민 이야기를 빌면 “응달이 져서 추운 곳”이다. 얼핏 보면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추위를 막아줄 것 같지만, 문제는 북향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해가 마을 뒤에서 떠 뒤로 지는 지형이다. 그렇다 보니 일조량이 적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마을에서 뒷산을 넘어가면 넓은 남향지대가 나온다. 정자나무가 있는 곳을 거쳐 들어갈 수 있다. 정자나무에서 바라보면 상당히 넓은 농경지가 펼쳐져 있는데, 집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곳은 볕이 잘 드는 곳이었다.

아마도 이곳 경작지가 펼쳐진 곳 가운데 한 곳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기록에서는 밤고개 남쪽에 있는 묘자리가 매우 좋다고 전하는데, ‘오묘(烏墓)’라고 부르는 곳이다. 풍수지리적으로 좋은 묘자리라고 하는데, 산 사람하고는 영 관계가 적은 모양이다. 마을이 들어설법도 한데 그렇지 않은 걸 보면 말이다.
  

▲ 느티나무가 있는 마을 뒷산에서 바라본 마을 모습. 완만한 산의 경사를 따라 길게 자리잡은 마을 모습이 평안해 보인다. 다만 북쪽을 바라보는 마을의 지형적 특성상 겨울이 조금 춥다고 한다.
◆“밤고개인데 밤나무가 없어”
마을회관 앞에서 비닐하우스에 가던 유영새(72)씨를 만났다. 하우스에 있던 농자재를 정리하러 가던 길이었다.

“혼자 사는 할머니들이 대부분이에요. 40대 남자들이 서너 명 되고, 남자 노인들은 몇 명 없어요. 그래서 할머니들은 아침부터 마을회관에 모여 저녁까지 함께 지내요.”
오전 10시쯤 마을 할머니들이 회관에 모이기 시작했다.
“우리 마을이 부자 동네는 아니더라도 못사는 곳은 아니었어요.”

유영새씨가 마을을 한 번 돌아본다. 옛날 생각이 나는지 잠깐 생각에 잠겼다.
“그런데 우리 마을엔 밤나무가 없어요. 마을 이름은 밤고개인데 말이에요. 대신에 저렇게 대나무가 많이 퍼졌어요.”

그러고 보니 마을에서 밤나무를 찾기 어려웠다. 마을 입구 수구막이 숲은 참나무였고, 마을 동쪽을 둘러싼 나지막한 산은 굵지 않은 대나무가 빼곡히 들어차 있다. 유씨에 따르면 산 한쪽에 대나무를 심어놨더니 이게 마구 번식해 산을 통째로 점령해버렸단다. 기후가 변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그 덕에 한겨울에도 푸른 기운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었다.

▲ 마을회관 모습

▲ 마을입구 참나무 숲에 있는 돌로 만든 평상.

▲ 널찍한 마을 안길과 공터. 버스가 이곳까지 와서 돌아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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