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을 이야기64 진안읍 물곡리 … (3)하도치(아래되재)

▲ 모정 상량식을 준비하는 주민과 인부들. 기왕에 올리는 상량식이니 만큼 정성을 다해 제를 올렸다. 마을의 안녕을 위해서 말이다.
산과 들의 녹색 빛이 많이 줄었다. 노랗고 빨간색이 점차 세를 불려간다. 그 위 파란 하늘과 대비를 이루니 풍경이 참 화려하다. 제법 날도 쌀쌀하다. 가을이 오는가 싶더니 어느새 겨울이 성큼 다가온 10월 30일이었다.

지난주 웃되재(상도치)를 둘러봤으니, 이번엔 아래되재를 둘러볼 차례다. 진안읍과 안천을 잇는 도로와 인접해 있어 찾아가기도 쉽다.

다리를 건너 바로 마을회관이 나온다. 회관 앞에는 원목으로 모정을 짓는 인부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마을 주민들이 곁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회관 안에서 사람들 말소리가 나는 게 마을에 무슨 일이 있는 모양이다.
 

▲ 예전 마을 옆을 흐르는 하천에는 징검다리가 있었다. 지금은 도로를 포장하면서 만든 튼튼한 신식 다리가 있어 편리해졌다. 지금도 교량 옆에는 징검다리가 남아있다. 혹시 이용할 사람이 있을까 해서 마을에서 만들었는데, 이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단다.
◆돛대 닮은 하도치
아래되재는 물곡리에서 가장자리에 있지만, 읍내와 거리는 가장 가깝다. 이런 마을을 오지라고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예전에는 마을에서 진안읍과 안천면을 잇는 도로까지 농로만 있었으니 교통은 상당히 안 좋았다고 한다. 3년 전쯤 왕복 2차선 아스팔트 포장이 이뤄지면서 버스까지 들어와 지금은 교통이 매우 편리하다.

아래되재가 형성된 시기는 웃되재가 만들어진 시기와 비슷하다고 한다. 성주인 배술정이 대대로 동향면에 살다 이곳으로 이주해 정착하면서 마을이 이뤄졌다고 하는데, 예전에는 마을 주민 가운데 90%가 배씨였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이 떠나면서 배씨는 단 두 집만 남아 있다. 각성바지다.
전체 가구수는 열세 집이다. 주민 수는 20여 명이 고작이다. 가장 젊은 사람이 48세이고, 최고령자는 85세라고 한다.

이 마을이 하도치로 불린 것은 마을 지형과 관계 있다는 설명이다. 마을 뒷산 형태가 배 돛대 같아서 도치라고 불렀단다. 웃되재 앞산 지세와 아래되재 뒷산 지세가 많이 닮은 모양이다.

지형과 관계있는 재밌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마을 뒤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두원골(두원님골)이란 곳이 나오는데, 이곳이 명당자리라고 한다. 이곳에 묘를 쓰면 원님 둘이 나올 거라는 얘기에서 비롯된 지명이란다.
또 주민들은 마을 지세가 쌀을 씻어 골라내는 '조리'와 닮았다고도 얘기한다. 그래서 주민들이 자꾸 떠났다고 하는데, 쌀을 일어 덜어내는 조리처럼 돈을 벌면 바로 나가야 하는 게 이 마을이라는 설명이다.
 
◆예전엔 당산제도 지냈는데
마을에 가면 당산나무처럼 마을에서 정성을 들이는 대상이 없다. 앞으로 당산나무 하나를 심어 길러볼 거라고는 하지만, 꽤 오랫동안 그런 대상이 없었다.

본래 이 마을에는 돌탑이 있었다. 1940년대까지는 이 돌탑에서 꽹과리를 치며 제를 올렸다고 하는데, 이런 모습을 기억하는 이는 60대 중반을 넘어선 노인뿐이다. 당시 마을에서 돌탑을 세운 것은 마을에서 마주보는 산이 화산(火山)이어서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섣달 그믐부터 걸립굿을 하고 금줄을 쳤으며, 정월 보름날 부정타지 않은 사람을 제주로 삼아 제를 올려 마을의 안녕을 기원했다.

기우제도 지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무제라고 불렀는데, 송곳날 하천가 상여바위라고 부르는 곳에서 돼지머리를 준비해 지냈다. 마을에선 상여바위가 마을에 비치면 좋지 않다고 해 숲을 가꿔 바위가 보이지 않도록 했단다.
 

▲ 며칠 전 수확한 은행 겉껍질을 벗겨 알맹이를 골라 포대에 담고 있는 고찬서(66)씨. 고약한 은행향이 코를 찌른다.
◆수변구역 지원, 제대로 해야
마을에서 젖소를 기르고 있는 김재영(50) 이장을 만났다. 김 이장은 모정을 언제부터 지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수변구역에 지원하는 물이용부담금이 엉뚱한데 쓰이는 것 아니냐."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수변구역에 돈을 지원하는 건, 상류지역 마을에서 물을 깨끗이 쓰라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물도 깨끗이 하고 주민 소득도 높이는 곳에 지원금을 사용해야죠."

김재영 이장이 얘기하는 수질 보호와 주민 소득 향상은 그리 대단한 게 아니었다. 재래식 화장실을 수세식으로 교체하고, 마을에서 공동으로 이용하는 정화조를 설치하는 것, 친환경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친환경 자재를 구입하는 것 등이다.

이러한 것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수변구역 주민과 이장들이 줄기차게 얘기했던 것인데도, 행정에서 자기네들 행정처리 편의를 위해 주민이 생각하는 우선순위와 맞지 않는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라고 김 이장을 비롯한 주민들은 얘기했다.

"주민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를 책상머리에 앉아서는 알 수가 없죠. 무엇이 필요한가는 주민이 가장 잘 아는 것이잖아요. 어차피 기초자치단체 예산이 아닌 이상, 마을에서 자율적으로 토론과 합의를 통해 사용처를 결정하고 집행하도록 해줘야 합니다."

김 이장과 얘기를 나누던 배진옥(50)씨가 옆에서 거들었다. 왜 정당한 요구를 무시하고 자기들 마음대로, 편리한 대로만 하는지 답답하다고 말했다.

마침 아래되재를 찾아간 날은 짓고 있는 모정에 상량문을 올리는 날이었다. 오전 11시에 열기로 한 상량식은 조금 지체되어 11시30분께 진행됐다.

모정 짓는 것을 탐탁잖게 여겼지만, 기왕에 짓는 것이고 기왕에 올리는 상량식이라면 정성을 다해야 한다. 마을의 안녕을 위해서 말이다.

정성껏 돼지머리와 떡, 과일 등을 준비해 상을 차리고 절을 올렸다. 절을 올리고 가만히 무언가를 기원하는 모습이 꽤 엄숙했다.
갈수록 힘겨운 농촌현실이지만, 그래도 나고 자란 고향이기에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 마을회관 옥상에서 바라본 아래되재 마을 모습.
▲ 마을에서 사용하는 공동우물. 맑은 물이 차 있고, 바가지가 놓여있다.
▲ 마을 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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