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산야생화' 대표 박종태

▲ 고향에 내려와 야생화로 꿈을 키워가고 있는 박종태씨.
2006년 4월, 고향을 떠났던 그가 돌아왔다. 푸르른 산내음과 고향의 흙냄새를 잊지 못하고 그렇게 박종태(40)씨는 어머니가 있고 옛 추억이 서린 마령면 덕천리 판치마을로 돌아왔다.

"마령중학교를 졸업하고 전주농업고등학교에 들어갔어요. 그 후 군대도 다녀오고 고향으로 내려올 때까지 직장생활을 했지만 어릴 때부터 농촌에서 생활하는 것을 꿈꿨습니다."

전주에서 형과 함께 15년 동안 자동차부품 사업을 해 오다 원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돌아온 박종태씨. 그는 현재 강하지는 않지만 은은한 향기를 전하는 야생화를 가꾸는 '마이산 야생화' 농장의 대표이다.
 
'야생화'로 꿈을 키우다
"누나와 매형의 권유로 시작했어요. 두 분이 현재 대전 유성에서 야생화 판매 사업을 하시거든요."
처음 하우스 5동에서 40~50여 종의 야생화를 키우기 시작했다는 박종태씨는 야생화에 대한 사전지식도 없이 누나와 매형의 도움과 눈동냥, 귀동냥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점차 야생화의 소박한 매력에 인터넷이나 야생화 사업이 활성화 된 경기도, 인천, 김해 등 농장을 견학하면서 지식을 쌓아갔다. 그렇게 배우면서 시작한 야생화 사업은 현재 하우스가 8동, 야생화는 100여종으로 늘어났고, 농장의 총 규모가 4,298㎡(1,300)평이다. 또한 2,645㎡(800평)에는 묘목을 심으려고 준비 중이다.

야생화를 가꾸고 키워서 판매하는 사업을 우리지역에서 처음으로 시작한 그는 지역 기후에 맞는 야생화를 찾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도 기울였다. 그래서 마이산 야생화 농장의 야생화는 다른 곳보다 추운 진안에서 얼어 죽지 않는 강한 생명력을 가진 것이 대부분이다.

야생화 관리가 서툴렀던 탓에 대부분의 꽃이 죽고 상품을 못 만들고, 수입도 전혀 없었던 혹독하기만 했던 귀농 첫해가 지나고 이제 귀농 3년차. 작년까지 적자였지만 올해부터는 그래도 한 달 평균 500만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처음 귀농을 생각했을 때 모든 것을 올인 하자는 생각으로 왔습니다. 이제 사업이 차츰 좋아지고 있으니 지금까지 준비하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하고 올해가 저한테는 본격적인 귀농의 첫해이지요."

야생화에게 물주는 것부터 모든 작업을 직접 하며 여가를 즐길 시간도 없이 바쁜 박종태씨는 앞으로 3년 더 고생할 것을 각오하고 있다. 후에 현재 자리에 야생화 매장도 오픈하고, 체험학습도 하는 등 새로운 목표를 계획하고 있다.

"가끔씩 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찾아오세요. 와서 구경도 하시고 야생화를 사가기도 하시고요. 그런데 찾아와 주시는 손님들 맞기엔 부족함이 많아요."

아직 남들에게 보여줄 만한 게 없다는 생각으로 간판이나 농장 안내판 하나 세우지 않았지만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은 '마이산 야생화' 농장의 향기로움에 끌려 방문한다. 그래서 박종태씨는 일부러 찾아와 주는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전진 중이다.
 
소박한 귀농생활
박종태씨는 지금 어머니와 4살, 6살 자녀와 함께 살고 있다. 부인은 직장 때문에 귀농생활에 함께 동참하지 못했다. 하지만 사업이 점점 자리를 잡아가니 가족이 함께 모여 생활할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땅을 밟고 자라야 바르게 성장한다는 믿음으로 비록 아내와는 주말부부로 지내지만 아이들과 함께 고향으로 삶의 보금자리를 바꾼 박종태씨. 그는 하는 일이 바빠 아이들과 자주 시간을 보내지는 못하지만 옥수수, 감자, 토란 등 작은 텃밭도 함께 가꾸며 바쁜 중에도 소박한 귀농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진안군 볼링 대표 선수로 지역에서 역할도 담당하고 있는 그는 올해 생활체육대회에는 여자부 볼링선수들의 코치로 활동한단다.

야생화의 은은한 향기를 품은 박종태씨. 진하지 않은 향의 잔향이 오래 기억되듯 그의 고향 진안에서의 삶도 그러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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