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영의 잡동사니>

한말의 천주교 박해사건은 당시 천주교의 기독교 우월주의적 선교방식이 문제를 일으켰다는 의견이 다수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는 충·효사상에 따라 조상 봉제사는 자손으로서의 당연한 도리였다.

'신주(神主)단지 모시듯 한다' 라는 속담은 가장 귀하게 여기고 애지중지하는 모양을 가리키는 말이다. 신주는 나무로 만든 조상의 위패인데, 집안에 사당이 없는 집은 신주를 항아리에 넣어 두었다가 제사 때면 내어 모신다. 그러니 신주단지는 그만큼 소중한 물건이었다.

그런데 서학(천주교)이 들어와서 유일하게 섬겨야 할 신은 '여호와' 뿐이므로 '조상신'일망정 다른 신을 섬겨서는 안 된다고 포교함으로써, 교인들 중 극단적인 사람들은 조상의 신주를 불태우기도 하였다.

당시 서학 신자가 아닌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그런 행위는 이해할 수 없었고, 극악한 패륜으로 비쳐져 여론이 비등했다. 이리되자 조정에서도 내버려둘 수만도 없게 되어 그런 박해가 빚어진 것이다.

어쨌든 가톨릭은 이런 기독교 우월주의적 포교방식을 진즉 인정하고 공개적으로 사과하는 한편 다른 전통문화, 다른 종교를 인정하는 전향적 태도를 취하였음은 높이 살 일이다.

어떤 종교든 자기의 종지만 진선진미하다고 믿고 주장하며 그 사회, 그 나라의 법과 제도, 문화적 전통이나 관행과 트러블을 일으킬 때 큰 피해만 따를 뿐 그 결과 얻어지는 공동선(共同善)은 거의 없었음을 역사는 가르치고 있다.

조선왕조에서는 지도이념이 유교라 고을마다 향교를 설립하여 공자를 비롯하여 유교의 현인들을 석전제(釋奠祭)라 하여 춘추로 제향하여 왔는바 초헌관(初獻官)은 관직의 위차대로 하되 대부분 그 고을의 수령이 맡아왔는데, 조선의 몰락이후 일제 강점기를 거쳐 지금까지도 그 관행은 이어져 왔다.

근래 향교에서는 헌관을 선정함에 있어 불교도든, 기독교도든 개의치 않는다. 유교의 가르침 자체가 인의예지(仁義禮智) 등 인간윤리에 국한되었지 신(神)에 귀의하는 「종교」가 아니기 때문에 헌관의 신앙여부는 아예 고려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부 개신교가 향교의 제향에 절하는 행위는 교리에 위배된다고 신자인 군수의 제관 참여를 막는 바람에 유림들을 비롯한 지역사회와 적지 않은 갈등을 빚고 있다. 일각에서는 다음 선거에서는 출마자들의 특정종교 신앙여부를 이슈로 삼겠다고 벼르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이게 무슨 평지풍파인가. 성경에서는 믿음, 소망, 사랑 가운데 사랑이 제일이라 하고 있다. 이는 믿음과 사랑이 서로 충돌할 경우에는 사랑을 따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 사랑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증오심, 우월감, 이기심 등을 버리고, 또한 (이웃과) 다투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다.

설사 제향에 참여하지 말라는 것이 믿음이라고 할지라도, 그 믿음이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과 상충된다면 기꺼이 믿음을 버리고 사랑을 따르라는 것이 한결같은 예수님의 가르침이라고 알고 있다.

군수가 향교제례의 헌관으로 참여하는 것은 지방자치단체의 수장으로서 전통문화의 관행을 따르는 공무상 행위인 만큼 특정 종교가 교리를 내세워 이를 거부하는 것은 우리의 헌법체계에도 위배될 뿐 아니라 전통문화를 존중하고 그 가르침을 소중히 여기는 많은 사람들과 쓸데없이 갈등과 반목을 초래하는 일로 결코 이웃을 사랑하는 일이 아니다.

9월 4일 향교의 추향(秋享)일에는 군수가 제관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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