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영의 잡동사니>

필자가 어린 시절에는 시장에 '난장'이 설 때가 있었다. 난장이란 정기적 장이 아닌 특수한 장이라는 뜻이다. 난장을 여는 것을 '난장 튼다.'라고 하는데 하루만 열리는 장이 아니고 적어도 10일간 이상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열리기도 한다.

본래는 물자가 다량으로 생산되는 지역이나 인근지방의 생산물이 많이 집산 되는 곳에서 열리게 되는 것이 상례였는데, 지방의 경기부양과 번영을 도모한다는 명분으로 열리는 수도 있다.
그러나 난장에는 놀이꾼·점쟁이·노름꾼·건달패 등이 모여들어 소비를 조장하고 유흥적 낭비를 유발시켰다.

진안읍의 난장에는 여러 지방의 풍물패들이나 여성국극단이 찾아와 공연을 하기도 하고, 씨름판이 벌어지기도 하였는데 장원에는 송아지를 시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난장의 사실상의 목적은 도박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노름꾼들이 모여들어 판을 벌이는데 도박 도구로는 주로 화투였으나 드물게는 투전, 골패 등으로 '버티기', '쪼이', '짓고땡이' 등으로 승부를 가렸다.

화투 두 장, 또는 석 장을 합산하여 승부를 가리는 방식인데 한 끗을 따라지, 두 끗은 두비, 세 끗은 심, 네 끗은 새, 다섯은 진주, 여섯은 서시, 일곱은 고비, 여덟은 덜머리, 아홉은 가보로 불렸다.

합산 결과 10이면 끗수로는 0이 되므로 따라지보다 못하여 그야말로 망통, 도는 무대라 불렸다. 망조와 통하는(亡通), 기다릴 것이 없다(無待)는 뜻으로 된 말일게다.

그때도 도박은 위법이었지만 시장의 활성화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당국이 도박행위를 모르는 체 눈감아 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난장의 도박판에서 패가망신을 하는 경우가 하나, 둘이 아니었다. 따라서 전후의 혼란기에서 사회가 점차 질서를 잡아가면서 난장은 사라져 갔다.
그러나 인간의 사행심은 본성에 가까운 것이라 도박은 여러 가지 형태로 이어져 오고 번져나갔다.

이를 무조건 막을 수만 없어 특별법을 만들어 도박을 합법화해준 경우도 있는데 폐광된 탄광촌을 살린다는 명분으로 강원도 사북의 강원랜드 카지노, 외국의 관광객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관광호텔의 카지노, 건전한 놀이문화를 위한다는 한국마사회의 경마 등이다. 주택복권, 로또복권도 사행심에 기댄 도박의 일종이다.

이런 합법적인 도박장에서도 패가망신하여 심하면 자살하는 사람들이 속출하여 커다란 사회문제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국민적 대표오락이 된 '고스톱'의 폐해에 비하면 그런 건 그야말로 '새발의 피'다.

고스톱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식당의 내기 고스톱, 사우나·찜질방의 목욕 고스톱, 술집의 술판 고스톱, 야외에서의 행락고스톱, 공항에서의 항공 고스톱, 전세버스에서의 버스 고스톱, 열차고스톱, 명절날의 가족·친지 고스톱 등 대한민국은 고스톱 광풍에 휘말린 지 오래다.

이처럼 고스톱이 유행인 원인은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므로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곤란하지만 우리 사회에 건전한 놀이문화의 뿌리가 아주 취약하다는 데에는 의견이 일치한다.
추석이 다가온다.

이번 추석에는 가족 친지들이 모여 온통 고스톱으로 시간을 날려버리지 말고, 명절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 보면 어떨까.

저작권자 © 진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