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을 이야기 56 마령면 평지리 … (4)평산(시장)

▲ 평산마을 표지석
더위가 많이 물러간 지난 21일. 맑은 하늘에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지만, 피부에 닿는 공기는 온기가 많이 사라졌다. 가을이 성큼 다가온 것 같다.

지난주에 이어 이번에는 마령면 평지리 평산마을을 찾았다. '평산(平山)'이란 마을 이름보다 '시장'으로 많이 불리는 마을로, 마령면의 상업 중심지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송내(솔안)와 이웃해 있는 이 마을은 예전부터 백운면과 상전면에서 사람과 물건, 돈이 모이는 곳이었다. 백운과 상전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만나는 교통요충지였고, 그래서 장이 섰기 때문이다.

그러다 언젠가 하나 둘 장꾼들이 줄기 시작했다. 남은 것은 평산에 거주하는 상인들뿐이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예전 왁자지껄했던 시장의 풍경을 추억했다.
 

▲ 평산마을은 상가가 많다. 상업 중심지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고향 다른 67가구 옹기종기
평산에 들어서면 상업 중심지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도로 가에 줄지어 늘어선 다양한 상점이 그런 느낌을 준다.

상업 중심지답게 가구수도 적지 않다. 현재 67가구가 거주하고 있다고 하는데, 상업에 종사하는 가구가 여럿이 있어 다른 마을에 비해 젊은 축에 드는 사람도 비교적 많은 편이다.

재미있는 것은 토박이가 얼마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은 백운면이나 상전면 등에서 장사를 하기 위해 이주한 가구들이다. 마을에서 토박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송상기(73)씨를 비롯한 서너 명이 전부란다.
 

▲ 주차장으로 변한 평산리 장터
◆돈을 벌면 떠나는 곳
마을 안쪽에는 비교적 넓은 공터와 닮은 모양의 나지막한 상점건물 몇 채가 있다. 10여 년 전까지 장이 서던 장터다. 지금은 공용 주차장으로 활용하고 있는데, 주변에는 많은 식당과 함께 여관도 보였다. 꽤 많은 사람이 오가던 장터였던 모양이다.

마령장은 3일과 8일에 섰다. 고추와 쌀을 비롯한 농산물과 타지 장꾼들이 가져온 공산품들이 넘쳐났다. 게다가 평산에는 담배 수매창고가 있어 담배 수매철만 되면 담배를 내놓으려는 농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규모로만 본다면 진안장보다 훨씬 컸다는 게 주민들의 얘기다. 불과 30~40년 전 이야기다.

"담배 수매를 시작하면 사람들이 무지하게 모여들었어. 그리고 목돈을 받아들고는 집에 가지 않고 그렇게들 놀음을 했어. 며칠을 그렇게 놀음을 하다가 집에 돌아갈 때는 북어 두 마리하고 석유 한 병 달랑 들고 갔다니까."

평산마을 터줏대감으로 불리는 송상기씨는 얼마나 많은 사람과 돈이 이 마을에 모여들었는가를 설명하다가 이런 이야기까지 들려주었다.

"더는 사람들이 시장을 찾지 않아. 교통이 좋아지니까 임실, 장수, 전주까지 나가는 경우가 많아. 여기 사람들만 죽어나는 거지."

본래 '평산'이란 마을 이름은 풍수지리상 평사낙안(平沙落雁)이라고 부르는 형국에서 따왔다고 전한다. '평사낙안'은 '모래펄에 날아와 앉은 기러기'라는 의미가 있는데, 이것 때문에 마을이 더 성장하질 못했다는 이야기가 많다.

이것은 '기러기'라는 새에서 연상된 풀이다. 새가 모이를 양껏 먹었으면 그만 먹고 날아가야 하는데, 욕심을 내서 많이 먹으면 날지 못하고 주저앉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마을에서는 돈을 벌면 떠나야 한다는 속설에 꽤 무게가 실려있다.
 

▲ 평산마을회관
◆고향 삼은지 50년
몇몇 상가를 돌며 옛 장터 얘기를 듣다가 한 기계 수리점에서 최덕만(76)씨를 만났다. 50년 전 군 전역 후 고향 백운면을 떠나 이곳에 정착했단다. 그리고 이곳 평산에서 죽 수리공으로 일했다.

"군대에서부터 기름밥을 먹었어. 그래서 여기로 와서는 자동차, 구르마, 자전거 등 손님들이 가져오는 건 뭐든 고쳐줬어. 그래서 돈도 꽤 잘 벌었어."

작업장 안에 있는 다양한 전동공구와 연장이 그간의 세월을 얘기해주는 것 같다. 지금은 전문 카센터와 수리점, 대리점이 최씨의 일을 대신하고 있어 일거리가 많지 않지만, 그동안 쌓아둔 공구와 기술이 아까워 손을 놓지 못한다고 했다.

"백운하고 성수가 가까우니까 거기에서 여기로 이사 온 사람들이 많아. 토박이는 거의 없어. 그리고 기러기 혈 자리이기 때문에 돈을 벌면 나갔어. 가구수는 크게 안 변했는데, 사람이 줄어든 거지."

그러다 문득 이런 얘기도 꺼냈다.
"우리 마을에 화투를 치는 사람들이 있는데, 한 스무 명쯤 돼. 그런데 이 사람들이 인도를 막고 하루종일 화투를 치거든. 그래서 사람들이 도로로 내려가서 지나가야 하기 때문에 사고 위험이 있어. 어떻게 대책을 세워야 해."

▲ 마을 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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