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이규홍 새진안포럼·주천면 무릉리

"제 동생이 초등학교 5학년인데, 동생이 정치를 해도 더 잘할 것 같습니다."
"어른들이 알아서 했으면 저희가 여기에 왔겠습니까?"
"공부가 문제에요? 다 죽게 생겼는데……."

"우리를 공부로 가두는 것도 억울한데 국민으로서의 권리마저 박탈하며 가둬두려 한다면 과연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인가"
"기성세대들은 우리를 괴담이나 믿는 어리석은 사람이라 보고 있다"
"우리는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내켜서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배후에 누가 있는 것이 아니라 기성세대들의 배후가 우리다"

미국 소 수입 전면개방에 대해 격분한 10대들이 촛불문화제에 참석해 우리사회와 어른들을 향해 내지르는 소리들이다. 한마디로 부끄럽고 죄스러운 마음밖에 들지 않는다. 모든 결정은 어른들이 해 놓고 그 뒤치다꺼리를 아이들에게 맡겨버린 꼴이니 말이다. 몇몇 '찌라시' 신문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을 선동해서 거리로 내 모는 불순세력을 걱정하기도 하지만 난 그 신문들이 걱정이다.

상황을 인식하는 능력이 그리 형편없으니 원. 군중심리에 휩쓸리는 아이들을 걱정하는 교육당국자도 있지만 그러면 또 어떤가? 그런 과정을 통해 깨닫고 성숙해 가는 것 아니겠는가? 예전의 과격했던 집회와 시위가 아닌 '촛불 문화제'란 말 그대로 축제의 형식을 빌려 자신들의 의견을 나름의 방식으로 표현해 내는 아이들이 자랑스럽다. 우리의 10대들은 지금 민주주의를 제대로 배우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명박씨는 정말 좋은 선생이다.

경제만능주의를 신주단지 모시듯 하고 있는 2MB정부의 막가파식 개발, 개방정책이야 짐작했던 바이니 새삼 놀라울 것도 없다. 그러나 부시와의 하루 데이트비용으로 지출한 대가가 너무 크다. 국가의 주권이나 이익, 국민의 바람 같은 건 안중에도 없는 개념 없는 외교협상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돌아버릴 지경이다. 앞에서 말한 어느 고등학생의 말처럼 초등학교 5학년이 해도 이보다 못하진 않을 거라는 생각이다.

누가 뭐라 하던 미국의 충실한 동맹을 자처하는 이명박씨와 떨거지들은 자신들만 가슴 뿌듯해하는 꼴같잖은 쇠고기 협상결과를 이행하려고 발버둥을 칠 것이다. 근거 없는 광우병 괴담에 벌벌 떨고 있는 무식하고 우매한 국민들을 안타까워하며 말이다.

얘기가 자꾸 딴 데로 흐르고 있다. 2MB를 씹자고 했던 게 아닌데 그 양반 말만 하면 자꾸 흥분이 되놔서…….

오늘의 요점은 '10대, 그리고 그보다 어린 코흘리개 아이들도 국민인가? 그렇다. 국민이다.' 를 말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이놈이 나라에선 아이들을 국민으로, 미래의 주인으로 인정을 하지 않는다. '응애'하고 태어나자마자 투표권을 주자는 얘기는 아니다. 모든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짓는데 일일이 아이들에게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돌이키기 힘든 어떤 일을 결정지을 때 미래세대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이른바 통시적(通時的) 결정체계를 갖자는 말이다. 새만금, 경부고속철도, 한반도대운하, 한미FTA, 미국산 쇠고기 수입, 공교육자율화, 의료보험민영화…….등등등.

한 번 파괴된 자연은 다시 회복이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국가 간에 맺은 조약 또한 지나고 보니까 잘못됐다고 없던 일로 하자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야말로 국제적인 망신 말고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그런 만큼 국가의 지도자는 물론, 한 분야의 책임을 맡은 자들에겐 세대를 관통하는, 시대를 뛰어넘는 통시적인 안목이 필요한 것이고 책임 또한 막중한 것이리라.

자신들이 권력을 쥐고 있으니까, 자신들의 세대가 지금 이 세상의 주인이니까 자기들 마음대로 세상을 쥐락펴락해도 된다는 생각은 참 도둑놈 심보다. 세 들어 사는 사람이 집주인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자기 편리한대로 집을 마구 뜯어고치는 격이다.

집이야 까짓것 집값 물어주면 그만이지만 개판 쳐 놓은 이 강산은 어떻게 되돌릴 수 있단 말인가? 이 나라의 윗대가리 1%들이 해 처먹은 나라 경제는 누가, 무엇으로 다시 살려낸단 말인가? 미래세대가 누려야할 가능성, 그들이 마땅히 가져야할 권리를 한마디 양해도 구하지 않고 빼앗아도 된다고 누가 말하는가.

이제 막 배꼽을 뗀 아가들도, 몰래 숨어서 담배나 피우는 찌질이 10대들도, 어른들의 어리석음을 질책하러 촛불을 든 당돌한 청소년들도 모두 이 나라의 당당한 주인이다.

그 주인들이 미친 미국 소 안 먹겠단다. 경쟁의 전쟁터로 몰릴 수밖에 없는 교육자율화 싫다고 한다. 본전도 못 뽑고 국토만 절단 낼 한반도 대운하,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고 한다.
알아들었나? 2메가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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