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향 사 람

▲ 김병직씨
김병직씨

상전면 구룡리 不老峙(불로티)마을 출신
(주)세필드 카운티 대표
강남구 논현2동113―13
진안사랑 골프모임 경기간사

쫓기듯이 살고 있는
한심한 나를 살피소서
 
늘 바쁜 걸음을 천천히 걷게 하시며
추녀 끝의 풍경소리를 알아듣게 하시고
거미의 그물 짜는 마무리도 지켜보게 하소서
 
꾹 다문 입술 위에
어린 날에 불렀던 동요를 얹어주시고
굳어있는 얼굴에는
소슬바람에도 어우러지는 풀밭 같은 부드러움을 허락 하소서
 
책 한 구절이 좋아
한참을 하늘을 우러르게 하시고
차 한 잔에도 혀의 오랜 사색을 허락 하소서
 
돌 뜸에서 피어 난
민들레 꽃 한 송이에도 마음이 가게 하시고
기왓장의 이끼 한 낱에서도 배움을 얻게 하소서.
(정채봉 시인 祈禱 중에서)

요즘 김병직씨는 가끔씩 귀가하여 늦점심을 챙겨 먹으면서 자리에 누어계시는 노모를 살펴보는 그 순간들에 온 몸을 스쳐가는 애정(哀情)의 전율(戰慄)과 망각(忘却)의 연민(憐憫)과 모성(母性)의 회한(悔恨)속에서 자신의 방황하는 위치를 찾으면서야 핑 돌아 떨어지는 눈물을 본다. 그리고 숟가락을 내려놓고 잠들어 계시는 어머니를 지켜보며 두 손을 합장(合掌)하여 기도(祈禱)한다. 처음 그냥 노환이겠거니 그렇게 치부하였던 올 해 여든 세 살의 어머니의 병세가 기억장애와 언어장애가 지금은 시,공간력 장애에 이르러 생각하면 그것이 그를 그렇게 슬프게 한다.

김병직씨는 1954년 12월에 상전면 불노티 마을에서 아버지 김기식(별세)씨와 어머니 안순애(83)여사 사이에서 6남2녀중 3남으로 태어난다. 원래 그의 고향 불노티 마을은 용담군 남면이였다가 정천면 구룡리 불노티로, 그리고 다시 상전면 불노티로 되었다가 지금은 용담호에 수몰되었다. 수몰되기 전 마을의 형국이 마치 스님이 태산준령을 답사하고 있는 모습이며 삼신산의 불로초처럼 늙지 않고 재산이 불어나고 삼정승 육판서가 나온다는 명당 혈이 있다하여 마을 이름의 유래가 되었다고 전해 온다.

구룡리는 불노티 마을을 중심으로 아홉 마리의 용이 꿈틀거리는 모습에서 붙여진 이름 이였다고 한다. 그는 여기서 안천초등학교를거쳐 용평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안천중학교를 졸업하던 그 해 일찍이 뜻을 세우고 고향을 떠난다. 그리고 그 후 통일상가 의류도매부에서의 그의 모든 세월은 하나도 빼놓을 수 없는 그 인생의 대차대조표의 가치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그 기간 그는 덕수상고 야간부를 마치고 (주)「경성」의 창업에 이른다. 그리고 그것을 발전시켜 1979년 봄에는 오늘의「(주)세필드 카운터」를 창업하고 운 좋게 그의 아내 이명자(고창.1954년생)씨도 만나 결혼에 이른다. 그의 아내 이명자씨는 한독대리점「(주)비보리오스 폴로」의 대표로서 그 계열의 맞벌이 부부이다. 그러한 그의 아내에 관한 필자의 물음에 그는 북송(北宋)의 유학자주무숙(周茂叔)의 애련설(愛蓮說)로 이렇게 대답한다.

水陸草木之花(수륙초목지화)/可愛者甚蕃(가애자심번)/予獨愛蓮之出泥而不染(여독애련지출니이부염)/濯淸漣而不妖(탁청련이부요)/中通外直(중통외직)/不蔓不枝(부만부지)/香遠益淸(향원익청)/亭亭靜植(정정정식)/可遠觀而不可褻翫焉(가원관이부가설완언)

물과 육지에 나는 꽃 가운데/ 사랑할 만한 것이 매우 많다/나는 유독 진흙에서 나왔으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맑고 출렁이는 물에 씻겼으나 요염하지 않고/속은 비었고 밖은 곧으며/덩굴은 뻗지 않고 가지를 치지 아니 하며/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고/꼿꼿하고 깨끗이 서있어/멀리서 바라 볼 수는 있으나 함부로 가지고 놀 수 없는 연꽃을 사랑한다./

어쩌면 그는 병석의 어머니에게 정성을 다 하는 그의 아내가 도덕수양(道德修養)을 다 닦은 어느 군자(君子)보다도 더 덕인(德人)으로 보였음이 아니겠는가 생각이 든다.

김병직씨는 골프를 많이 즐기는 편이다. 푸른 초원에 나서면 그는 우선 거기서 인생을 느낀다. 시작하여 홀과 홀을 돌아오는 몇 시간의 그 과정들이 마치 우리 인생이 태어나서 질풍노도의 세월을, 그리고 혈기 왕성한 장년기를 지나서 황혼의 저녁노을을 지켜보는 그런 것으로 그에겐 느낌으로 전해 올 때가 많다고 했다.

필자와의 몇 시간 면담하는 동안 그에게서 느끼는 인상은 그가 자주성이 강하고 책임감이 있으며 끈기와 참을성으로 주위의 화합에 집념을 가지고 있음을 느낄 수가 있었다. 소심한 성격은 차라리 인간적인 표현의 의미함이고, 두뇌회전이 빨라서 멀티풀레이형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고향사람 김병직씨. 기억을 상실하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누구를 사랑하는지를 잃어가는 고통을 보면서 그는 그것이 불운이 아니고 그것은 인생이라고 설정한다. 그 인생은 어느 누구에게 한정된 그런 것은 아니고 우리 모두가 함께 갖고 있는 책임이고 의무라고 주장한다.

눈 쌓인 뒷동산 눈썰매 타던 그 고향이, 앞 냇가 개울가에 멱 감던 그 고향의 여름이, 그가 살던 집 장독대 가에 피어 있었던 봉우리 큰 하얀 백합꽃이, 지금 용담호에 수몰되어 갔지만 그의 가슴에는 영원하게 간직되어 있을 것이다.
김병직씨 연락처: 011―9999―4402
/서울취재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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