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을 이야기 63 진안읍 물곡리 … (2)상도치(웃되재)

▲ 상도치 마을 입구를 지키는 느티나무와 돌탑.
지난주 원물곡 마을에 이어 이번엔 상도치 마을을 찾아 떠났다. 상도치로 가는 길은 두 갈래. 하나는 원물곡에서, 다른 하나는 진안읍 운산리 검북마을 앞을 지나서다. 어느 길로 갈까 고민하다 원물곡으로 방향을 잡았다. 지난주 원물곡 주민들이 분주하게 벼를 베던 모습이 떠올라서다. 벼는 다 베었는지 궁금했다.

뜰을 덮고 있던 벼는 모두 베어진 채 군데군데 볏짚을 묶어놓은 게 보인다. 쌀 직불금 뉴스로 한참 뒤숭숭했을 농민들은 한숨을 깊이 내쉬면서도 올해 벼농사를 마무리 지었다.

원물곡을 지나 노면이 고르지 않은 도로를 얼마간 올라가니 오른쪽으로 길게 늘어선 주택 밀집지역이 보인다. 상도치 마을이다. 마을을 알리는 이정표는 보이지 않았고, 먼저 나타난 마을 진입로는 '진입금지' 교통표지판이 서 있다.

자동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나갈만한 폭이다. 여기를 지나 조금만 가면 빨간색 버스정류장이 상도치 마을이 이곳이라는 것을 얘기해준다. 하지만, 그 옆길 역시 자동차가 진입할 수 없다. 좁기도 하지만, 턱이 있어서다. 보행자 전용 길인 모양이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진짜 마을 진입로가 나온다. 바로 마을회관 앞마당과 이어지는데, 자동차가 교행할 만한 폭이다.

마을회관부터 마을 곳곳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은 축사다. 젖소와 한우가 꽤 많았는데, 우리 안에서 팔딱팔딱 뛰는 송아지 모습이 꽤 건강해 보였다. 또 축사가 여럿 있어도 관리가 잘 돼 있어서 냄새가 거의 나지 않았다.

이번엔 반대방향으로 갔다. 마을 초입이라고 할 수 있는 곳에 큰 느티나무 두 그루와 정자, 그리고 돌탑이 모여 있는 곳이 보였다. 위치로 보면 분명 수구막이 구실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예전엔 마을에서 탑제도 올렸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연로한 주민이 대부분이라 지내지 않는단다. 가끔 몇몇 주민이 개인적으로 돌탑을 찾아 복을 비는 정도란다.
 

▲ 상도치 마을회관
◆무풍대사가 도를 닦던 곳
이 마을은 조선 중엽 무풍대사가 도를 닦기 위해 머물렀던 곳이라고 한다. 당시 무풍대사를 모시던 전주 이씨가 있었는데, 무풍대사가 떠날 때 이곳에 남아 정착했다고 한다.

그 뒤에 김씨, 정씨 등이 함께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됐는데, 무풍대사가 도를 닦던 곳이란 의미에서 '도재'라 불렀단다. 그 뒤 구한말에 마을 지형에 따라 상도치(上導峙)라 고쳐 불렀다.

또 이런 얘기도 있다. 상도치 마을은 뒤로 경사가 완만한 산을 끼고 앞으로는 큰 산이 막고 있는데, 이 앞산이 배 돛대 모양과 같아 '되재'라 불렀다는 설이 있다.
 

▲ 마을 약도
◆인심 넉넉한 스물두 집
마을을 둘러보다 한양희(70)씨를 만났다. 느티나무 옆 작은 고추밭에서 고추를 따고 있었다. 알이 작은 게 꽤 매울 것 같은 고추다.

"저 앞에 도로가 지난해에 났거든. 그리고 올해부턴 시내버스도 들어와서 진안읍에 가기 좋아졌어."
본래 상도치를 지나는 도로는 자동차 한 대가 지날만한 마을 안길밖에 없었단다. 그래서 버스가 들어올 엄두를 못 냈는데, 그 덕에 사람들은 하도치를 지나 운산리까지 걸어나가야 했단다.

"우리 마을에서 진안읍까지는 걸어서 한 시간 거리야. 예전에는 마을 앞산 고갯길을 넘어다녔지. 지금은 새로 도로가 나고 버스가 다녀 얼마나 편한지 몰라."

시내버스는 하루에 원물곡 방향으로 세 번, 검북마을 방향으로 세 번 다닌다. 그런데 이 마을에서는 어느 방향 버스를 타던 읍내에 도착하는 시간이 비슷하기 때문에 방향을 따지지 않는단다. 방향을 헷갈릴 염려가 없다.

"우리 마을엔 환갑이 안 된 사람들이 몇 있는데, 소를 키우는 사람들이 그 사람들이라고 보면 돼. 그래도 작은 마을치고는 축사도 많고 한 게 젊은 사람들이 있어 그런 거지."

이 마을은 예전부터 짐승이 잘 자라는 곳이었다고 한다. 주변 지형을 살펴보면 산골짜기 같으면서도 평지가 넓어 논이 많은데, 그래서 소를 먹일 사료 구하기가 수월했던 모양이다. 앞서 보았던 건강한 송아지 모습이 떠올라 살짝 미소가 지어졌다.
 

▲ 상도치 마을 앞 버스정류장
◆고향 잃고 고향을 얻다
다시 마을을 둘러보다가 막 밭일을 마치고 집 마당으로 들어간 정한영(77)씨를 만났다. 백발이 성성했지만 피부가 좋아 한참 더 젊게 보이는 노인이었다.
"나는 여기가 고향이 아니에요. 내 고향은 이포에요."

수몰민이다. 용담호가 만들어지면서 고향을 잃고 상도치로 이사했다. 4년 전이다. 보상받은 돈은 지금 살고 있는 집 한 채와 농지 네 마지기가 전부다.
"이쪽으로 이사 온 수몰민이 세 집 있어요."

고향 얘기를 하면서 정씨의 얼굴에 그늘이 생겼다. 눈앞에 고향을 두고도 갈 수 없는, 참담한 심정이었을 게다.

"이 마을은 인심이 참 좋아요. 텃세 같은 건 듣도 보도 못했어요. 지금은 조금 추워지면서 사람들이 집 안에 있지만, 조금 더 추워지면 마을회관에 모여 가족처럼 지낼 거예요."
정한영씨는 고향을 잃은 슬픔을 새 고향에서 위로받고 있었다. 따뜻한 정을 느끼면서 말이다.

▲ 마을엔 소를 키우는 축사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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