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 이야기(36) 안천면 백화리(4)…상리

▲ 상리마을 전경
지난 호에 소개한 안천면 백화리 구례마을 바로 맞은편이 상배실(상리마을)이다. 1760년경 장수에서 황씨가 정착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는데, 마을 북쪽 지선봉(持仙峯) 아래 연못가에 배나무가 울창하다고 해 배실(梨谷: 이곡)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마을은 다시 샛담, 안담, 날망 등으로 나누어 불렀다. 어떤 행정적 필요 때문이 아니라 대강의 위치를 가늠하기 위해 편의상 불렀던 이름이다. 마을 아래쪽이 샛담, 마을회관을 중심으로 중간이 안담, 그리고 마을 뒤편이 날망이다.

옛날부터 이 마을은 작지 않은 마을이었다. 여느 마을과 마찬가지로 각 집은 3대가 모여 살았고, 아이들도 많았다. 그러다 산업화 시기를 거치면서 많은 주민이 떠나면서 이제 노인들이 마을 구성원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래도 현재 이 마을은 세대수가 적지 않은 편이다. 서른 가구 정도가 아직 마을에 있으니 말이다. 스무 가구가 채 되지 않는 자연마을이 수두룩한 농촌 현실에서 이 정도 규모면 큰 마을에 낄 수 있을 것 같다.
그만큼 마을에는 혼자 사는 노인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혼자 사는 세대는 여성 주민들이 대부분인데, 요즘 이들은 나이가 많고 적음을 떠나 매일같이 마을회관에 모여 오순도순 지내고 있다.

▲ 상리마을 입구
◆마을에 들어서면서
안천면에서 안천초등학교를 지나 무주방향으로 조금 가면 도로 오른쪽으로 마을 표지판이 보인다. 돌로 만든 ‘상리마을’이라고 새겨놓은 표지석과 ‘맑은시암 배실마을, 상리 전통테마마을’이라고 적어놓은 예쁜 나무 표지판이 함께 서 있다.

그 맞은편으로 커다란 나무와 오래된 점포 사이로 난 마을 진입로가 있다.
상배실을 잘 알기 위해서는 이곳부터 잘 살펴보아야 한다. 진입로 왼쪽 나무 아래는 누군가 소파를 가져다 놓아 주민이 잠깐 쉬어 갈 수 있도록 배려해 놓았다. 그리고 이 나무 뒤로 비교적 큰 돌탑이 서 있는데, 금줄을 둘러놓은 것을 보면 꾸준히 탑신제를 올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배실에서는 정자나무와 돌탑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지금의 정자나무와 돌탑보다 더 아래, 현재의 도로 위치에 정자나무가 있었다. 그리고 길 양쪽으로 돌탑 두 기가 나란히 서 있었다. 마을에서는 정자나무 아래 있던 것을 암탑, 길 건너 방앗간에 있던 것을 숫탑이라고 불렀다.

그러다 새마을운동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옛길이 넓혀지면서 아스팔트가 깔렸다. 교통이 좋아진다는 얘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개발독재 시대에 이렇다할 저항을 하기 어려웠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도로 안에 들어가 있던 돌탑과 정자나무는 개발논리에 밀려 부서지고 파헤쳐졌다.

그런데 정자나무와 돌탑이 사라진 마을에서는 계속 좋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동네 청년들이 이유 없이 사망하는가 하면, 객지에 나간 사람들에게도 안 좋은 일이 일어났다.

이에 마을에서는 급히 회의를 열어 정자나무를 다시 심고, 돌탑도 커다랗게 쌓았다. 그러면서 잠깐 지내지 못했던 탑신제를 정성껏 올렸다. 이런 마을의 정성과 바람 때문이었는지 그 뒤로는 마을에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매년 정월 대보름이면 마을에서는 온 마을주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탑신제와 달집태우기를 이어간다. 특히 정월 대보름을 앞둔 몇 주 전부터 마을에서는 돌탑부터 마을 안길을 따라 죽 등을 메달아 놓아 장관을 이루기도 한다.
 

▲ 마을입구에 쌓아놓은 돌탑.
◆상배실, 구례사람 모이던 주막
정자나무 건너편 작은 점포는 예전에 주막이었다. 상배실이 무주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어 상인들의 왕래가 잦았는데, 그에 맞춰 주막이 두 곳에 섰다고 주민들은 기억하고 있었다. 두 주막 가운데 하나는 사라졌고, 현재 남은 점포가 당시의 추억을 담은 채 지금은 몇 가지 생필품을 판매하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곳이 주막으로 운영될 때는 정말 많이도 붐볐더란다. 상배실 앞길을 지나는 사람뿐만 아니라 상배실과 구례마을 사람들이 모두 이곳에서 술잔을 기울였다. 그 덕에 이곳은 상배실과 구례마을, 그리고 인근 지역 정보소통의 장이었다. 어디에서 무슨 일이 있었고, 이웃 마을 누가 어떻게 됐는지도 이곳을 통해 이야기가 퍼졌다. 지금의 방송국과 신문사나 다름없었다.

지금도 상배실 주민 가운데 몇 명은 여전히 이곳을 찾아 소주 몇 잔을 마시고 돌아가곤 한다. 하지만, 예전만큼의 흥은 나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다.
 

▲ 마을 한가운데 있는 관광안내도.
◆전통테마마을로 가꾸다
2002년. 마을에서는 젊은 귀농인 황의기씨를 중심으로 농협에서 진행하는 팜스테이에 지원서를 제출하고 2003년 지정됐다. 그저 농사만 열심히 짓던 농촌마을에서 전혀 새로운 도전이었다. 그러다 다음해인 2004년에는 농촌진흥청에서 주관하는 농촌전통테마마을 지원사업에도 선정됐다.

당시 마을에서는 2억 원의 지원금으로 마을을 정비하는 한편, 많은 인원이 민박할 수 있는 펜션 형태의 가옥도 지었다. 더불어 마을 주변에 볼거리와 체험거리를 확충하며 전통테마마을로서의 모습을 갖춰갔다.
그 뒤로 이곳은 우리 고장을 대표하는 전통테마마을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꾸준히 관광과 견학을 위해 다른 지역에서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다. 매년 농촌체험행사도 심심찮게 열린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마을 주민들은 남다른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깔끔하게 정리하고 꾸며놓은 마을의 모습 때문이다. 그런 마을의 모습은 주민들의 자랑이었다.
마을 한가운데 있는 전통테마마을 안내판을 보면 이 마을이 어떤 볼거리와 체험거리를 갖고 있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생태체험 공간과 농촌체험 공간, 민박공간, 야생화 재배단지 등 관광객에게 보여주는 것은 물론 주민 소득과도 연계한 마을의 모습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마을의 변화과정과 온화한 자연환경, 편리한 교통 때문인지 귀농인들이 자주 찾는 마을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물론 농경지나 집터를 구하기 어려워 많은 귀농인이 들어오고 있지는 못하지만, 기회만 주어진다면 언제든 귀농인들이 몰려올 그런 마을이다. 그래서 이 마을 주민들은 “힘들다.”라는 말을 잘 하지 않는 것 같았다.
 

▲ 마을이름이 유래한 우물. 맑고 시워한 맛이 일품이란다.
◆소가 누운 마을 지세
이 마을은 풍수상 소가 누운 모습의 와우혈(臥牛穴)이라고 한다. 마을 왼쪽 기슭 소나무 몇 그루가 있는 곳이 소머리에 해당하고, 마을 가운데 있는 우물이 소젖에 해당한다. 이 우물은 아무리 가뭄이 심해도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앞서 말한 ‘맑은 시암’이란 말도 이 우물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우물은 마을 공동우물이었는데,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한 아주 맛좋은 물이 나는 곳이다. 지금은 집집이 수도가 들어가고, 대부분 보리차를 끓여 마시기 때문에 이용하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마을 사람들은 이곳에 지붕을 만들고 덮개를 만들어 관리하고 있다. 그리고 외지에서 손님들이 오면 꼭 물맛을 보게 한다고 했다. 그만큼 마을에서는 소중한 곳이다.
 
◆마을회관에서 만난 사람들
오전 10시쯤부터 마을회관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마침 눈이 오는 아침이었기 때문에 가장 일찍 나온 주민이 마을회관 계단에 쌓인 눈을 치웠다. 혹시나 누가 미끄러지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11시쯤이 됐을 때는 여성 주민들을 위한 방에만 9명이 모였다. 마지막에 도착한 최영자(69) 부녀회장은 전날 사온 ‘빠가사리’라는 물고기로 잔뜩 매운탕을 끓여왔다. 점심시간에 모두 맛보게 하기 위함이었다.
마을회관에 모인 주민들로부터 마을의 옛날부터 현재까지 다양하고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가 뭘 알아야 얘기하지.”라며 발을 빼던 주민들도 어느새 이야기에 동참해 한 마디라도 더 들려주려 했다.

그러던 중 최영자 부녀회장이 서랍에 있던 앨범 하나를 꺼내왔다. 이 앨범에는 1970년대 새마을운동이 진행되면서 변화하는 마을의 모습이 담긴 흑백 사진들이 있었다.

“이게 마을 안길 공사하는 모습이고, 이게 지붕 개량하는 모습이에요.”
하나씩 짚어주며 이야기하는 최 부녀회장의 말투에서 마을에 대한 큰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다른 주민들도 마찬가지였지만 말이다.

▲ 마을을 찾은 관광객에게 제공하는 팬션.
▲ 최영자 부녀회장이 옛 마을의 변화상을 담은 앨범을 펼쳐 보이며 설명하고 있다.
▲ 마을의 변화상을 담은 앨범.
▲ 왼쪽 뒤부터 시계방향으로 김분순(71), 길기연(76), 허령순(66), 황점이(64), 이순형(74), 김정희(65), 황정희(65), 김갑순(68), 최영자(69)씨.
▲ 마을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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