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혁거세(朴赫居世) 거서간(居西干)
역사이야기(9) /윤영신 서울타임스 회장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기록은 이렇다.
'…先是 朝鮮遺民 分居山谷之間 爲六村 一曰閼川楊山村 二曰突山高墟村 三曰嘴山珍支村 (或云于珍村) 四曰茂山大樹村 五曰金山加利村 六曰明活山高耶村 是爲辰韓六部…’

'…이에 앞서 고조선의 유민이 산곡사이에 분거하여 여섯 촌락을 이루었으니, 1은 알천의 양산촌, 2는 돌산의 고허촌, 3은 취산의 진지촌(우진촌이라고도 한다.), 4는 무산의 대수촌, 5는 금산의 가리촌, 6은 명활산의 고야촌이다. 이를 진한의 6부라고 하였다. …’

또 삼국유사 제1권 기이(記異)제1 신라 시조 혁거세왕 조 의 기록은 이렇다.옛날 진한 땅에 여섯 마을이 있었다. 첫째는 알천 양산촌으로 촌장은 알평(謁平)이다. 하늘에서 처음 표암봉에 내려 왔으니, 이 사람이 급량부(及梁部) 이(李)씨의 조상이 되었다. 둘째는 돌산의 고허촌으로, 촌장은 소벌도리(蘇伐都利)이다.

처음으로 형산(兄山)에 내려 왔으니 사도부(沙梁部) 정(鄭)씨의 조상이 되었다. 셋째는 무산 대수산으로, 촌장은 구례마(俱禮馬)이다. 이 사람이 점량부(漸梁部) 또는 모량부(牟梁部) 손(孫)씨의 조상이 되었다. 넷째는 자산 진지촌으로, 촌장은 지백호(智伯虎)이다. 처음 화산(花山)에 내려 왔으니 이 사람이 본피부(本彼部) 최(崔)씨의 조상이 되었다. 다섯째는 금산 가리촌으로, 촌장은 기타(혹은 只他라고도 한다.)이다.

처음 명활산에 내려 왔는데, 이 사람이 한기부(漢岐部) 배(裵)씨의 조상이 되었다. 여섯째는 명활산의 고야촌으로, 촌장은 호진(虎珍)이다. 처음 금강산(金剛山,경주 북쪽에 있는 산)에 내려 왔는데, 이 사람이 습비부(習比部) 설(薛)씨의 조상이 되었다. 이상의 글을 살펴보면 여섯부의 조상들은 모두 하늘에서 내려 온 것 같다.

노례왕(弩禮王)9년에 비로소 처음으로 여섯부의 이름을 고치고 또 그들에게 여섯 성(姓)을 주었다.
전한(前漢) 지절(地節) 원년 임자(B.C.69년)3월 초 하루에 여섯부의 조상들은 각기 자제들을 거느리고 알천의 언덕 위에 모여서 의논했다. "우리들은 지금까지 위로 임금을 모시지 않고 백성들을 다스렸기 때문에 백성들이 모두 방자하여 제 마음대로 하게 되었소. 그러니 덕 있는 사람을 찾아서 임금을 삼아 나라를 세우고 도읍을 정해야 하지 않겠소.”

의논 후에 높은 곳에 올라 남쪽을 바라보니 양산(楊山)아래 나정(蘿井) 곁에 이상한 기운이 번갯불처럼 땅에 드리워졌는데 백마 한 마리가 꿇어앉아 절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곳을 쫓아가 살펴보니 붉은 알 한 개(혹은 푸른 큰 알 이라고도 한다.)가 있었다. 말은 사람들을 보더니 길게 울고는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알을 깨뜨려 사내아이를 얻었는데 그 모양이 심히 단정하고 아름다웠다. 모두가 놀랍고 이상히 여겨 동천에서 목욕시키니 몸에서는 광채가 났고, 새와 짐승이 따라 춤추며 천지가 진동하고 해와 달이 청명해졌다고 삼국유사는 기록하고 있다. 같은 날 사량리(沙梁里) 알영정(閼英井)가에 계룡(鷄龍)이 나타 나, 왼쪽 옆구리에서 계집아이를 낳았는데 모습과 얼굴이 유달리 고왔으나 입술이 닭의 부리와 같았다.

월성(月城) 북천(北川)에 가서 목욕시키니 부리가 떨어졌다. 남산 서쪽에 있는 산 기슭에 궁실을 짓고 두 성스러운 아이를 받들어 길렀다. 두 성인의 나이 열세 살이 되는 오봉(五鳳) 원년 갑자년(B.C.57년)에 남자 아이는 박혁거세 거서간이, 여자 아이는 알영(閼英)왕후가 되었다.

나라를 다스린지 61년 되던 해에 박혁거세 왕은 하늘로 올라가고 그 몸뚱이만 7일 후에 땅에 흩어져 떨어졌는데, 이때 알영왕후도 역시 세상을 떠났다. 나라 사람들이 몸뚱이를 합해 장사지내고자 하니, 큰 뱀이 나타나 이를 방해하였다. 어쩔 수 없어서 머리와 사지를 각각 장사 지내어 오릉(五陵)을 만들었다. 이 능은 또한 사릉(蛇陵)이라고 도 부르니 담엄사(曇嚴寺) 북쪽에 있다.

六十年秋九月 二龍見於金城井中 暴雷雨 震城南門 六十一年春三月 居西干升遐 葬蛇陵在曇嚴寺北
60년 가을 9월에 용 두 마리가 금성 우물 속에서 나타나더니 소낙비가 쏟아지며 번개치고 성 남문에 벼락이 떨어졌다. 61년 봄 3월에 거서간이 승하하니, 담엄사 북쪽에 있는 사능에 장사 지냈다고 삼국사기도 신라본기에서 그렇게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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