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을 이야기 60 정천면 월평리 … (3)하초(아랫새내)

▲ 마을 약도
대목재를 넘어 정천면으로 접어든 뒤, 상초마을을 지나 하초 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옛날 봉화를 올렸다고 해 '봉우재'라고 부르는 뾰족한 산봉우리, 그 아래 용담댐 건설로 고향이 물에 잠겨 이곳으로 이사한 집 몇 채, 그리고 뒤로 펼쳐진 풍성한 나무숲. 숲을 지나면 커다란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주택이 늘어선 하초마을이 나온다.

◆하초마을의 자랑 '숲'
이제 스무 가구 정도만 남았다. 한 집에 한두 명이 살고 있으니 쉰 명이 채 안 된다. 예전에는 마흔 가구가 넘게 마을에 살았다는데, 사람들이 떠난 뒤 빈집을 헐어내 주택도 몇 채 남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만은 풍성하다. 전국 어디에 내놔도 자랑할 만한 아름답고 풍성한 숲이 있으니 말이다.
2005년 산림청과 생명의숲가꾸기국민운동, 유한킴벌리 등이 함께 지정하는 '아름다운 마을 숲'에 선정된 것은 물론, 천연기념물로 지정하려 할 만큼 가치도 인정받고 있는 숲이다.

마을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하초마을 숲은 지금보다 훨씬 더 컸다고 한다. 지금도 상당히 큰 규모인데, 도대체 얼마나 컸다는 것일까? 나라에 난리가 났을 때 적군이 숲에 가린 하초마을을 보지 못하고 지나쳤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지금도 도로에서 보면 수몰민들이 이주해 살고 있는 아래뜸만 보일 뿐, 하초마을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마을 숲이 위기에 처했던 것은 일제강점기였다. 일제가 숯을 만들겠다며 커다란 나무 여럿을 베어낸 것이다. 게다가 뽕나무 밭을 만들겠다며 숲 일부를 개간까지 하면서 하초마을 숲의 상당부분이 잘려나갔다.
그 뒤 해방과 전쟁을 겪으면서 주민들은 다시 나무를 심었다. 마을 입구에서 나쁜 기운을 막아주는 수구막이 구실을 하는 숲이었기에 주민들의 간절함이 더해졌을 것이다.

▲ 아름다운 마을숲으로 선정된 하초마을 숲
◆상초 먹는 거북이(?)
하초마을 숲에는 돌탑과 선돌, 거북돌이 있다.
먼저, 돌탑은 모두 네 개가 있다. 현재 마을 진입로로 사용하는 포장길 양옆에 쌓은 돌탑은 최근에 지은 것이라고 한다. 이 역시 마을로 들어오는 길목을 지키는 수구막이 구실을 하는 돌탑이다.

나머지 두 개는 예전 마을 진입로에 있다. 금줄을 쳐 놓은 이 돌탑에서는 매년 정월 초사흗날 당산제를 지낸다고 한다.

그런데 본래 마을에 있던 돌탑은 허물었다고 한다. 새마을운동 때였다. 부족한 자재를 보충하려고 탑을 허물었던 것이다. 그 뒤로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벌어져 다시 쌓은 게 지금 당산제를 지내는 돌탑이다.
당산제를 지내는 두 돌탑 사이에 선돌이 있고, 그 가운데 엎드린 바위가 있다. 거북돌이다.

일부러 깎아 만든 게 아니라 거북이 형상을 하고 있는 바위인데, 이 바위에 얽힌 이야기가 재미있다.
거북바위의 머리에 해당하는 부분은 상초마을을 향하고 있다. 그리고 꼬리부분은 하초마을을 향한다. 상초마을의 재물을 먹고 하초마을을 향해 알을 낳는다는 의미로, 하초마을이 부유해지길 바라는 바람이 담긴 것이라고 전한다.

기록에서는 거북이 머리 방향을 놓고 상초마을 주민들과 마찰이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 주민 얘기를 들어보면 사이가 틀어진 적이 없다고 한다. 이웃 사이니 말이다.

▲ 마을숲에 있는 거북돌
◆얼마 전 사라진 고목제
몇 년 전까지 고목제라는 것도 지냈다고 한다. 정월 초이렛날 마을 가운데 있는 느티나무에 지냈는데, 팥죽을 끓여 제물을 차린 뒤 소지를 올렸다고 한다.

기록에는 나무에 올라가 놀다 떨어져 죽은 사람의 넋을 달래고, 나무하러 산에 갔다 실종된 세 형제를 기린다고 하지만, 마을에서 만난 노인들은 그런 일은 들어보지 못했다고 했다.

고목제 말고도 하초마을에서는 산신제, 기우제, 농신제, 뱅이 등의 풍속이 있었지만, 지금은 대부분 사라졌다.

◆나무 아래에서 만난 주민들
도로에서 보이는 마을 숲 앞 아래뜸. 이곳은 수몰민들이 이주해 정착한 곳이다. 숲에서 사진을 촬영하다가 임일승(75)씨를 만났다.

"내가 고향이 갈용리인데, 마을이 물에 잠겼어요. 그래서 이주할 곳을 찾다가 숲이 멋있는 하초마을로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당시 이곳으로 이주한 수몰민은 일곱 가구였단다. 당시 논이었던 곳에 터를 닦고 집을 지어 새로운 촌락을 구성했다. 그리고 하초 사람들 인심이 워낙 좋아, 텃세 같은 것은 구경도 못했다고 한다.

임일승씨와 이야기를 나누다 하초마을 느티나무 아래로 갔다. 마침 그곳엔 김상수(81)씨와 이기택(79)씨, 이이순(87)씨가 나와 뜨거운 햇볕을 피하고 있었다.
"늙은이들이 갈 곳이 없어요. 그래서 이렇게 자리 깔고 앉아 있는 거예요."

모정이 있을 법도 한데, 그러고 보니 마을 숲에도 모정이 없었다. 마침 들일을 하다가 집에 들르려던 정옥룡(53) 이장이 나무 아래에 앉았다.

"모정 대신에 나무 주위로 평상을 두를 예정이에요. 조만간 공사가 들어갈 겁니다."
"허, 그러면 됐구먼. 기왕 해줄 거 좀 빨리해주지."

▲ 300년된 하초마을 느티나무

▲ 왼쪽부터 이이순, 이기택, 정옥룡 이장, 임일승, 김상수씨.

▲ 마을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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