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구 자 인 <진안군청 마을만들기 담당>

길은 서로 다른 장소를 이어주는 통로를 뜻한다. 그 길 위에는 걸어온 역사가 새겨져 있고 문화가 간직되어 있다. 요즘 이 길이 주목을 받고 있고 걷기 프로그램도 유행하고 있다. 텔레비전 프로에도 자주 등장하여 세계적으로 유명한 길로 실크로드, 차마고도, 산타아고 순례길이 귀에 이미 익숙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근에 제주 올레와 지리산 둘레길이 유명해져 방송이나 잡지에 자주 소개되고 있다. 지난 11월 11일에는 전주에서 길 문화축제가 열리기도 하였다. 인터넷 카페에도 수백 개 이상이 등록되어 있고 갈수록 회원수가 급증하고 있다. 아직은 특정 매니아층이 중심이겠지만 거의 열풍이라 할 정도로 걷기가 유행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최근 들어 진안에도 도보여행 하는 사람이 자주 눈에 띈다. 2006년 5월에 도법 스님의 탁발순례단이 일주일간 진안 11개 읍면을 걸어서 다녀간 것이 엊그제 같은데, 그 때만 해도 이렇게 빠르게 확산될 줄은 상상도 못하였다. 걷는 목적은 아주 다양해 보인다.

아름다운 길을 따라 걷는 사람도 있지만 탁발순례단처럼 생명평화를 화두로 내세우는 경우도 있다. 방식도 다양하여 이웃 임실과 전주를 거쳐 서울로 향해 오체투지(五體投地) 방식으로 하는 종교인 그룹도 있다. 물론 그냥 길이 좋아서 걷는 경우가 대다수일 것이다.

진안을 찾는 도보여행객이 주로 택하는 코스는 백운면 데미샘에서 시작하여 섬진강을 따라 남쪽으로 걷거나 마이산을 거쳐 용담호로 빠지는 경우가 많아 보인다. 아마도 섬진강이란 청정 이미지와 발원지란 묘한 상징성이 데미샘을 기점으로 정하게 만드는 모양이다. 해남 땅끝마을에서 출발하는 국토 종주객들이 선택하는 필수코스 속에 데미샘이 있다는 소문이다. 물론 자동차 드라이브로 들러는 경우는 훨씬 많다.

도보여행객 중에는 백운면 원촌마을의 간판을 일부러 보러 오는 경우도 많다. 또 마령면 계남정미소(공동체박물관)도 단골 코스로 자리잡고 있다. 입소문이 계속 번지고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더욱 확장되는 양상이다. 박물관 방문록에는 이런 분들의 마음이 잘 남아 있다.

진안알리기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시설과 장소로 이제 데미샘과 백운 원촌마을, 계남정미소가 부각된 셈이다. 인터넷 검색창에서 키워드로 검색하면 이런 사실을 잘 확인할 수 있다.

또 최근 들어 진안에서 자주 눈에 띄는 그룹 중의 하나가 용담호 주변을 달리는 오토바이족이다. 주말에 마을을 다니다 보면 꼭 한 팀 이상은 접하게 된다. 굉음을 내며 십여 대가 일렬로 다니는 모습이 불편스럽게 다가오는 면도 분명 있다.

그래도 용담호가 가진 매력 때문이라 생각하면 이런 그룹이 고맙기도 하다. 그러면서 그들은 어디서 밥 먹고 쉬고 잠을 잘까 궁금하게 생각하게 된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분들인 것 같다. 두발로 걷는 도보와 오토바이가 가진 속도감의 차이일 것이다.

지난 7월 말에는 마을조사단에서 '구름땅마실'이란 제목으로 백운면 답사지도를 제작하였다. 만 2년간의 조사 성과를 담았고 문화관광, 자연환경, 인물 ,풍속 등을 이야기로 엮어 혼자서 찾아갈 수 있는 정보제공지 형식을 취하고 있다.

'마실 가듯이' 답사지도를 가지고 마을의 구석구석을 걸어서 다녀보시라는 배려 차원이다. '마실 가다'라는 말의 뜻이나 뉘앙스는 사람 따라 다르게 느끼지만 무겁지 않고 정겨운 표현으로 다가오는 것은 분명하다.

도보여행이나 걷기 프로그램에 이처럼 굳이 지도까지 필요하겠냐는 의문도 들 것이다. 하지만 사람 다니는 모든 길에는 역사가 있고 문화가 있다. 의미를 알면 상상력은 확장되고 감동도 배가된다.

최근 들어 문화관광과 마케팅 분야에서 이야기 소재 발굴과 스토리텔링 기법이 중시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마을조사단이 열심히 마을을 돌며 이야기를 찾아내고 지도 위에 표현한 것이다.

진안은 국토개발과정에서 소외되었던 만큼 자연환경과 전통문화가 잘 보전되어 있다. 당산나무, 마을숲, 우물가, 정미소, 물레방아, 매사냥 등 있는 그대로가 보물이고 박물관(에코뮤지엄)이다. 현재의 체험마을은 좋은 숙박지로 제공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보물들을 잘 엮어 코스로 개발하고 지도로 제공하며 길 안내자를 양성하는 것이다.

진안은 마을조사단과 마을숲해설사, 마을간사, 마이평생학습지도자 등 많은 인적 자원을 양성하고 있다. 문화원에서는 이미 향토문화백과사전을 발간하였고 수치지형도와 예전 항공사진을 구입하였으며 조만간 항공 촬영도 예정하고 있다.

이 점은 다른 지자체가 쉽게 흉내 내거나 따라오기 힘든 성과물이다. 어느 농촌 지자체도 걷지 못한 길을 우리는 걸어가고 있다. 많은 것이 처음 하는 것이라 시행착오는 분명히 많다. 내년 8월에 다시 열릴 제2회 마을축제 또한 전통문화와 환경을 중시하는 학습형 축제로서 계속 진화해 갈 것이다.

더 많은 마을과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서로 연계할 필요가 있다. 이 점에서도 걷기는 농촌관광의 미개척 영역(블루 오션)으로 마을과 마을을 잇고 오래 머물게 하는 프로그램으로 새롭게 주목해야 한다. 일년 사시사철 언제라도 걷고 싶은 진안을 만들어 가자.

저작권자 © 진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