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론> 이 규 홍 새진안 포럼

새로 집을 짓고 이사를 생각하다보니 가장 걸리는 게 물 문제였다. 새로 지은 집이 마을에서 좀 떨어져 있다 보니 상수도를 끌어오는데 어려움이 있어(난 이런 건 나라에서 다 해결해 주는 걸로 알았다.

참 무식하기 그지없다.) 결국 산에다 호수를 늘여 계곡물을 받아먹기로 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물이 단연 으뜸의 조건임을 실감할 수 있는 계기였다.

이렇듯 물을 가지고 고민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우리가 새로 이사를 하게 될 집이 군에서 새로 건립한 [농산촌 체험시설]인 약용식물원과 맞닿아 있어 그곳에서부터 상수도를 끌어 볼 요량으로 들여다보게 되었다.

식물원내에 여기저기 수도계량기가 설치돼 있어 당연히 상수도가 들어온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웬걸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건 사람이 먹는 식수가 아니라 마을의 농업용 관정에서 끌어 온 농업용수였다.

아무리 살펴봐도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식수는 없었다. 나도 이 농업용수를 수차례 사용해 봤는데 손 씻기도 망설여지는, 수질을 논하기 어려운 희뿌연 흙탕물이다.

애초의 청사진에서 사업규모도 대폭 축소되고 명칭도 바뀌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진 잘 모르겠지만 진안군이 공을 들여 추진하는 약초산업에 대한 이미지재고와 방문객유치로 인한 마을의 소득향상을 목적으로 무려 15억 이상을 들여 지었다는 공공시설물에 먹을 물은커녕 손 씻을 물도 없다? 그러고도 제대로 된 사업의 진행을 기대한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군에서 [으뜸마을 가꾸기 특별교부세 지원 사업]으로 시행한 6,000만 원짜리 [약초가공실]에도 물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수도계량기와 수도관이 약초가공실 안으로 버젓이 설치가 되어있기에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알고 보니 이곳 역시 약용식물원과 마찬가지로 수질검사도 거치지 않은 농업용수가 유입되고 있었다.

그나마 관정이 고장 난 상태라 수도꼭지에서는 물도 나오지 않고 있다. 역시 군에서 지원한 농산물 세척기는 약초가공실이 아닌 옆의 창고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고. 물이 없는데 무엇으로 농산물을 세척할 수 있겠으며 가공은 또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2006년 11월 25일에 사업이 완공된 이래 단 한 번도 목적대로 사용된 적이 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이런 시설을 왜 마을에 들였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지금은 또 이전의 부실공사로 인해 보수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여기에도 쌩돈 이천만원이 들어가고 있다나 뭐래나. 자부담 1,500만 원을 포함해 대략 8,000만 원 이상의 돈이 들어간 사업과 15억을 들여 만든 마을내의 체험시설이 주민 소득증대에 이바지 해 얼마나 주민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지 자못 기대가 크다.

여기서 언급하는 물 문제는 지원사업의 바람직한 진행을 가로막는 여러 이유 중 하나에 불과하리라. 행정의 사후관리 소홀이든 해당 지역주민의 이해부족이 불러들인 결과든 사업이 애초의 의도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는 원인을 밝혀내고 대책을 세워야 할 문제다.

이상은 내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 내가 확인한 사실에 불과하다. 물론 다른 마을들이야 애초의 목적과 의지대로 사업이 잘 시행되고 있으리라 믿고 싶지만 하나를 보고 열을 짐작할 수 있듯 알 수 없는 일이다. 군에서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여러 사업들도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문제와 다르지 않을 거라 여긴다.

주민 다수의 동의와 참여, 그리고 사업의 시행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조건의 확실한 점검이 필요하다. 군비니, 도비니, 국비니, 다 피 같은 국민의 세금이 아닌가? 단 한 푼도 허투루 사용될 수 없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주민이 원한다고 마을지원 사업이 무작정 이뤄질 수도 없고, 행정당국이 의욕만 앞세워 주민의 동의나 참여의 절차 없이 사업을 밀어붙여서도 안 된다. 다각도의 분석과 조사를 통해 사업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거나 미심쩍으면 하지 않으면 될 일이다. 만일 주민과 행정이 죽이 맞아 사업을 시행했다면 둘이 함께 끝까지 책임져야한다.

세밀하지 못한 사전작업으로 생각 없이 물 쓰듯 펑펑 써대는 나랏돈이 이 나라에 대체 얼마인지 감을 잡을 수도 없다. 밑 빠진 독에서 물 새듯 하는 돈 몇 푼씩만 아껴도 지자체들이 나서서 골프장을 유치하고 지역의 귀한 가치들과 맞바꾼 돈으로 세수를 충당하는 그런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아도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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