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도 인재도 많이 나는 인심 후한 마을
모래도 인재도 많이 나는 인심 후한 마을
  • 점필정 기자
  • 승인 2008.08.18 13: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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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 이야기 55 마령면 평지리 … (3)사곡(모사실)

장마가 끝난 뒤 연일 불볕더위다. 논에서는 구수하게 벼가 익어가는 향기가 풍겨오고, 뜨거운 햇볕에 말리고 있는 새빨간 고추의 매콤한 향기도 바람에 실려온다.

지난 8월14일 마령면 평지리 사곡(砂谷)을 찾았다. 모래가 많이 난다고 해 모래골, 모사실이라고도 부르는 이 마을은 마령면사무소가 있는 솔안에서 임실군 관촌면 방향으로 조금만 가면 나온다. 도로 옆에 인접해 있는데, 주유소와 마령교회 도로 건너편이 사곡이다.

마을은 주택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형국이다. 그래서 제법 좁은 골목이 여러 갈래 나 있다. 그리고 주택 여러 채는 최근에 증·개축을 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덕에 마을이 한결 정돈된 듯한 인상을 준다.
 

▲ 40여 년전에 심었다는 느티나무와 그 아래 마을 모정. 마을 모정은 주로 남자들이 이용한단다.
◆마흔 가구 모여 살지만
사곡이란 마을의 역사는 대략 200여 년 정도로 보고 있다. 기록에 따르면 1800년께 여러 성씨 사람들이 거주하면서 마을이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예전에는 네 성씨가 모여 살았기에 사우계(四友契)라는 것을 운영하기도 했단다.

사곡은 평지리에서 석교 다음으로 작은 마을에 든다고 한다. 마흔 가구에 주민 70~80명이 지내고 있다고 하는데, 지역 전체적으로 보면 그리 작은 마을이 아니지만 평지리에서는 작은 마을에 속하는 것이다.

비교적 면소재지와 가깝고 교통환경도 좋은 편이지만, 이곳 역시 농촌마을이기 때문에 인구감소가 가장 큰 걱정거리다. 마을을 지탱하는 중심축이 60세 이상 노인들인 것은 물론, 세대구성이 대부분 노부부다.

하지만, 인심만큼은 어느 마을에도 뒤지지 않는다는 게 주민들의 설명이다. 여러 성씨가 모여 이룬 마을이고, 번화한 면소재지와 가까워도 나그네에게 물 한 잔이라도 건네는 후한 인심이 있는 곳이 바로 이 마을이다.
 

▲ 김종일(63), 태태임(60)씨 부부가 수확한 홍고추를 세척기에 넣고 있다.
◆농사 짓기 힘든 모래땅
사곡은 요즘 고추를 수확해 씻고 말리는 작업이 한창이다. 시장에 내놓기 전에 손질을 하는 것인데, 그래서 마을 안쪽은 매콤한 고추향이 코끝을 간지럽게 한다.

본래 이 마을은 모래가 많은 땅이라 농사가 그리 쉽지 않다고 한다. 벼농사와 고추 재배가 대부분인데, 다행히 올해는 풍년일 것 같다고 한다.

주민들이 거둔 고추는 새빨갛고 탐스럽다. 다만, 고추값이 지난해만 못한데다 기름값이 올라 고추 건조기를 돌리는데 큰 비용이 들어 표정이 그리 밝지만은 못하다.
 
◆불이 자주 나 세운 짐대
사곡은 화재가 자주 발생했던 곳이라고 한다.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하지만, 전설에 따르면 마을에 화산(火山)이 비추기 때문이라고 한다. 화산은 마을과 마주하는 국수봉을 일컫는다고 하는데, 마을에서는 이런 화기(火氣)를 막기 위해 짐대를 세워 액막이를 했다.

짐대는 나무기둥 위에 나무를 깎아 만든 오리 세 마리를 올려 놓은 모양이었는데, 머리를 화산방향으로 맞춰놓았다. 나무가 썩으면 다시 세우곤 했는데, 1990년대 경지정리 사업을 진행하면서 없앤 뒤로는 세우지 않는다.

사곡에는 짐대를 세우는 것 말고는 당산제 같은 마을 전통이 없었다고 한다. 다만, 매년 중복 즈음에 주민이 모두 모여 잔치를 벌이는데, 화합을 다지는 행사라고 한다.

▲ 산남 선생이 지었다는 애친가를 새겨놓은 비석. 어린이들에게 부모님께 효도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인재를 많이 낸 마을
이 마을은 판사 세 명을 배출했을 만큼 인재가 많이 난다고 한다. 마을이 그렇게 풍족하지는 않았어도 교육열은 어떤 마을에도 뒤지지 않았다고 하는데, 조선 후기 저명한 학자들을 배출한 전통이 그대로 이어진듯 하다.

이런 전통은 사곡에 있는 영곡사(靈谷祠)라는 사당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영곡사에는 면암 최익현, 연재 송병선, 후산 이도복 등을 배향하고 있는데, 모두가 성품이 곧고 많은 서적 편찬에 힘썼다.

또 사곡 뒤편 모정 근처에 있는 산남 애친가(山南 愛親歌) 역시 이 마을이 유학자들이 많았을 거라 짐작게 한다. 부모님께 효도해야 한다는 내용의 비석의 글귀는 산남 이도계(1879~1951) 선생이 어린이들에게 효를 가르치기 위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 방이 작아 다시 짓자는 논의가 진행중이라는 마을회관 모습. 마땅한 터가 없어 본격적인 건립추진을 못하고 있다.
◆마을회관 새로 지어야 하는데
사곡의 마을회관은 꽤 낡았다. 방이 비좁아 더 넓게 새로 지어야 한다는 주민들의 의견이 나오고 있지만, 마을회관을 지을 터가 없어 본격적으로 추진하지 못한다고 한다.

누가 정한 것도 아닌데, 모정은 남자들이 모이고 회관에는 여자들이 모인다고 한다. 아마도 회관이 비좁아 남녀 구분없이 회관을 이용하기 어려운 모양이다.

이 마을 송경효(68)씨는 "주민 수가 줄어든다고 해도 마을회관은 필요한 것"이라며 "도시로 나갔던 사람들이 나이가 들어 고향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늘고 있는데, 마을회관은 이런 귀향인들이 기존 주민들과 화합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 마을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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