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담댐은 할머니의 가게와 함께 행복했던 삶까지 가져가 버렸다

▲ 정천에 있는 큰 점방
큰 점방 할머니가 용담댐에 큰 점방을 뺏긴 것이 벌써 7년이 훌쩍 넘어버렸지만 옛 일이라고 치부하긴 그녀가 큰 점방에 흩어 놓은 추억이 너무 많다. 그래도 이따금 큰 점방을 찾아오는 옛 단골들이 큰 점방을 기억해주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올해로 77세가 된 큰 점방 김씨 할머니는 유난히 큰 점방이 그립다.
모두가 배고팠던 시절, 큰 점방이 있었기에 아들, 딸은 물론이거니와 손자들 대학공부까지 시킬 수 있었다.
하루하루가 넉넉했던, 하루하루가 바빴던 기억이 언제나 새록새록 떠오른다.

딱히 가게 이름도 없었지만 당시 진안사람들은 모두 할머니의 가게를 '큰 점방'이라 불렀다.

▲ 큰 점방의 김씨 할머니
"하루에 담배만 팔아도 먹고 살만 했다오. 돈에 여유가 있으니까 가족들도 모두 걱정 없이 행복했지, 그려. 내 젊은 시절을 큰 점방에 바쳤지만 절대 후회한 적은 없었다오. 그러나 지금은 조금 후회가 되는구먼. 이렇게 허무하게 끝날 것을 모질도록 가게를 놓을 줄 몰랐지. 지금도 큰 점방은 놓질 못한다오. 물론 그때보다 손님도 없고 수입도 없지만, 힘들구먼. 큰 점방을 놓기가 참으로 힘들구먼."

용담댐에 가게 터를 빼앗기고 할머니는 점방을 정천면 조림초등학교 앞으로 옮겼다.

◆아들 잃고, 가게마저 잃어
할머니는 용담댐이 원망스럽다. 차라리 물속에 잠겨버렸으면 좋겠다며 눈물을 훔친다.

"아직도 물에 안잠기고 버젓이 가게 터가 있다오. 볼 때마다 억장이 억만 번은 무너진다니까. 사람 사는 세상사가 요지경이라지만, 이것 좀 보소. 그렇게 사람이 북적이던 큰 점방이 이렇게 쓸쓸한 곳이 될 줄 그 누가 알았겠소."

그나마도 큰 점방 할머니는 슬하에 아들 셋, 딸 하나를 두어 자식농사만큼은 풍년을 이뤘지만 전주에서 교통사고로 아들 하나를 잃는 바람에 이미 마음은 상처를 입을 대로 입어버렸다.

▲ 큰 점방 내부 모습
"심장을 바늘로 수천 번을 찔러도 이것보단 나을게요. 돌아가신 남편에게는 미안하지만, 남편보다 백배, 천배는 보고 싶다오."

나이가 들어 몸의 기능이 하나 둘 정지신호를 보내고 있지만, 눈물샘만은 멈출 줄 모르는 할머니. 이미 아들을 먼저 보낸 지 10년이 지나버렸지만, 아직도 아들은 기억 속에서 연신 "어머니"를 외치며 해맑게 웃고 있다. 아들의 모습을 잠시 생각하던 할머니는 이윽고 또 눈물을 훔친다.

용담댐을 볼 때마다, 너무도 조용한 가게를 볼 때마다 가슴 한 구석이 답답하다는 할머니. 그리고 이미 늙고 쇠약해져 담배 값 계산마저 시원찮아 이따금 젊은 시절을 떠올리며 위로하는 할머니. 할머니는 용담댐이 밉다.
 
◆돌아갈 수 없는, 그러나 기억해야만 하는…
지금의 이마트도 그때의 큰 점방에는 비할 바가 못 될 것이다.

정천 사거리에 있던 큰 점방은 말 그대로 진안 사람들은 모두가 한번 쯤 들러 온갖 생활 잡화를 챙겨가던 곳이었다. 호롱불 기름에 쌀까지, 큰 점방은 말 그대로 컸다. 없는 것도 없었다.

"안천에서도 쌀을 팔러 왔다오. 담배가 제일 인기였지. 진안으로 가는 사람이든, 용담, 정천으로 가는 사람이든 꼭 들러 담배를 사가곤 했으니까. 그 때 큰 점방은 사람들이 여기 저기 사람들이 모여 서로 안부를 묻거나 소식을 전달하는 곳이기도 했구먼."

7년 전 큰 점방의 모습은 할머니에게 있어서는 쉬이 잊혀 지지 않는 곳이다.
지금의 자리로 옮기면서도 굳이 옛 큰 점방의 모습을 담으려 했던 것도 화려했던 지난 시절을 버릴 수 없어서는 아니었을까?

▲ 큰 점방 내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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