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론>
박선진 소설가·주천면 무릉리

오늘도 비를 맞으며 백운면의 반송리, 윤기, 내동, 원노촌 마을 숲을 다녀왔다. 군에서는 지난 5월부터 7월까지 '마을숲 해설사 양성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들을 위해 마을 원로들이 마을의 유래를 설명해주신다. 그런 우리들을 가볍게 지나치지 못하고 옆에서 관심있는 눈길로 같이 서 있거나 웃음 가득히 비껴가시는 얼굴들이 우리가 하는 일을 의미있게 만들어 준다.

마을 숲은 옛날이면 어디에나 있었고 그런 만큼 우리네 삶과 연관이 있고 영향을 끼쳐왔다. 그런 마을 숲들이 시대의 변화와 개발바람에 이제는 그저 하나의 풍경으로 남아있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모르는 사이 그 많던 마을 숲들이 사라져 갔다. 그거 없어도 살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그래놓고 다시 삶이 위협받는 환경이 되어 돌아보니 남아있는 마을 숲들은 많이 망가지고 훼손되고 잊혀져 있었다.

2007년까지 조사해 보니 다행히도 진안에는 1읍 9개면에 90개의 마을 숲이 남아있었다. 아마 전국에서 제일 많이 마을 숲을 가진 지역일 것이다. 그만큼 자연자원을 많이 갖고 있는 곳인 것이다. 지난 시절에는 소외의 증거요, 현재에는 개발의 태풍을 비켜 살아남은 행운의 선물이 된 마을 숲이다.

그런데 마을 숲을 공부하면서 정말 안타까운 게 하나 있다. 숲에 가려 저기 무슨 사람이 살고 있을까 싶은 곳까지 찾아가며 진안을 알아가는 이들의 3분의 2가 토백이가 아니라는 사실말이다. 귀하게 섞여있는 토백이들은 행정상 명칭이 아닌 구전되는 마을이름을 들으면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린다.

" 맞어, 나 어렸을 때 여기 와본 적 있어" " 우리 외할머니가 저기 사셨거든, 많이 변했어도 기억이 나네" 그런 그들을 지켜보는 우리들은 귀촌의 햇수에 상관없이 머리엔 온통 물음표가 둥둥 떠다닐 뿐이다.

이런 공부를 진안 토백이들이 하였더라면 좀 더 쉽게 알아가고, 진안에 대한 자긍심도 높아졌을텐데. 실제로 함께 공부하는 토백이들의 소감은 하나같이 자긍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이런 교육이 알려지자 누군가는 모든 좋은 교육들은 왜 하나같이 귀촌인들만 받느냐고 물었다. 왜 자기들끼리만 정보를 알고 취하느냐고. 나는 입을 열지 못했다. 이제 대답을 하고 싶다.

옛날 같으면 그런 말이 합당한 불만으로 받아드려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정보는 알려고만 들면 알 수 있는 세상이다. 물론 많은 분들이 농사가 주업이다 보니 그런 시간을 내기가 어려우리라는 것도 짐작이 간다.

그러나 마을의 한 젊은 여성이 최근에야 이런 교육을 접하고 없는 시간을 쪼개어 배우고 알아가며 너무 좋아하는 것을 보니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정보를 공유하자고 불만을 하는 그 사람 집에는 컴퓨터도 인터넷도 연결되어 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구슬이 굴러다니면 그저 공깃돌에 지나지 않는 법.

자주는 못가지만 목요일마다 열리는 '마이학당'에도 가보면 대부분 군 공무원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다. 공무원들에게도 그런 교육은 필요하다. 가끔씩은 그 시간에 민원을 해결 못한 이들의 민원을 듣기도하지만 우리공무원들이 그 교육으로 발전해 나가리라 믿어 참아줄 수 있을 것 같다. 콩나물이 자라듯.

그 속에 동원이 아닌 자발적인 군민들이 많이 보였으면 정말 좋겠다. 나이가 들어 찾는 입맛이 어머니 손맛이고, 고향풍경이듯 아이들도 부모와 함께 가본 곳을 찾기 마련이다. 아이들과 숲해설을 하다가 물었다.

"숲에 오면 뭐가 생각나죠?"
" 삼겹살이요"

너무도 당연하고 자연스런 대답들. 그러나 그저 웃어넘기기엔 뭔가 좀 껄적지근한 대답들이 아닌가 말이다. 이 아이들이 자라면 마을 숲은 더 잊혀지고 마을 공동재산이 아니라면 경제적 가치로만 보게 될 것이 보인다.

우리 진안은 다른 곳에서도 부러워하는 많은 교육의 장이 펼쳐지고 있다. 그런데 거기에 모여드는 연령층은 대다수 노인층이다. 공부도 때가 있는 법이라는 이야기도 때가 되어야 안다지만 그런 현장에서 젊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으면 좋겠다.

특히 토백이들이 앞서서 나왔으면 좋겠다. 우리 같은 귀촌인들이 덜 미안하게. 그렇다고 토백이, 귀촌인으로 분류하지는 마시라. 우리도 날마다 토백이가 되어 가는 중이니까.

낮에는 시간이 없다고? 그렇다면 요구하시라. 그러면 군에서도 군민들의 시간에 맞춰 주경야독을 감행해 볼 요량도 할 것이고, 농한기에 사랑방 좌담 교육도 생각해 볼 것이라 믿는다.

오늘도 나는 참 많이 미안하고 안타까웠다. 함께 하지 못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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