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사람이 들어야 마을이 좋아져요"
"자꾸 사람이 들어야 마을이 좋아져요"
  • 점필정 기자
  • 승인 2008.03.21 18: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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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 이야기(41) 부귀면 세동리 … 적천 터골마을

▲ 터골마을 입구에 있는 커다란 나무. 위치로 보면 정자나무 구실을 하고 있다.
겨울 추위가 많이 물러갔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귓가를 스치는 바람이 차게 느껴졌던 3월4일이었다. 부귀면 세동리 도로를 따라 줄지어 늘어선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여전히 겨울빛을 내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메타세쿼이아를 지나면서 바로 세동리 적천의 터골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맞은편으로 신기, 덕봉마을로 이뤄진 신덕과 도로를 사이에 두고 이웃한 이 마을은 큰터골, 대전, 대곡 등의 명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런 명칭은 마을이 들어선 골짜기가 '큰터골'이라고 불렸기 때문인데, 모두 넓은 골짜기를 의미하는 것이다. 실제 마을에 가보면 조금씩 넓어지는 골짜기가 마을 부근에서 펼쳐지는 듯한 모양을 하고 있다.

신덕, 적내에서 확장된 마을
터골마을이 이뤄진 것은 밀양 손씨와 밀양 박씨 등이 거주하기 시작하면서부터라고 한다.
이 가운데 밀양 박씨는 적내마을을 중심으로 거주지가 형성됐고, 밀양 손씨는 신덕(덕봉, 신기)마을에 터를 닦았던 것으로 보인다. 2003년 기록에 신덕마을 주민 가운데 70%가 밀양 손씨라는 것과 제실 및 세거비 등이 있는 것으로 보면 신덕마을이 밀양 손씨의 입향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적내마을과 신덕마을 중간에 있는 터골은 두 성씨가 거주지를 확대해 가면서 이뤄진 마을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거리상 가까운 밀양 손씨 비율이 더 높다는 게 주민들의 설명이다.

이렇게 적내와 신덕마을에서 확장된 마을이다 보니 산신제나 기우제 같은 자체적인 전통행사가 없다. 아마도 적내나 신덕마을에서 진행하는 전통행사에 참석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이 마을에는 열세 집이 살고 있고, 주민 수는 서른 명이 채 되지 못한다.
 

▲ 터골마을 왼쪽 나즈막한 산길에서 바라본 마을 모습. 크고 작은 집, 그리고 새로 지은 집과 낡은 집이 빼곡하다. 마을 왼쪽으로 작은 물길이 난 것이 적내와 비슷하다.
마을에 들어가면서
터골마을의 시작은 도로 가에 있는 작은 구멍가게부터다. 담배와 과자 등을 판매하는 이곳은 주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곳인지, 도로를 지나는 자동차가 머무는 모습을 보기 어려웠다.

가게 옆으로 마을 진입로가 나 있다. 비교적 넓은 길인데, 오른쪽으로는 안쪽 계곡에서 이어지는 좁은 물길이 나 있다. 정자나무 구실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큰 나무 한 그루가 입구에 버티고 서 있다. 형태로 보면 적내마을과 비슷하다. 그리고 새로 지은듯한 마당 넓은 집이 몇 채 보이고, 작은 마을회관과 주택이 좁은 골목길로 이어져 있다.

마을 뒤편으로는 좁은 밭이 늘어서 있고, 각 집에 생활용수를 공급하는 물탱크가 있다.
그리고 골짜기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에덴하우스라는 교회건물이 눈에 띈다. 나무로 십자가를 만들어 세운 이곳은 전주에 있는 한 교회에서 여름에 신도들과 함께 들른다고 하는데, 연수 목적으로 만들어 둔 모양이었다.

건물 출입문은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었고, 한동안 사람 발길이 없었는지 들고양이 한 마리가 먹이를 물고 어슬렁거릴 뿐이었다.
다시 마을 쪽으로 가면 마을 왼쪽에 소나무 숲이 인상적이다. 아쉽게도 재래종 소나무가 아니었지만, 나름 마을 옆쪽을 막아주고 있어 마을을 포근하게 감싸는 듯한 형세다.
 

▲ 터골마을에 있는 적천마을회관.
낡은 마을회관, 그나마 다행
터골에 있는 적천마을회관은 새마을운동 당시 정부에서 나눠준 시멘트로 주민들이 직접 지은 것이다. 당시 주민들은 마을 앞 내에서 모래를 퍼다가 직접 벽돌을 찍어냈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손수 지은 것이다.
오래전에 지은 건물이었던 만큼 곳곳에서 세월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누렇게 색이 바랜 벽지와 어두컴컴한 내부 구조가 그렇다. 그동안 마을에서는 지붕과 창틀 등을 교체하는 등 마을회관 보수를 계속해와서 외관은 비교적 깔끔하다. 하지만, 일부 주민들은 조금 더 넓은 터에 버젓한 마을회관을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마을회관에는 아침 이른 시간부터 몇몇 주민들이 찾아와 머물기 시작한다. 적내마을 주민들은 아침 이른 시간에 찬 바람을 맞으며 20여 분을 걸어 이곳에 오는데, 거리 때문에 많은 주민이 오지는 못한다.
특히 눈이나 비가 오면 마을회관에 나올 엄두를 내지 못한다.

적내와 터골마을 주민 대부분은 오후 1시나 돼야 나오기 시작하는데, 보통 열두 명 정도 된다고 한다. 마을회관에서 밥을 지어먹을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겨울이면 마을회관에 모여 함께 밥을 지어 먹으며 지내는 다른 마을의 모습이 여간 부럽지 않다는 게 마을 주민들의 얘기다.
 

▲ 터골 왼쪽으로 흐르는 작은 도랑. 겨울이 가물어 흐르는 물이 적다.
조금씩 사람이 들어오는 곳
터골에는 조금씩이나마 꾸준하게 외부 사람이 드는 곳이다. 현재 거주하는 세대 가운데 두세 집이 외지에서 들어온 집이란다. 오래전에 들어온 집까지 포함해서다.

마을에서 처음 만난 정순이(81)씨는 남편 이강호(84)씨를 따라 마을에 들어온 지 수십 년이 됐다고 했다. 당시 남원 출신이었던 남편은 공무원이 돼 진안으로 발령이 났단다. 그런데 갑자기 한국전쟁이 터져 남편은 입대해 전쟁터에 투입됐다. 다행히 남편은 무사히 전역해 돌아왔고, 그 뒤로 계속 이곳 터골마을에서 살고 있다.

"여기가 공기도 좋고, 인심도 좋고 다 좋은데, 먹고살 방법이 없어요. 그리고 물이 부족해 농사를 짓기가 힘들어요."

그러면서 정순이씨는 "자꾸 사람이 모여들어야 살기 좋아진다."라고 강조했다. 그나마 조금씩이라도 사람이 들기 때문에 터골마을이 유지되고 있는데, 그것도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를 노릇이라며 말이다.
"우리 아들이 전주에 살고 있는데, 전주도 자꾸 사람이 줄어서 많이 어려워졌다고 하더라고요."
 
산 일궈 농사짓던 옛날
마을회관에 나와있던 이현선(68)씨와 박태현(68)씨를 만났다. 동갑내기 두 사람은 친구인데, 이현선씨는 적내마을에 살고 있다.

"옛날에는 스물다섯 집 정도가 살았어요. 한 집에 몇 대가 모여 살았으니 북적댔지. 이웃이 품앗이하며 서로 돕고 의지하던 옛날이 좋았어요."

박태현씨가 옛 이야기를 꺼냈다. 골짜기 마을인 터골에서는 마땅한 농지가 없어 마을 주변 산의 경사가 완만한 곳을 일궜다. 화전이었다. 그런데 개발독재시대에 접어들면서 정부는 화전을 금지하고, 경작지에 나무를 심었다. 그러면서 주민들은 생계를 걱정해야 했고, 급격하게 도시로 빠져나갔다.

"산이 많아서 버섯을 많이 했는데, 요즘엔 안 해요. 요즘엔 인삼농사를 시작한 사람이 몇 명 있고, 밭작물을 조금씩 짓고 있어요."
함께 땀 흘리며 농사를 짓던 예전 기억 때문일까? 터골마을의 자랑은 형제처럼 지내는 노인들의 우정이란다. 그리고 그만큼 인심도 아주 좋다.

▲ 터골 입구에 있는 구멍가게.
▲ 터골마을 오늘쪽에 있는 소나무 숲. 오른쪽을 가리고 있어 수구막이 구실을 하는 것 처럼 보인다.
▲ 마을 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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