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담 호계리 대방마을 고정근·임순옥 부부

이제 올해로 5년차가 되어간다. 귀농 말이다. 인천에서 생활하던 고정근, 임순옥 부부가 딸 유리와 함께 남편 고향인 용담 호계리 대방마을에 내려와 터전을 잡기 시작한 것이 벌써 이렇게 지나갔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전기도 전화도 들어오지 않던 오지와 다름없는 곳에 살겠다고 이들 부부가 내려 온 지도 그만큼 시간이 흐른 것이다. 시간이 흐른 만큼 어느새 농사일이 몸에 밴 시골 부부가 되었지만 이들 부부는 하루하루의 생활 속에서 행복을 찾고 꿈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 고정근, 임순옥 부부가 고향 대방마을로 귀농한지도 벌써 5년이다. 초등학교 5학년이던 딸 유리는 이제 중학교 3학년이 된다. 귀농하면서 힘들었던 일도 많았지만 그래도 이들 가족은 작은 것에도 행복해하며 시골살이를 즐기고 있었다.
고향 찾아 귀농
호계리 대방마을은 용담면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 굽이굽이 길게 나 있는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몇 가구 살지 않는 곳에 이들 부부의 보금자리가 있다.
서쪽으로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가는 시간, 찬바람을 가득 안고 방문한 집.

고정근, 임순옥 부부는 따뜻한 온돌방 아랫목에서 나른한 오후의 여유로움을 즐기고 있었다. 그렇게 이들 부부의 여유로움에 동참하여 부부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스무 살 무렵에 고향을 떠났어요. 그리고 쉰에 다시 돌아왔지요."

30년만의 귀향인 것이다. 긴 시간을 지나 돌아온 고향이지만 수몰로 인해 고향은 예전의 모습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떠났고 마을의 대부분은 용담 호에 잠겼다. 그래도 고향은 고정근씨를 불러 들였다. 떠났을 땐 혼자였지만 돌아오는 길엔 두 명의 가족이 함께였다.

"고향을 떠났지만 어머니 생전엔 한 달에 한번은 꼭 방문했어요."
몸은 떠났지만 마음은 언제나 고향을 향해 있었던 고정근씨. 그는 수몰 되지 않은 땅 일부에 직접 집을 지었다.

"처음엔 이사 올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그냥 별장식으로 지어 놓고 가끔씩 찾아와 머물다 갈 생각으로 남은 땅에 집을 지어 놓았죠. 그 후에 건강도 안 좋고 하다 보니 완전히 내려오게 된 겁니다. 그리고 저보다는 아내가 더 내려가자고 했어요."

남편보다 부인 임순옥씨가 더 원했던 귀향. 옆에서 남편이 하는 말을 듣고 있는 임순옥씨는 가족과 함께 내려와 살게 된 시골살이가 제법 맘에 든다며 환하게 웃는다.

표고로 부농 꿈꾼다
처음 이들 부부의 귀농 지역은 고향이 아닌 부여 석성면이었다. 친척이 거주하고 있는 그곳은 마을의 40%가 양송이 재배지역으로 양송이 농사를 짓기 위해 현장답사만 해도 4~5번은 다녀왔다. 하지만 부여에 터를 잡게 되면 5년 후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할 상황으로 이들 부부의 계획과 맞지 않아 고향으로의 귀농을 생각하게 됐다.

그렇게 이들 부부가 고향 대방마을로의 귀농을 생각하고 계획하며 완전하게 내려오기까지는 2년여의 준비기간이 필요했다.
"저희 같은 경우는 휴식차, 요양차 내려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수입원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 당시 딸 유리도 초등학교 5학년이었으니까요."

수몰로 대부분의 농토가 물에 묻히고 고정근씨 개인 소유의 산밖에 남지 않은 가운데 고씨 부부가 생각한 것은 바로 표고버섯 재배였다.
"땅은 없고 남은 것 산밖에 없더라고요. 그리고 산에는 참나무가 많이 있으니까 표고버섯을 생각하게 된 거죠. 그리고 어릴 때 아버지가 표고버섯을 재배하기도 했고요."

그렇게 농작물을 정하고 귀농 첫해 부부는 표고 목재로 나무 3천 그루를 베어서 본격적인 표고버섯 농사를 시작했다.
"귀농 첫해 3천본, 그 이듬해 다시 3천본, 그래서 지금은 1만 8천본에 표고버섯을 키우고 있습니다."

산에서 나무 베어다 쌓아놓는 일까지 모든 일을 다른 사람 손 빌리지 않고 직접 해 온 이들 부부. 하루하루 바쁘게 생활하고 표고버섯을 수확해도 처음에 판로가 없어 고생했단다.

"농사를 짓는 것보다 수확한 버섯을 파는 것이 더 어려웠어요. 버섯뿐만 아니라 처음에 여름배추도 함께 심었었는데 어떻게 팔아야 될지를 몰라 트럭에 배추 싣고 금산, 대전을 돌며 팔았지요. 대전역 앞에서 밤새 배추 팔았던 기억을 생각하면 웃음부터 나네요."

지금은 추억하며 웃을 수 있는 기억이 됐지만 그만큼 농작물 판로가 큰 걱정이었을 때 용담출신의 향우와, 학교 선후배, 동창들은 부부의 큰 힘이 됐다.
"항상 고맙죠. 그분들이 저희 농작물을 사주시고 소개해주시고 해서 지금 이렇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부부는 내려오면서 생각했다. 처음 5년 동안은 수입이 없을 것이라고. 이제 그들이 계획했던 귀농 5년. 이들 부부는 2007년 연 3천만 원의 수익을 올리고 올해 6천만 원의 수익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귀농 7년이 될 때 연 1억 원의 수익을 올리고자 귀농생활이 자리 잡기까지 도와준 많은 사람들의 고마움을 발판 삼아 노력하고 있었다.
 

▲ 고정근, 임순옥 부부가 표고버섯 재배를 하고 있는 하우스를 둘러보고 있다. 이들 부부는 처음 표고목재 3천본을 시작으로 현재는 1만8천본 가량의 표고를 재배하고 있다.
소박하지만 행복한 꿈
이제 조금 있으면 봄이다. 봄이면 이들 부부는 표고버섯 작업에 들어간다. 그리고 고추와 콩도 심고 복분자 농사 준비로 바쁘다. 여름이 되면 고향을 찾는 친구들을 초대하거나 놀러온 피서객을 대상으로 표고버섯 홍보도 하고 간단한 식사도 대접한다. 가을이면 고추, 버섯 등 농작물 수확하고 다음해에 버섯 종균 넣을 참나무 하기도 바쁘다. 틈틈이 홍삼도 짜고 청국장, 메주도 띄워서 가까운 지인들에게 판매도 한다.

이들 부부에게 일 년 365일은 모두 바쁜 하루하루다.
"나중에 집 조경을 멋지게 만들고 싶어요. 그리고 장독대에 메주나 간장 등을 담가 놓고 손님들에게 판매도 하고 계약을 맺어 관리도 해주고요."

임순옥씨의 앞으로의 계획이자 꿈이다.
표고버섯 재배를 주 소득원으로 끊임없이 계획하고 실천하며, 여러 가지로 소득창출을 하고 있는 이들 부부에게서 부농의 꿈은 그리 멀어 보이지 않는다.
 
생활 속에서 찾는 즐거움
"처음 집을 지을 당시 텐트를 치고 생활을 했는데, 어느 날 비가 왔어요. 텐트 안에서 누워 듣는 비 소리가 어찌나 아름답던지 음악회에 와 있다는 착각을 할 정도였으니까요."

임순옥씨는 귀농하기 전 집을 짓기 위해 와서 듣던 그 비 소리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녀에게 최고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저장되어 있는 그 기억 때문에 아마도 남편 고정근씨보다 더 적극적으로 귀농을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저는 이곳 생활이 너무 좋아요. 그리고 인천에서 살 땐 여기저기 아프다던 남편은 그전보다 더 건강해졌고, 오리, 닭, 강아지 키우며 사는 지금 이 삶이 너무 즐겁습니다."

전기가 안 들어와 후레쉬와 촛불로 생활해도 좋았고, 전화가 없어도 행복하기만 했던 이들 가족의 귀농생활. 임순옥씨는 대방마을에서 올려다 본 까만 밤하늘에 촘촘히 수놓인 별들을 보면서 가슴 설레고, 이름 모를 풀 한 포기조차도 아름답다 한다. 주위의 자연이 모두 이들 가족의 정원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는 고정근, 임순옥씨 부부.

가끔씩 귀농을 준비 중인 사람들과 현재 귀농해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찾아와 귀농생활에 대한 조언을 구하고 간다는데, 아마도 그들은 이곳에 와서 부부의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마음과 다른 사람까지도 미소 짓게 하는 이들 가족의 행복의 비법을 배워가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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