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이규홍 <새진안 포럼>

이삼 년 전 여름, 어떤 인연으로 대전 목원대에서 전국 초등국어교사 연수 때 두 시간 남짓 강좌를 했습니다. 나는 그때 교사들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수십만 가지 직업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자연과 사람을 괴롭히지 않는 직업은 다 소중한 직업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없어서는 안 될 직업을 가진 사람이 있는데 누굴까요?"

그런데 삼백 명 남짓 되는 많은 교사들이 모였지만 아무도 제대로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대답은 안 해도 다 알고 있었겠지요.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첫 번째는 농사짓는 사람이요, 두 번째는 남의 집을 지어주는 사람이요, 세 번째는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옷과 신발과 온갖 물건을 만들어 주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먹지 않고 살아갈 수 없으며, 잠을 자지 않고 살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옷이나 신발이 있어야 일을 하면서 자기 몸을 보호하고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제자들한테 자라서 무엇이 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까? 생명을 살리는 농사꾼이 되라고, 집을 지어주는 목수가 되라고, 옷과 신발을 만드는 노동자가 되라고 가르친 적이 있습니까? 이렇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직업은 서로 하지 않으려고 하니 세상이 날이 갈수록 어지럽습니다."

-녹색평론 10월호에 실린 서정홍 시인의 글에서.

이야기 말미에 선생은 땀 흘려 일하지 않고 쉽게 재산을 모은 사람들이 일하는 사람을 업신여기고, 한평생 일하는 사람들 덕에 살면서 온갖 쓰레기 문화와 혼란을 만들어 내는 머리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사라져야 한다고.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누구한테나 있다면 세상은 늘 평화로워 질 거라고.

요즘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푸대접 받으며 살아가는지는 잘 아실 겁니다. 삶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는 절망 속에서 이 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지금도 천일이 넘게 싸우고 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는 지금 우리 사회가 끌어안고 해결해야 할 가장 첨예한 인간 생존의 문제이자 사람의 노동과 땀의 가치가 돈으로만 환산되는 물신의 세상에서 사람다운 삶이 무엇인가를 묻는 근원적인 질문이기도 합니다.

혁명을 하자는 것도, 세상을 변혁시키자는 것도 아닙니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썰렁한 투쟁의 현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오늘도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목숨 걸고 외치고 있는 구호는 하나, 그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생존 조건을 지켜달라는 겁니다. 주5일, 하루 8시간 근무, 그리고 해직 걱정하지 않고 맘 편하게 일 할 수 있도록 고용을 보장해 달라는, 아주 기본적인 요구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현실은 이들의 이런 순진하고 하찮은 요구조차 가차 없이 짓밟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옳고 그름과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사람이 아니라 돈에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더 답답한 것은 이런 망할 놈의 세상이 쉽사리 바뀌지 않을 거라는 예감 때문입니다. 잘못된 사회를 바로잡기 위해 많은 사람이 상황을 바로 인식하고 자정노력과 실천에 힘을 쏟아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못합니다.

이 땅의 힘 있는 언론이나 권력, 지식인, 숱한 시민단체들 중 전체로 보면 정말 극소수의 몇몇을 제외하면 이런 사소한 일에는 마음을 쓰지 않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같은 처지인 노동자나 농민조차도 남의 일인 양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상위 5%에 들지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임금노동으로 삶을 유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까먹고 있는 건 아닐까요?

세상이 이대로 가다가는 내 아이가 자라서 천대받는 노동자로, 농민으로 살수도 있음을 인정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요? 미친 소를 용납할 수 없다며 촛불을 들었던 그 많은 손은 모두 누구의 손이었나요? 나는 솔직히 광우병소보다 비정규직 문제가 더 시급한 해결과제 같습니다.

우리는 쇼핑하면서 누군가의 땀과 노동의 결과물을 돈과 교환하는 그저 하나의 상품으로 얕잡아 보곤 합니다. 사람은 사라지고 상품만 남습니다. 당연히 그 뒤에 숨겨진 착취된 노동의 고단함과 누군가의 비명도 기억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자신도 노동자이면서, 비정규직이면서, 농민이면서 자식들에겐 되지도 않는 거짓말을 가르칩니다.

'우리는 저 찌질이들과 달라. 조금 더 노력하면 훨씬 나은 계층으로 진입할 수 있어. 그러니까 공부해서 좋은 대학 나오면 다 해결돼. 여길 벗어날 수 있다고.'

경쟁에서 자기는 살아남을 수 있다는 믿음. 참 기가 막힌 착각이요, 허영심입니다. 우린 아이들에게 분명히 말해야 합니다. 너희들에게 세상이 요구하는 경쟁력이란 개뿔도 없다. 그러니 경쟁하려고 하지마라. 되지도 않을뿐더러 그건 바른 길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노동의 소중함에 대해 이야기했으면 합니다. 싸우지 않고 사람답게 살아가는 방법을 함께 고민하는 어른이 되었으면 합니다. 진안 아이들이 경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고향을 떠나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각자에게 필요한 다양한 학습을 하고 자기가 찾은 길에서 창조적이며 존중받는 노동을 하며 소박한 행복을 누릴 줄 아는 지혜로운 어른으로 자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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