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향 사 람

▲ 송윤기씨
송윤기씨
주천면대불리장등마을 출신
(주)드림·디포 대치점 대표
재경주천면민회운영위원10년 역임
재경주천면민회 총무

고향은 그것이 비록 박토였다 하드래도 바꿀 수 없는 어머니의 가슴처럼 영원한 우리의 안식처인 것이다. 그것은 우리 용기의 원천 이였고 우리 긍지의 근원 이였다. 고향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추억의 의미였고 대상 이였다.

잠깐 스쳐간 고향의 그림자가 평생의 가슴속 인생의 행복의 이유가 되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고향은 살아가는 의미였고 고향사람은 그 대상 이였으며 향수는 언제나 그 고향 상상의 늪 이였다. 조용한 초여름 밤 깊은 산골 고향의 그 여름밤을 기억하면서 쑥국새 우는 소리에 잠 못 이루어 하던 향수의 기억들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우리의 고향사람 송윤기씨, 그도 그렇다. 그는 가끔씩 하루를 그렇게 지나면서 숨 가쁘게 지나가는 세월들을 돌아보면서 인생의 무상함을 느낀다고 했다. 지나간 세월은 참 그에게도 파란만장의 그것 이였다. 필자가 만나 본 송윤기씨는 세상을 상당히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그런 사람 이였다.

인간적인 생활의 패턴이 그의 몸에 배어있는 상실되지 않은 인간에 대한 가치판단이 거의 확실한 사내였다. 그는 부(富)에 의하여 만들어 지는 행복의 의미를 상당히 많이 회의(懷疑)하며 조심스럽게 세상을 살아가는 그러한 사내였다. 우리는 흔히 인간의 상실되지 않은 의리(義理)를 말하면서 즐거워한다.

그러나 가끔씩 그것의 뒤안길에 숨겨져 있는 의리의 인위적(人爲的) 그림자를 발견하면서 절망할 때가 많다. 그러나 송윤기씨의 인위적(人爲的)이지 않는 인간다움 앞에서 아직은 남아 있는 인간의 행복을 깨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세상의 모든 일들 앞에 덧셈과 뺄셈, 그리고 곱셈과 나눌 셈으로 상징되는 수학적 공식을 대입하며 살아가는 단순지식형(單純知識型)의 사내였다.

그의 인간다움은 아직도 세속에 빠지지 않은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움 이였고 그것은 어느 자연과도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긍정의 모양새였다. 고향 향우회의 총무 직을 맡으면서 그는 그렇게 말했다. 소수보다는 다수의 입장에서 진정한 다수의 만족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한번쯤 고민하는 쪽이 되겠다고 그랬다. 다수의 만족을 찾아서 윗사람을 보필하는 지혜를 가지겠다고 했다.

송윤기씨에게도 어려운 시절이 있었기에 나이답지 않게 그가 어른스러울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인생관의 긍정적 전환 이였다. 2000년도 운영하던 사업의 부진으로 그는 위기를 맞는다. 그러나 그의 긍정적 인간성에 동의한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그가 다시 회생하는 길에 돌아 설 수 있었던 것은 어려운 세상을 긍정적 사고로 돌파한 그의 지혜였다.

그는 세상이 만만한 것만은 아니지만 그렇게 섭섭한 것만도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것은 순전히 자기의 하기 나름임을 그는 강조한다. 송윤기씨는 1961년 2월 주천면 주양리에서 아버지 송병직씨(작고)와 어머니 문재분(75)여사의 2남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다. 다섯 살에 주천면 대불리 장등마을에 부모를 따라서 정착, 대불초등학교를 마치고 다시 농사일 따라 이주하는 부모님을 따라서 1974년 장호원으로 이주한다.

그는 장호원에서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1978년 동일문구에 입사하면서 지금의 업계에 첫발을 내 딛는다. 그 후 고향사람이 운영하는 남대문 세일 상사에서 군 생활을 포함한 10여년의 세월을 보내고 1990년 그의 나이 서른 살 적 대치문구센타를 개업하고, 다시 2000년도에는 대창문구도매센타를 창업 운영하면서 2002년도 그의 수난의 세월을 이겨내고 오늘에 이르렀다.

1982년 그는 다시 태어나도, 또 다시 열 번을 태어나도 다시 결혼하고 싶다는 구원(久遠)의 여인 김은정(47,충북보은)씨와 그의 나이 스물 한 살 적 자전거를 연습하는 운동장에서 첫눈에 반해서 인연을 맺은 뒤 결혼하고 2남1녀의 부모 되어 잘 살아가고 있단다. 그는 사람이 그리울 때 그의 영원한 마음의 고향 대불리 장등부락에 마음을 띄운다. 자라나는 후배들에게는 학용품도 보내 그들의 배움을 축복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우리의 고향사람 송윤기씨. 그는 어릴 적 참으로 감명 깊게 읽어쌓던 삼국지를 기억한다. 제갈량을 삼고초려(三顧草廬)하는 유비(劉備)를 생각하며 지도자의 인내(忍耐)를 생각한다. 유(劉), 관(關), 장(張) 세 사람의 도원결의(桃園結義)를 읽으면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인간관계 변신의 의미를 생각하고 인간적 배신에 관하여 교훈적 숙제를 음미한다.

내 가슴 고향마을/그 오름 한 자락 바람막이 겨울 뜨락에/철없는 장미가 두 송이나 피였다/빨갛게 타는 꽃잎 꽃잎/떨려오는 그 숨결/꽃잎은 나의 가슴/꼭꼭 닫힌 창문을 흔든다./

그는 어느 이름 모를 시인의 잊을 수 없는 이 시구와 함께 가슴속의 장미 두 송이를 그의 아내 김은정씨에게 보낸다고 했다.  <연락번호: 010―8883―4630>

/서울취재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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