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진안사람으로의 귀향을 바라며…

박 용 규 씨진안읍 연장리 중평 출신명진건축사무소 대표(건축사, 기술사)무통·장수연구소 운영(무료)재경진안군민회 직능이사만주와 북경의 북당성당에서 사목하던 김기봉신부가 중국이 공산화되고 북한에서의 여러 심상치 않은 상황들이 일어남에 한국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 부산교구에 돌아왔다. 김기봉신부의 여동생 김순녀(세례명 : 발바라)씨가 오늘 여기 소개하려는 박용규씨의 모친이다. 김기봉신부가 그의 외삼촌이 된다.박용규씨.(세례명 암브로시오)1939년 6월 20일생. 대개 실향을 말하면 잃어버린 고향의 까닭들이 여러가지가 있다. 어찌되었건 고향을 잃는다는 것은 안타까움이고 서러움임에는 틀림없다.박용규씨 세대의 실향감은 좀 다르다.박용규씨는 마령면 연장리의 연장국민학교를 졸업하였다.그의 할아버지는 마령국민학교의 설립자이며 한들성당의 설립자이신 박덕화씨이다. 한들 교우촌의 부농이었던 그의 집안은 구교의 집안으로 그의 고조할아버지(박덕화씨의 할아버지)는 박해를 피해서 경상도 지방을 전전하였고 그의 할아버지는 천주교 연락책임자 역할을 하여 부산 지방을 왕래하다가 급병에 걸려 사망하였다.그의 증조할아버지(박덕화씨의 할아버지)는 아들의 죽음에 마음이 상하여 경상도를 떠나 전라도 진안지방으로 이거하였는데 침을 잘 놓아 약국으로 생업을 삼았다.원래 한들(大坪)은 上坪, 中坪, 下坪으로 구분되는데 박용규씨의 집안은 中坪에 있었다.그의 첫번째 실향은 그가 마령중학교를 1년 마치고 그의 외삼촌 김기봉신부를 따라서 부산 대양중학교로 옮기면서 이루어진다.1954년 학업을 위하여 박용규씨는 고향 한들을 떠난다.박용규씨는 부산에서 대양중학교와 대양공업고등학교를 그리고 1965년도에 부산대학교 공과대학 건축과를 졸업하는 동안 1961년 5월에 학적보유자로 입대하여 1962년 11월에 철원, 연천 지구에서 제대하는 동안 이 나라의 역사는 변화되어 있었다.우리는 흔하게 그들의 세대를 4.19세대라 일컷는다. 4.19세대라는 의미속에는 6.25와 독재정권과 또는 5.16으로 통하는 군부의 그것과 이 나라의 온갖 역사들이 그들의 곁에서 혹은 행으로 혹은 불행으로 개개인의 취향에 따라서 오고갔음을 기억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끝내자.다만 박용규씨 그의 가계가 또는 가통이 말하듯이 한들의 지주계급이었으며, 천주교당의 설립자였던 그 집안이 받았던 시대의 아픔을 짐작할 수가 있음이다.5.10 제헌선거에서 박용규씨의 장현인 박노헌씨가 국회의원에 입후보하였다가 실패하였던 아련한 사연도, 대동아 전쟁중에 징집되어간 그들 형제들의 사연도, 6.25의 와중에서 종교인(천주교)의 박해로 그의 형제들이 빨치산들의 횡포에 죽어간 사연도 당시 창호지 공장과 과수원을 경영하시던 그의 아버지가 유랑극단에 봄을 싣고 전국을 누비는 그의 숙부를 찾아서 헤매이던 그 사연들도 우리는 1950년대를 풍미하던 그 시대의 모든 사연들로 함께 모아서 짐작하기로 하자.다만 부산대학교 59학번이였던 박용규씨가 초창기 카토릭 학생회의 활동에 참여하면서 당시 젊은 학도들이 정과 열을 다 쏟아 넣었던 그 학생운동에 어떻게 빠져들었는지는 후일 다시 한번 기록하기로 하고 우선은 당시의 시대상에 미루어 짐작하기로 한다.박용규씨의 두번째 실향은 순전히 타의에 의하여 이루어진다.그것은 1983년 2월 15일 대통령령 11027호에 의한 마령면 연장리가 진안읍 연장리로 병합되면서 였다.어느날 그들은 순전히 관보에 의하여 자신들의 고향이 바뀌었음을 알게된다.그러나 그들은 아직도 진안읍 연장리가 아닌 마령면 연장리로 익숙해져 있어 마령면 사람임을 강조하는 세대에 속한다.제한된 지면으로 박용규씨의 이야기를 다 옮기기에는 부족하다. 다만 박용규씨가 진안사람으로서 지금 진안의 곁으로 다가와서 침술로 또는 공학도로서 우리에게 봉사하는 마음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우리는 따뜻하게 느끼고 있다.박용규씨에게 물었다. 집안의 가풍이거나 분위기를 보나 어쩌면 신부가 되어 있어야 하는게 맞는데 아닌가하고.“신부는 너무나 고독한 직업입니다”그는 한마디로 대답한다. 어찌되었든지 그의 선대가 침술에 능통하였다거나 구교의 집안이였다거나 그것들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박용규씨의 오늘 걸음 걸음에서 음미하여지는 진안사람으로서의 긍지를 지켜가는 한 세대의 아름다운 마감을 지켜보자./HP : 011-221-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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