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천면 대불리 박동규 씨

▲ 박동규씨와 세남매
박동규(51) 씨를 만나기 위해 주천면 대불리를 찾았다. "대불리 산촌생태마을에 오셔서 2층 집을 찾으세요." 그의 설명에 따라 마을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2층 집을 찾았다. 입구에서 낯선 손님을 반갑게(?) 맞아주는 진돗개를 지나쳐 그렇게 박동규 씨, 그의 집 울타리 안으로 들어갔다.
 
◆시골냄새 나는 곳
2008년 2월 25일은 박동규 씨 가족이 정식 진안군 군민이 된 날이다.
"처음에는 변산으로 갈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변산에서 정착하기에는 여의치 않더라고요. 그래서 무·진·장 지역을 돌아봤는데 무주는 관광지가 됐고, 장수는 왠지 시골냄새가 안 나더라고요. 그렇게 지역을 돌아보다가 진안에서 정착하게 됐습니다."

진안으로 내려오기 전, 서울에서 살았던 박동규 씨. 그는 처음 아내에게 10년만 서울에서 살다가 시골로 내려가자는 이야기를 했단다.

"서울생활 처음부터 아내한테 이야기했기 때문에 큰 불만 없이 따라와 줬어요. 잘 적응해 줘서 고맙지요."
진안사람이 된 지, 불과 9개월 남짓된 박동규 씨 가족, 시골냄새 나는 곳에서 편하게 살기를 꿈 꿨던 박 씨의 바람처럼 이들 가족은 현재 가슴 가득히 농촌의 향기를 품은 듯 보였다.
 
◆귀농·귀촌 1번지
"막내아들이 네 살인데 병설유치원에 다니지 못하고 하루 종일 집에만 있어요. 아이들 교육문제는 꼭 해결해야 할 일인 것 같아요."

이날 방문한 박동규 씨 집에는 네 살의 막내가 학교에서 돌아 올 누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박 씨는 나이제한으로 인해 병설유치원에서 받아주지 않아 하루 종일 집에서만 시간을 보내는 막내아들이 내심 안쓰럽다.

"도시의 경우는 기저귀 찬 어린아이들도 어린이 집에서 다 받아주잖아요. 시골에서는 어린이 집에 다닐 수 없는 경우도 있으니 공교육에서 그런 아이들을 끌어안아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천면은 나이 때문에 유치원에 들어갈 수 없는 아이들은 대략 46명 정도 되더라고요."

그렇게 박동규 씨는 교육청 담당자, 초등학교 교장 등 여기저기 알아보고 만나봤지만 해결할 수 없었다고 한다.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진안은 젊은 사람들보다 나이가 있는 사람들이 전원생활을 하려고 들어올 뿐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행정적으로 귀농귀촌 1번지를 만들어도 아이들의 교육 문제가 해결되지 못 한다면 귀농귀촌 1번지라는 말이 무색할 것이라고 박동규 씨는 이야기 한다. 그리고 그는 귀농귀촌이 잘 되려면 행정보다 민간이 움직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조금씩 배려하면서
박동규 씨는 현재 주천면 대불리 산촌생태마을의 산촌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산촌매니저 일을 하면서 마을 사람들과 쉽게 가까워질 수 있었다는 그는 사람들과의 관계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배려'를 꼽았다.

"마을 간사들을 만날 때면 그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요. 우리가 더 넓은 마음으로 아우르며 살아가자고 말입니다."

먼저 찾아가고, 인사하며 지역 사람들에게 친밀하게 대하는 박동규 씨. 그의 그런 생활은 동네 어르신들이 직접 생산한 농산물을 나눠주는 것으로 돌아왔다. 이날도 동네 할머니가 직접 수확한 대추를 한 봉지 들고 그의 집을 찾았다.

또한 박동규 씨는 마을에 10년 만에 들려오는 아이들 목소리가 마을 어르신들에게 큰 기쁨을 준다고 이야기 한다.

"아이들이 없으니까 저희 집 얘들이 지나가면 참 좋아하세요. 제가 아이들 덕을 봤죠. 아이들 덕에 마을 사람들한테 점수 땄으니까요. 하하"

한편, 박동규 씨는 산촌매니저 일을 하면서 처음에는 못한다고 한발 뒤로 물러서던 마을 어르신들이 지금은 먼저 찾아와 사업 제안을 하는 것을 보면서 희망을 찾는 것 같아 기쁘다고 이야기한다.

이처럼 큰 욕심 없이, 마을에 보탬이 되는 일이라면 마다하지 않고 배려하는 삶을 첫 째로 두고 살고 있는 박동규 씨. 그는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이웃에 나눠주며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지금의 삶이 무엇보다 행복하고, 즐겁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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