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년간 거르지 않고 일기 쓰는 황봉규씨

▲ 47년 동안 기록된 일기장을 보며 옛 기억에 젖어 있는 황봉규씨.
일기는 개인의 경험과 생각 그리고 하루 동안 겪었던 일들을 비공식적으로 기록하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기를 쓰는 사람이 곧 작가이며, 동시에 유일한 독자가 되는 것이다. 특히, 매일 일기를 쓴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재확인하는 시간이다.

◆48년 동안 일기 쓴 황봉규씨
일기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작성한 세월이 올해로 48년. 중학교 입학하기 전부터 쓰기 시작한 일기는 90권의 분량이 되고 있다.

안천면 백화리 구례마을 황봉규(61)씨. 그는 매일 밤 10시부터 30분간 방에 누워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을 일기장에 기록하고 있다.

처음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은 1960년 7월 18일. 황씨가 쓴 첫 일기이다. 이날의 날씨는 맑았고, 서당에 갔다고 기록되어있다. 일기장에 기록 하지 않았다면 자신조차 알 수 없는 일이다.

“일기를 처음 쓰기 시작할 때는 방학숙제를 하면서 이었거든요. 그런데 일기를 쓰다 보니 자세하게 쓰게 되고, 그날의 일들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기록을 하기 시작했죠. 그때 쓰기 시작한 일기는 지금에 와서 중요한 기록이 되고 있어요.”

마을의 대소사뿐 아니라 안천면의 모든 일이 황씨의 일기장에 기록되어 있었다. 누구내 집 자녀가 태어났고, 누가 죽었는지까지. 그리고 마을에서 가축의 새끼가 언제 태어났는지까지 일기장에 모두 기록되어있다.
그만큼 황씨의 일기는 자신의 역사도 되지만 안천면의 역사가 되고 있다.

◆안천면의 산 증인
“한번은 마을의 정자나무를 언제 심었는지 논쟁이 벌어진 일이 있었죠. 아무도 식재한 연도를 몰랐어요. 일기장을 보고서야 알 수 있었죠. 이외에도 일기장에는 재미있는 기록도 많아요. 한번은 마을 앞을 건너는 도랑에 징검다리가 있었는데 그곳을 술 먹고 지나다가 도랑에 빠진 일 등은 두고두고 이야기 거리가 될 일들이죠.”

황씨의 일기장에는 밝힐수 있는 기록이 있는가하면 타인에게 소개하지 못하는 비밀스러운 일도 기록되어 있었다. 비밀스러운 이야기는 한문과 영어를 사용해 자신만 알아볼 수 있도록 기록해 놓았다.

“일기는 거짓말을 기록하지 못하잖아요. 아내가 볼 수도 있고, 또 누군가 호기심에 볼 수 있어 저만 알아 볼 수 있도록 기록해 놓았죠. 비밀스러운 이야기는 공개할 수 없어요. 그냥 남녀관계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황씨가 일기를 쓰는 이유는 모든 일을 머릿속에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매일 있었던 일에 대해 잊어버리지 않기 위한 기록이다.

“일기를 쓰면서도 2∼3일까지는 기억을 했어요. 그런데 일기를 쓰면서 기억에 의지하기 보다는 기록된 일기장에 의지하다보니 하루를 넘기지 못하는 것 같아요.”

◆70년대 구례마을 현황부터
황씨의 일기장에서 확인한 내용 중에는 구례마을의 마을현황이 기록되어있었다. 70년 말 구례마을은 37가구에 218명이 살고 있었다. 하지만, 현재에는 22가구에 40명이 살고 있을 뿐이다. 당시에 마을 가구 수와 식구 수 그리고 문화시설 등이 기록되어있었다. 특히, 라디오, 재봉틀, 시계 현황까지 자세하게 기록되어있었다.

“일기장에 기록된 옛 기록을 읽을 때면 새롭죠. 그 당시 시간으로 돌아간 기분이라고 할까요. 여기 보세요. 당시에 대학생은 황의영씨가 전북대 입학했네요. 고등학생은 없었고, 한상남, 박종상 학생 등 2명이 중학생이었네요.”

황씨의 일기장에는 이듬해인 71년도에 당시 백화국교(현 안천 초·중·고) 입학식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15일 동안 여행하며 쓴 일기에는 여행과정은 물론 경비까지 자세히 기록해 놓았다.

“이 당시에는 백화리에서 무주까지 버스비가 65원이었고, 무주-영동-대전까지 255원, 대전에서 서울까지 580원(당시 한남고속)이었네요. 그리고 이태원 태평극장에서 김지미, 김부자, 이미자, 미쓰K 김상국 쇼가 150원이었고요. 또 팔도식모와 싫어도 떠나지마 2편 상영이 60원으로 기록되어있네요.”

황씨의 기록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황씨의 일기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모르겠지만 한국 기네스북에 오를만한 기록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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