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비속한 감정 표현을 드러낼 때 ‘땡초‘라는 말이 있다. 스님 또는 승려 일반적으로는 중(衆)이라는 말이겠지만 대개는 주저 없이 ‘땡초‘를 거리낌 없이 말한다. ‘땡초‘는 맵기로 유명한 청양고추를 지칭하던 말이기도 했다. ‘땡초‘ 혹은 ‘땡추’로도 일컬어지는데 그 어원은 ‘당취(黨聚: 떼, 무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전적 정의는 조선시대에 민가를 돌면서 동냥을 하던 탁발승(托鉢僧)에 대한 속칭(俗稱) 또는 멸칭(蔑稱)으로 되어 있는데, ‘땡땡이중’의 준말이라는 주장도 있다. 땡추로 불리던 무리들 중에는 민란(民亂)을 꾀하거나 돌아다니며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자들도 있었다. 실제로 조선 중기 이후 학문 또는 수행에는 관심이 없고, 정치의 변혁이나 역모(逆謀)를 꾀하여 뭉쳐진 비밀결사도 존재하였다. 조선의 억불숭유책(抑佛崇儒策)에 시달려 산 속으로 피해 간 승려들과 몰락한 양반계층의 자제, 또는 실정(失政)에 불만을 품은 선비 등 실로 다양한 계층의 무리였다. 특히 1504년(연산군 10년) 승과(僧科)가 폐지되고 도승(道僧: 승려 자격증인 도첩을 받은 승려)제도가 없어지면서 전국적으로 가짜 중이 급증하였다. 이들은 보통 10~20여 명씩 한 패가 되어 사찰을 돌아다니면서 수행·학업에 열중하는 승려들을 괴롭히고 먹거리 등을 약탈하는 등 한낱 부랑배 집단에 불과했다. 지역단위나 전국적 조직도 있어 조선 후기 빈번했던 민중봉기 등에도 무리를 이끌고 관여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리산 땡추 출신인 김단야(金丹冶), 금강산 땡추이던 이충창(李忠昌)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또는 심신수련을 위해 산문에 모여 수행해야할 터전을 잃고 시대의 변천에 따라 속칭 ‘떼거리’로 전락하는 처지가 되고, 결국에는 스님이 땡초로 입질당하게 된다. 비록 일부이긴 하지만 놀고 먹는 종교인, 전문인을 가장한 어중이 떠중이, 술 잘 마시고 호색하는 도인 행각자, 별 신통수 없는 점괘(占卦)로 시주(施主)나 바라는 도술인 행각자, 잿밥에 집착 긍긍하는 일반 중생도 다 땡초, 사이비(似而非)적 망상가도 땡초, 허장성세하는 자 역시(亦是) 땡초다. 땡초는 오늘날의 짜가(?) 내지 돌팔이다. 그러니 이제는 ‘땡초!’하고 생각 없이 내뱉다가는 자신 스스로에게 침 뱉는 격이 될 수도 있다. 여자 아이에게 ‘가시내!’ 하면 그 땡초한테 시집가라는 말이다. ‘가시내’는 일부 지역의 방언이지만 가승내(嫁僧奈?)에 그 어원을 두고 있다고도 본다. 가승내(嫁僧奈)는 ‘중한테 시집 간다’는 뜻으로 비꼬거나 빈정대는 표현이다. 이 세상에 땡초(어중이)든 가시내든 있을 만큼만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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