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을 이야기 47 진안읍 반월리 … (2)고암

▲ 마을 약도
전날까지 잔뜩 찌뿌렸던 하늘이 파랗게 갠 5월29일 오전. 진안읍 반월리 산암마을에 있는 두 자연마을 가운데 고암(古岩) 마을을 찾았다.

반월리 원반월 마을에서 조금 더 가면 나오는 이 마을은 요즘 하천정비 공사가 한창 진행중인데, 큰 공사는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된 것처럼 보였다.

간혹 중장비의 육중한 소리가 들려왔지만, 마을은 매우 조용했다. 큰 개를 키우는 집도 꽤 있었지만, 개 짖는 소리도 그리 자주 들리지 않았다. 따가운 햇볕 아래 마을은 정말 평화로웠다.

◆오래된 바위 '고암'
'고암'이란 마을 지명은 한자를 풀어보면 대략 짐작할 수 있다. '오래된 바위'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데, 마을 뒤로 이어진 산줄기에 바위가 많아 이렇게 불렸을 수도 있다.

그리고 고암과 원반월 사이 도로 옆에 있는 바위 때문에 '고암'이란 지명을 얻었다는 얘기도 있다. '바우모탱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고선대(古仙臺)'라고 새겨놓은 바위가 있다. 음각으로 글씨를 새기고 빨간 칠을 해 두었다. 돌이끼가 끼고 흐릿해 잘 읽을 수는 없었지만, 이것을 새겼을 사람들의 이름이 죽 나열돼 있다. 마지막에 '정유삼월 일(丁酉三月 日)'이라고 새겨 놓았다.
 

▲ 언덕에서 바라 본 고암마을 모습.
◆작지만 가족 같은
산암마을의 두 자연마을을 합쳐야 고작 열여덟 가구. 고암이 지소마을보다 두어 가구 더 많다. 한때는 쉰 가구 정도가 마을에 살았다고 전해지는데, 지금은 빈집까지 합쳐 스무 집 정도다. 주택가 쪽 밭이 예전에는 모두 집터였다고 하니, 비교적 큰 마을이었던 모양이다.

주민은 적지만, 그래도 젊은 사람이 살고 있다. 50대 밑으로 세 명이 있는데, 이 가운데 올해 36세인 정상용씨가 가장 젊다.

"우리 마을은 사람이 적어도 마을에 일이 있으면 모두 나와서 도와요. 마을에 계도 있고요. 어느 동네나 다 똑같은 거 아니에요?"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트랙터를 손보고 있던 정상용씨. 모내기가 늦어져서 걱정이라면서도 마을 얘기를 할 때는 얼굴에 웃음이 감돌았다.

"우리 마을이 골짜기라서 농경지가 적은 편이죠. 또 자주 강한 바람이 불어와서 애써 농사지은 게 허사가 되기도 해요. 인삼밭 차광막이 날아가고, 낱알이 떨어지고 말이에요."

정상용씨와 인사하고 다른 곳으로 가는 길에, 뒤에 "부르릉~!"하고 힘찬 시동 소리가 났다. 트랙터 수리가 끝난 모양이었다.
 

▲ 올해 89세인 양성호 옹
◆"돌탑이 엄청 컸어"
도로에 한 백발노인 모습이 보였다. 인사하고 말을 붙여보았다.
"난 남원이 고향인데, 여기로 온 지 40년 정도 됐어요."
89세 양성호 옹이었다. 마을 남성 가운데 최고령자다.

"우리 마을이 살기는 참 좋아요. 공기 좋고, 인심도 좋고요."
양성호 옹은 마침 도로 옆을 따라 흐르는 하천을 정비하는 공사를 둘러본 참이었다.

"지지난해 비가 많이 왔을 때 물이 넘쳐서 도로하고 옆에 있는 밭이 물에 잠겼어요. 본래 우리 마을 앞 하천이 물이 많이 흐르는 곳이거든요."

지소마을 위쪽 두 골짜기에서 물이 모여 이곳으로 흐르기 때문에 비가 조금만 와도 크게 불어난다는 게 양성호 옹의 설명이었다. 실제로 전날 비가 잠깐 내렸지만, 하천 물이 꽤 많이 흐르고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마을에 있던 돌탑과 마을 숲에 대해 물었다.
"어른 키보다 높고 둘레가 큰 돌탑이 있었죠. 그런데 새마을운동 때 도로를 내면서 탑을 허물고 길을 메웠어요. 여자는 나르고, 남자들은 쌓고 말이에요."

예전 고암마을 앞길은 사람만 다니는 좁은 논길이었단다. 그런데 자동차가 다닐 수 있게 넓은 길을 내준다니 주민들은 힘을 합쳐서 길을 닦았다.

그 과정에서 마을 앞을 지키고 있던 느티나무 숲에 있는 돌탑을 허물었고, 또 커다란 아름드리 느티나무도 상당수 베어내야 했다. 지금은 느티나무 서너 그루만 이곳에 숲이 있었다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그래도 그때는 사람도 많고 잘 살았는데, 지금은 이렇게 사람이 없으니 안타깝네요."

▲ 예전 마을 숲이 있던 곳.

▲ 고암과 원반월 사이 바우모탱이에 있는 '고선대'. '고암'이란 지명의 유래로 보인다.

▲ 고암마을회관

▲ 트랙터를 수리하는 정상용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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