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세화 강연 … '아름다운 나라'

본사가 후원하고 새진안포럼과 전교조 진안지회가 함께 주최한 '희망만들기' 첫 강연이 지난 14일에 진안 청소년 수련관에서 열렸다. 첫 강연에는 언론인이자 평론가인 홍세화씨가 '아름다운 나라'라는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이에 본지는 강연내용을 정리해 지면에 싣는다. 다음 강연은 21일 진안 청소년 수련관에서 하종강씨의 '노동과 꿈'이란 주제의 강연이 있을 예정이다.  /편집자

▲ 강연하고 있는 홍세화씨
프랑스라는 수평적 공간에서 오래 살아서 인지 높은 곳과 중앙이 거북스럽다. 그러다보니 서열이 강조되는 이 나라가 불편한 게 사실이다. 새 정부 들어와 상위 5%만을 위하는 정책이 펼쳐지고 있다. 우리의 교육 현실이 희망을 찾기엔 역부족이지만 우리들 안에서 희망을 찾아보자. 희망은 지역에서 나와야 한다.

이곳에도 학교 선생님들이 있지만, 한번 묻고 싶다. 현재 살고 있는 곳이 어딘지. 혹 도시에서 지역으로 출퇴근 하지는 않는지. 대부분 도시에 거주하고 있다. 지역에 밀착하려는 의지가 부족하다.

얼마전 치러진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당선된 교육감이 내세운 슬로건이 "전교조에 휘둘리면 교육이 무너진다."이다. 어처구니 없다. 왜 좋은 뜻을 갖고 있는 교사들이 교육 현실에서 밀리고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20:80'의 사회이다. 20%의 부자들이 80%의 부를 갖고 있는 구조이다. 이것은 부의 되물림과 농촌의 공동화를 촉진시킨다. 30:70의 사회로 가야한다. 스웨덴 같은 북유럽 국가들은 현재 35:65의 사회이다. 어차피 완전 평등은 불가능하다.

교육, 의료, 주거는 기본적으로 국가가 보장해 주고 나머지만 경쟁을 시켜야 인간의 존엄성이 지켜질 수 있다.

북유럽에서는 의사와 버스기사의 월급이 비슷하다. 의사가 권위적이지 않다. 자기 혼자 잘나서 의사가 된게 아니라 국가가 뒷받침해 줬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반대로 우리나라 의사는 대부분 고답적이고 불친절하다. 특권의식과 보상의식으로 꽉 차있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의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20:80의 사회는 민주주의와 모순된다. 소수의 20%가 80%를 지배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80%에게 허용된 투표권이 있는데 선거 결과는 왜 80%의 처지에 배반되는가? 20:80의 사회가 객관적 처지라면 민주주의는 주관적 의지이다. 선거 결과는 늘 80%들이 자기 처지를 스스로 배반하는 쪽으로 나타난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가. 80%가 20%와 같은 선택을 하게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자기 처지가 요구하는 생각대로 사고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있다. 그렇게 교육 받아왔기 때문이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생각을 갖고 태어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현재의 나는 많은 생각을 갖고 있다. 그 생각에 의해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사람은 일단 형성된 생각을 고집한다.

"내 생각은 어떻게 내 것이 되었나?" 너무나 당연한 생각인데 왜 그러한지 성찰이 없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나는 사람이다. 사회에 대해 알아야 사회에서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물음은 정밀과학이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 교육은 인문학을 정밀과학인양 교육시키고 있다. 인문학은 1등에서 꼴등까지 줄 세울 수 없다. 정답이 없는 학문에 정답을 요구하고 있다.

'사형제도에 대해 당신의 견해를 밝혀라'라는 문제에 정답은 없다. 다만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논리적 뒷받침의 유무로 점수를 매길 수 있다. 우리의 교육 현실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이렇게 바꾼다. '다음 중 사형제도를 폐지한 나라는?' 암기만 있을 뿐, 주체적 견해를 배제시킨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물음에서 바보로 만드는 게 우리의 공교육이다. 현재의 상류층은 암기 잘해 좋은 점수를 얻은 사람이다. 대학의 서열에 맞추다 보니 교육 자체가 왜곡되고 있다.
"내 생각은 어떻게 내 것이 되었나?" 한번 물어보자.

첫째, 폭넓은 독서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독서는 지금껏 살아온 인류와의 만남이고 현 세계와 만나는 창이다.
둘째, 열린 토론을 통해서이다.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과의 대화, 토론이 있어야 한다.
셋째, 직접적인 경험이다.
넷째, 자각적 깨달음 즉, 도를 닦는 것이다. 이것은 독서와 토론, 경험들이 아우러진 뒤에 이루어져야 건강한 것이 될 수 있다.

제도교육(국가권력)과 미디어(자본)가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다. 20%가 만들어 놓은 의식을 80%가 갖고 있기 때문에 80%가 자신의 처지에 배반되는 행위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 공교육의 1차적 소명은 국민을 민주공화국의 국민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학교는 민주적 공간이어야 한다. 민주적 시민의식을 길러야 하는데, 학교장부터가 권위적이고 주인행세를 한다.

이래서야 학교가 민주적일 수 있겠나. 애당초 우리의 학교들은 일제시대 때 한국인을 일본인으로 만들기 위한 의식화의 장이었다. 자기배반의 구조를 태생적으로 갖고 있다.

부단한 독서와 토론이 우리의 현실에서 그나마 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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