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칼럼>

▲ 문대성 사)한국산림경영인협회 전북도지회장
섬의 개념이란 사면이 물로 둘러싸인 작은 육지라고 말한다.
사전에서 찾아보면 한반도 주변 연안에 죽도라는 섬이 몇 개 있다. 하지만 내륙의 섬 죽도라는 지명은 진안 죽도가 유일하다. 머지않은 옛날 70년대 말 직강공사로 대섬이라 불리던 섬은 이제 명실 공히 지명 따라 홍수 때면 고립 무원한 청죽의 섬 죽도로 변한다.

오늘은 소한이 지나 대한 절기를 불과 며칠 앞둔 시점에서 이상 난동으로 때 아닌 부슬비가 아침부터 창밖에 내리고 있다. 이런 때이면 흔히 고희를 넘긴 적지 않은 나이에 상념에 젖어 드는 것은 비단 나만의 소회가 아닐까 한다.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 우연히 죽도를 처음으로 찾아 오염되지 않은 신비의 자연이 고스란히 간직된 병풍처럼 둘러싸인 기암절벽의 산과 유유히 흐르는 강줄기를 바라보면서 감상에 젖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마치 어린 시절 동화책에 나오는 비경을 연상케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곳과 인연을 맺어 인삼경작도 하고 그곳에서 초지를 조성하여 한우도 사육하고 표고도 재배하며 죽도를 찾는 것이 일과가 되다시피 하였다.

죽도라면 진안읍에서 동쪽으로 10여km 떨어진 심산유곡에 멀리 장수 수분리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금강 상류물줄기와 덕유산에서 시작되어 동향천을 거쳐 천반산 하류를 감돌아 마주치는 곳이 내륙의 섬 죽도란다.
죽도의 전설을 다듬어 올라가면 천반산 정상 부위에 옛날 난을 피하여 피신하였다는 송판서 굴과 호랑이가 뛰어넘었다는 천반산 정상에 뛰엄 바위가 옛날을 말해주듯 지금도 우뚝 서 있다.

그런가 하면 1589년 선조대왕 재위시 대동계를 조직하여 개혁을 외치던 정여립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기축옥사를 계기로 순결한 곳이기도 하다.

몇 년 전 진안을 사랑하는 향토모임단체에서 죽도천변의 정여립을 위한 진혼제를 봉행한 행사도 있었다. 머지않은 과거에는 진안의 명소라면 마이산과 운일암 반일암 죽도가 대표적으로 손꼽히는 곳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현재에는 마이산은 도립공원으로 승격되어 일취월장 발전하고 있고 운일암 반일암 역시 국민 관광지로 승화되어 변모해가고 있다.

참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죽도는 용담댐 수몰로 인하여 현재는 뇌리에서 사라져가는 처절한 처지에 놓여 있다.

수몰 전에는 전기 전화 시설까지도 가설되었고 가막분교까지 설치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야간에는 암흑으로 변하고 심지어는 현지 주민은 지금 같은 엄동설한에도 진안을 왕래하려면 신발을 벗고 맨발로 물을 건너 생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낙후지역으로 전락하였다.

다행히 지난 가을에는 군 당국의 배려로 동향면 진밭마을에서 죽도로 가는 하천에 흉관이 매설되어 한 군데라도 불편은 해소되었다.
군 당국이 농촌 인구 유입 대책과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차원에서 하루 속히 어려운 문제가 해결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죽도하면 이른 봄부터 청정한 산골에서 생산되는 고사리며 취나물 담수어 등 산채가 어우러져 옛날부터 천렵과 여가를 즐기며 경향각지에서 관광버스나 관광객이 일 년 내내 끊임없이 찾아든 선경에 가까운 별천지였다.

현 소리실 동리 입구 도로변엔 조선시대 전라 감사였던 이서구가 그곳을 지내다 암벽에 성곡(聲谷)이라는 친필 각자가 새겨져 지리에 밝았던 옛 선인들의 발자취도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 죽도 상류의 의암바위이며 삼형제 바위는 용담댐에 수위가 올라가면 잠기고 수위가 내려가면 삼형제 바위 본 옛 모습을 나타내곤 한다.

전설이 담긴 설화도 많은 곳이기도 하다.
펜을 놓으면서 죽도고유의 전설과 자연을 무딘 펜으로 제대로 묘사하지 못함을 아쉬워하면서 전국 방방곡곡에 옛 조상들의 얼이 담긴 발자취와 문화가 현대 문명의 그늘에 가려 사라져 가는 것을 못내 아쉬워하면서 이만 그친다.
         2008년 1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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