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서 쫓기듯 나와 일군 새 고향
고향에서 쫓기듯 나와 일군 새 고향
  • 점필정 기자
  • 승인 2008.02.22 16: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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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 이야기(38)안천면 백화리(6)교동

▲ 교동마을에 있는 학교와 교회. 그리고 작은 가게. 교동마을의 이름은 학교가 있다는데서 유래했다.
진안읍에서 안천면 백화리로 들어서면서 두 갈래로 길이 나뉜다. 곧장 가는 길은 무주 방향이고, 왼쪽 길은 요구와 노력 덕에 '교동'이라는 행정리로 분리됐다.

분리 후 주민들의 '소속감'은 매우 커졌다. 중리마을에 속해 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우리 마을'이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주민들 사이에서는 콩 하나도 나누는 정이 더 돈독해졌다. 수몰로 망가진 공동체가 여기에서 다시 만들어진 것이다.
 
먹고사는 문제 대책 필요
이 마을은 이주민들이 들어오고 행정리로 분리도 됐지만, 경제적으로는 여유가 없다. 농토는 기존 중리마을 주민들의 것이었고, 개간을 할만한 곳은 수자원공사, 환경청에서 일찌감치 사들였기에 농사를 지을 땅이 없었다.

일부 젊은 주민들은 식당이나 장사를 해서 그럭저럭 생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나머지 주민들은 농지를 임대해 농사를 짓거나, 아니면 자식네에서 생활비를 얻어 쓰고 있다.
이 마을 김병연(45) 이장은 "땅이 어느 정도 있으면 주민들과 협력해 무엇이라도 해보겠는데, 땅을 구하지 못해 그 무엇을 해볼 기회조차 없는 것 같다."라며 한숨지었다.

하지만, 그 무엇인가를 찾아 일을 벌여보아야겠다는 생각은 김 이장이나 주민들이 늘 가슴에 품고 있으니 조만간 무슨 좋은 일이 있기는 있을 것 같다.
 

▲ 교동마을에 마련된 임시 경로당. 이곳은 김영순씨의 집이기도 하다.
마을회관이 가장 절실해
교동에 들어서면 개인주택 대문에 '교동마을경로당'이란 현판이 내걸린 것을 볼 수 있다. 분명 개인주택이다.

이곳은 김영순(79)씨가 살고 있는 집이다. 마을 초입에 있어 노인들이 다니기 좋다는 이유로 마을에서 경로당으로 지정했다고 하는데, 매일 열너댓 명이 모여 함께 점심을 지어먹고 어울리며 지낸다고 한다. 하지만, 정식 경로당이 아니다 보니 난방유 지원같은 혜택은 전혀 없다.

마침 마당에 나온 김영순씨를 만났다.
"마을 사람들이 매일 찾아오니까 번거롭죠. 하지만, 그 덕에 심심하진 않아요. 다만, 하루라도 빨리 번듯한 마을회관이라도 지었으면 좋겠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아 그러지 못하고 있으니 안타깝죠."

마을 주민들은 회관을 지을 후보지 몇 곳을 물색해 둔 모양이었다. 대략 김영순씨의 집 근처다.
문제는 신생마을이다 보니 마을기금이란 게 있을 리 만무했고, 교동에 땅을 갖고 있는 땅 소유자들이 팔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수자원공사 같은 데서 삶의 터전을 뺏은 보상으로 조그만 마을회관 하나 지어주면 참 요긴하게 사용할 것 같은데…. 현재로서는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교동마을의 이정표 '고향땅 가든'
교동마을 초입에 있는 '고향땅 가든'이란 식당은 마을의 이정표이자 사랑방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휴게소를 제외하면 무주에 가기 전 마지막 식당이기도 한 이곳은 박기섭(51)·최진숙(46)씨 부부가 운영하고 있는데, 다른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부부의 인심도 참 크다.

▲ 박기섭(오른쪽)·최진숙씨 부부가 운영하는 고향땅 가든. 박기섭씨는 교동마을 추진위원장을 맡아 마을 일도 열심히 돌보고 있다.
일단 이곳은 늦게까지 식당 간판과 바깥 조명을 켜둔다. 식당 홍보보다는 마을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그리고 마을에 조금이나마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서라고 한다. 다른 농촌마을이 늦은 저녁이 되면 암흑천지가 되는 것이 보기 안 좋아 생각해낸 아이디어다.

그리고 도로와 인접해 있다 보니 각종 우편물과 택배를 맡아두기도 한다. 그러면 우편물과 택배를 찾아갈 주민들이 쉬엄쉬엄 내려와 차 한 잔을 하며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돌아간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종종 주민들은 이곳에 전화해 필요한 물건을 주문하기도 하는데, 그러면 박씨 부부는 식당에서 쓸 식재료와 함께 구입한다.

이 밖에도 식당이라는 특성을 살려 마을경로당에서 점심밥을 지어먹는 노인들에게 찌개 같은 요리도 제공한다.

▲ 주민 대부분은 학교 앞 도로 건너편에 모여 산다. 고향을 잃었다는 공통점은 이들이 서로 힘을 모을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수몰이 되면서 고향인 이곳에 정착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왔어요. 그리고 우리가 이주한 뒤에 수몰지역에서 여러 주민이 이주해왔죠. 그런데 운이 좋았는지 불황 없이 꾸준하게 장사를 하고 있어요. 지금은 제법 우리 식당이 알려져서 진안은 물론 전주에서도 손님들이 찾아오세요."

사실 박기섭씨는 마을에서 추진위원장을 맡아 물심양면 마을을 위해 애쓰고 있다.
처음엔 이장을 맡아보라는 압력 아닌 압력도 있었지만, 이장은 마을에서 가장 젊은 김병연씨에게 넘기고 자신은 추진위원장이란 자리를 맡아 마을의 크고 작은 일을 돕고 있다.

이런 박기섭씨의 마을에서의 위치 때문인지는 몰라도 늘 식당은 주민들에게 열린 공간으로 자리를 잡았다.
출신이 다른 사람들이 모인 신생 마을에서 조금이라도 나누고 돕는다면 마을이 조금 더 살기 좋고 인심 좋은 마을이 될 것이라는 박씨 부부의 생각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

▲ 교동마을 안쪽은 새 집이 드문 드문 있다. 일부 주택은 새로 짓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대부분이 수몰지역에서 이주한 주민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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