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릉골 낭만의 밤

▲ 지난 3일 열렸던 무릉골 낭만의 밤에는 너, 나 할 것없이 예술에 취하고 무릉골의 정취에 취한 달콤한 하룻밤이었다.
'망각'
뉘엿뉘엿 땅거미가 깔릴 때 쯤, 주천면의 좁은 도로를 따라 올라 간 곳에는 '무릉원(대표 박 용)'이 기다리고 있었다.

웬만한 어린이만큼 돼 보이는 강아지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반긴 곳, 개울가를 건너는 다리에는 '망각의 다리'라는 푯말이 세워져 있다.

망각의 다리, 정말 이 다리를 건너면 내 속에 있는 모든 복잡한 것들을 깨끗하게 지워버릴 수 있을까? 조금은 유치한 생각을 하며 다리를 건넜다.

시골냄새를 비집고 코를 유혹하는 맛깔스런 고기 굽는 냄새, 옹기종기 모여 너 한잔, 나 한잔 주고받는 막걸리, 부모님을 따라 시골에 와 이리 저리 뛰노는 아이들을 보며 '아, 망각의 다리를 건너긴 했구나.'라고 느끼게 해주었다.
 
'야연'
무릉원에 도착하는 이들의 손마다 무언가 한 아름 안겨있다.

다름 아닌 오늘 잔치에 참석하는 손님들을 대접할 음식들이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온 이들이 각자의 손맛을 낸 음식으로 무릉도원에 모인 손님들을 대접하는 것, 이것은 무릉원만이 가진 잔치문화다.

각자 다른 이들이 만든 음식이라 맛도 다르고 종류도 다르지만 모두의 정성이 들어갔다는 점에서 여느 뷔페음식보다 값진 잔칫상이다.

이렇게 제각기 다른 지역에서 온 음식들로 마련된 잔칫상은 보는 것으로도 배가 부르다. 사람이 조금 더 오면 곧 상다리가 부러질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대통령이 와서 기다려도 음식은 절대 안 가져다 줘요. 이곳에서는 직접 가져다 먹는 것이 일종의 문화죠."
옆에서 잘 익은 삼겹살을 가져다 먹는 아저씨의 말이다. 하지만, 특혜를 받는 이들도 있으니 바로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부모님들이다. 아이들이 부모님을 위해 직접 음식을 가져다 날랐다.

덕분에 부모님은 멀리 가지 않아 좋고, 아이들은 칭찬을 받아 좋고, 부모님의 옆에 있는 사람들은 덩달아 같이 먹으니 좋다. 그래서인지 아이들과 함께 온 객들의 주위에는 늘 사람이 분주하다.

광주에서 온 중학교 3학년의 한 남학생은 "9년 동안 이곳을 찾았어요.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곳은 변함없이 너무 즐거운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여동생과 함께 온 이 남학생은 "부모님은 예술과 별로 관계는 없는 분들이지만 매년 이 곳에서 예술을 느끼고 휴식도 취하고 가요."라며 중학생답지 않은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예악'
그렇게 여러 사람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가 오가며 한참 음식을 즐기는 동안에 귀에 익은 멜로디의 은은한 기타 선율이 울려 퍼진다.

여유롭게 퍼지는 기타의 선율을 따라 자연스레 시선이 무대로 쏠렸다.
이윽고 봉원사 성각스님의 살풀이가 이어졌다. 평소 보기 힘든 무대에 어린아이들이 신기한 눈빛으로 무대주위로 하나 둘씩 몰려들었다.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던 성각스님의 공연이 끝나고 째즈, 증평굿 등 다방면의 예술이 이어졌다. 음악에 취한 한 손님은 덩실덩실 춤을 추는가 하면 귀에 익은 선율에 콧노래를 흥얼이는 이도 있다.

획일화된 요즘의 예술 공간과 달리 무릉원은 탁 트인 시골 마당에서 술을 즐기는 이, 음식을 즐기는 이, 개울가에서 휴식을 취하는 이 가리지 않고 예술을 즐겼다.

일곱 살 먹은 어린 아이도 살풀이를 보며 무언가 호기심을 품은 눈빛을 반짝였고, 70대 노인들도 째즈를 감상하며 늘어지는 음악에 살짝 귀를 맡기기도 했다.

바람 한 점 없이 평화로운 저녁이었지만, 비가 온들 어땠으랴. 이날 모인 100명 인파는 비마저도 축복이라 했을 것이다.

저작권자 © 진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