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영의 잡동사니>

산은 왜 오르나?
이 질문은 나무를 하거나 산나물을 채취하기 위하여 산을 오르는 사람에게 하는 질문이 아니라 아무런 목적 없이 산을 오르는 등산객에게 하는 물음이다.

순수한 등산은 결국 빈손으로 내려올 뿐이다. 그러니 '내려올 것을 왜 힘들게 올라가나?'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특히 생명을 걸고 수백 미터의 암벽을 타는 크라이머나, 에베레스트 같은 산을 오르는 전문 산악인들은 어떤 가치 실현을 위하여 그처럼 위험하고 고통스러운 산행을 하는지 의아스러울 수도 있다.

여기에 대한 대답으로 1924년 최초의 에베레스트 등정을 앞둔 영국의 등산가 조지 말로리는 에베레스트원정을 떠나기 전, '산이 그곳에 있으니 오른다' (Because it is there)라는 명언을 남겼다. 그러나 그는 그 산행에서 실종되어 그 명언은 유언이 되고 말았다.

거창하게 에베레스트는 아닐지라도 등산인구는 점차 늘고 있다. 등산은 어떤 운동보다도 장점이 많다. 가장 돈이 덜 드는 운동이며, 육체적 건강은 물론 정신적 건강에도 최상이다. 특히 정상에 올라 아래를 바라보는 기분은 비교할 수 없는 성취감을 안겨준다.

그런데 정상에 올라도 아래를 내려다 볼 수 없게 된다면 얼마나 답답할까?
실제 이런 경우가 많이 있다. 바로 울창해진 숲 때문이다.

진안읍내의 경우 가까운 우화산이 가벼운 산책코스로 최적이지만 정상에 올라도 사방이 솟아오른 활잡목 숲으로 꽉 막혀 있어 여간 답답한 게 아니다. 그 옆의 성뫼산도 마이산 쪽은 틔여 있지만 진안읍내 쪽으로는 활잡목 숲이 전망을 차단하여 답답하다.

차라리 산림이 황폐해 있던 예전에는 우화산이나 성뫼산 정상에 오르면 진안읍내가 다 바라보여 좋았다.
진안은 80% 이상이 산악인데 진안의 산들을 올라보면 산등성이 주변의 울창한 활잡목 숲 때문에 아래의 경치를 감상하기는 힘들다.

운장산, 부귀산, 복두봉, 구봉산, 내동산 등은 다행히도(?) 정상부가 바위로 되어 있어 나무가 자라지 못하지만 그렇지 않은 곳은 사정이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해서 산등성이의 나무들을 베어내 시야를 확보하자는 주장은 산림녹화라는 차원에서 핀잔을 받기 알맞은 생뚱맞은 말이 되겠다.

그렇다면 정상부에는 수종을 갱신하는 게 어떨까? 어차피 활잡목류는 경제수종이 아니니까 정상부에 자라는 잡목류는 벌목하고 대신 키가 작은 나무들인 관목류(영산홍, 자산홍, 철쭉, 회양목, 기타)를 식재하면 경관도 개선하고 전망도 확보할 좋은 방법이라 생각된다.

한 번에 어렵다면 가까운 곳부터 시행해 볼 필요는 있겠다.
이런 작업이 확산되어 간다면 진안의 산들은 더욱 수려하게 환골탈태 되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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