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박선진 소설가·주천면 무릉리

아침 출근길에 어떤 마을입구에 주민들이 모여 꽃길을 만드느라 철쭉을 심고 있었다. 또 철쭉을 - 작년 이맘 때 군내버스안에서 보았던 광경이 생각났다.

"사방천지가 꽃이여, 여그도 꽃, 저그도 꽃, 꽃도 많은 게 귀헌지도 몰르것어"
승객들과 기사님도 한데 거들며 꽃이야기는 이어졌다. 옛날에는 꽃귀경도 다녔는데 이젠 굳이 귀경갈 일 있냐는 어찌 생각하면 참으로 행복한 나라의 푸념이었다.

그랬단다. 옛날엔, 아주 아주 오래전 우리 조상들은 바쁜 틈을 내어 꽃귀경을 다녔단다. 그런데 혹 아시는가. 그분들이 다녔던 꽃귀경은 오늘날과 같은 화려한 꽃들이 아니었다는 걸. 기껏해야 복사꽃과 버드나무를 귀경 다니셨다는 걸. 생각해보면 시시하기 그지없는 귀경일 것만 같은데, 또 생각해보면 참으로 귀한 꽃임에 틀림없었을 법도 하다.

겨우내 견뎌낸 황량한 들판에 새색시 같은 아련한 분홍색 복사꽃이 웃음 짓고, 얼음 녹기 시작한 개울가에 낭창낭창한 가지에 연 초록 소매자락 내미는 버드나무의 정경은 오늘의 화려하고 눈 아픈 꽃귀경에 비하겠는가.

귀해서 그렇다고? 정답이다. 벚꽃축제가 슬그머니 사라지고 만 것도 너무 흔한 귀경이 되고 말았던 탓이다.
진안은 어디를 둘러보아도 산이다. 그리고 그 산이 이루어내는 선들이 부드럽고 곱다.

여인네의 감치고 돌아앉은 치마폭처럼 굽이굽이 살아있다. 그 산에 나무도 울창하다.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를 지경이다. 거기다가 고원이라 춥고 긴 겨울을 인내한 나무들의 강인함이 산맥의 기백을 살린다.

그런데 이젠 어디 가도 철쭉타령뿐이다. 도화동산은 또 어떤고. 용담호 언저리에 조성되는 동산은 도화동산보다는 우포늪이나 순천만 같은 습지였으면 좋았겠다 했는데 이 좁은 소견 역성들어주느라 그랬는지 작년 장마에 도화동산은 물동산이 되어 있었다.

용케도 물속에 몇 날 뿌리를 담그고 있던 나무들은 다시 살아 잎을 내기 시작했다. 사실 그 나무들이 용케도 살아남은 나무들인지 확인해보진 못했지만.

봄이 되니 하얀 조팝꽃이 눈처럼 흐르고 산수유가 노란 안개를 흩트리고 있었다. 어디선가 본 듯한 풍경이 우리 고을에도 복사되고 있는 현장이었다.

무거마을에 꽃동산을 만들 때 무엇을 심으면 좋겠는가 숲 해설을 가르치는 우리선생님께 자문을 청했다. 선생님은 이 지역의 특색 있는 꽃과 나무를 추천했지만 우리는 기대하지 않았다. 결국은 관과 나무장사간의 거래로 이루어지는 사업이기 때문이었다.

우리고장은 산이라는 큰 자원을 가지고 있고 기후 또한 특별한 고장이다. 그런 만큼 가로수와 꽃길도 좀은 특별하게 만들어 가면 좋겠다.

가로수는 그늘을 만들어 주고 눈, 비 , 바람, 안개를 감소시키는 보편적인 조건보다 오늘날에는 보행자와 운전자를 위한 조건이 첫째이다. 공해와 염분에 대한 저항성도 중요해졌다.

가로수는 성목을 옮기는 일이므로 전지를 당해도 빨리 회복하고 수형을 잡아가는 수종이 선택되어 진다. 조형물로써의 조건을 갖추어야 하고, 그리고 선정조건 끝자리에는 역사적 특성도 자리 잡고 있다.

다양한 수종은 무질서해 보여서 신중해야 한다.
아시는가, 작년에 상영되었던 영화 '화려한 휴가'속에 '메타세쿼이아'길과 '터널' 장면은 메타세쿼이아로 유명한 담양이 아닌 우리진안이 촬영지였다는 것을.

군수님은 자랑하셨다. 이런 자랑을 좀 더 많이 할 수 있는 우리진안이었으면 좋겠다.
숲은 사람을 깊이 있게 만든다. 독일에 철학자가 많은 이유이다. 시대와 역사에 따라 가로수의 역사도 달라진다. 우리에게는 가로수의 역사가 그리 길지가 않다. 시대가 가볍고 화려한 것만 좆아서인가. 화려한 꽃에만 가치를 두는 가로수가 너무 많은 것 같다. 화려한 꽃을 피우는 가로수만 가로수가 아니다.

초록의 나이든 나무들은 우리고장을 역사적 무게로 채워줄 것이고 우리가 가진 자연조건을 특화시켜 줄 것이다. 가로수를 심기 전에 조경업자와 공무원만이 아니라 전문가도 한자리 끼워주었으면 좋겠다.

가난하지만 행복지수 1위인 '부탄' 이라는 나라에서 당당하게 받아내는 일일 체류비를 거역할 수 없게 하는 그 나라의 순수한 자연처럼 우리 진안도 좀 고집 좀 부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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