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연희 기자가 만난 귀농인(3) … 안천면 한상묵

▲ 한상묵씨가 영지버섯을 재배하는 시설 하우스를 보여주었다. 사진/박종일 기자
떠들썩한 동네잔치에 마을은 텅텅 비었다. 이날만큼은 바쁜 일손도 뒤로 미뤄두고 즐거운 잔치의 흥겨움을 함께 즐기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한상묵(41) 씨는 '면민의 날' 행사가 한창인 오늘도 농사일에 자리를 비울 수가 없다.
 
◆귀향, 일궈가는 삶
한상묵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젊음의 열정을 안고 친구들과 함께 고향을 떠났다.
"88년도였던 것 같아요. 학교를 졸업하고 친구들과 무작정 서울로 갔어요. 가서 처음 시작한 일이 봉제 일이었지요."

봉제 일을 시작으로 귀향하기 전까지 목수 일을 했던 그는 그래도 최종의 꿈은 농사짓는 일이었다고 했다. 15년의 시간을 돌아 현재 그는 농사를 직업으로 하고 있다. 어릴 때의 꿈을 이룬 셈이다. 긴 시간을 돌아온 만큼 한상묵 씨는 현재의 지점에서 다시 삶을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가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지셨어요. 이 일을 계기로 고향으로 돌아오는 시기가 앞당겨진 것이지요."
뇌출혈로 쓰러지신 어머니 때문에 항상 생각하고 있던 귀향을 실행에 옮긴 한상묵씨는 고향으로 돌아와서 처음 일 년 동안은 농사일을 시작할 수 없을 정도로 경황이 없었다. 농사대신 건축 일을 하던 그는 귀농 2년차에 본격적인 농사를 시작했다.

"처음엔 배추농사를 시작했어요. 배추농사를 짓기 위해 강원도 정선을 한 달에도 몇 번씩 다녀오곤 했었죠. 하지만 실패만 했어요."
2년 동안 여러 가지로 노력했던 배추농사는 실패로 끝나고 그는 귀농 3년차에 영지버섯을 시작했다.

"먼저 시작한 동네 선배의 권유로 시작하게 됐는데, 첫해 330.58㎡(100평)으로 시작해서 지금은 3636.38㎡(1,100평)에 영지버섯을 하고 있어요."
이날도 그는 동네잔치인 '면민의 날' 행사도 참석하지 못한 채 영지버섯 종균 배양에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20년 후, 변화된 안천을 꿈꾸며
"동네를 친환경단지로 만들고 싶어요. 아름다운 동네로 꾸며서 관광객들을 유치하면 살기 좋은 안천 구례마을이 되지 않을까요."

그의 장기적인 계획이다. 20년을 목표로 한단다. 한상묵 씨는 농사를 지어 소득을 올린다는 것은 한정돼 있는 만큼 앞으로 경관농업을 할 것이라고 했다.

"동네에 도라지만 심어 놓아도 꽃이 피면 장관이더라고요. 감자꽃도 마찬가지고요. 여러 가지 할 필요 없이 한 가지를 전문적으로 하면 괜찮다고 봅니다."

경관농업은 투자가 많이 필요한 만큼 목표설정을 길게 잡고 내년부터 천천히 시작하려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노인들이 대부분인 구례마을의 젊은이 한상묵씨. 자꾸만 작아져가는 농촌이지만 그는 그 속에서도 충분한 비전이 있다고 믿는다.

"고향으로 다시 돌아왔기 때문에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어요. 동네 어르신들을 모두 알고 하니까요. 하지만 처음 왔을 땐 마을에 젊은 사람이 없어서 외롭기는 했습니다."

인터뷰 중인걸 안 동네 분들은 한상묵 씨 칭찬을 여기저기 거든다. 마침 그의 동갑내기 부인 이미심 씨도 면민의 날 행사에 참석하고 돌아와 주민들과 함께 뒷정리에 동참했다.

귀농한지 이제 5년. 땀 흘리며 꿈을 키워가고 있는 이들 젊은 부부는 시나브로 구례마을의 진정한 구성원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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