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발로 선 진안 11 부귀면 두남리 매남이제

올해 들어선 두발로 선 진안 산행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네요. 지난 5월, 여름 길목에 들어선 산행을 한 뒤로 4개월이라는 공백기를 지나고 보니 계절은 어느새 가을로 변해있네요.

한 달에 한 번, 우리 지역의 옛 길을 찾아 조금씩, 조금씩 변화하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독자들에게 전해드려야 하는데 게으른 탓에 올해는 싱그런 초록빛깔의 여름 산의 모습은 그냥 스쳐지나가며 무의식중에 느꼈던 청명하고 상큼한 그 모습으로 간직해야 하겠네요. 지금 우리 앞에는 코앞까지 다가왔다 서서히 멀어지는 가을 산이 주는 낭만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스산하고 외로움이 느껴지는 가을이 주는 어감보다, 시집가는 새 색시마냥 붉은 연지 찍고 노랑, 초록의 색동옷 갈아입고 불어오는 바람결에 '나 한번 바라봐 달라'고 손짓하는 그 가을이 더 좋습니다. 그 좋은 가을, 우리는 그 손짓에 못 이기는 척 가을 산의 아름다움 속으로 걸어갑니다.

2008년 10월 25일, 두발로 선 진안을 하면서 세 번째로 밟아보는 가을 산. 이날 가을 산행에는 부귀면 이강욱씨의 안내로 정협균(매일제과 대표), 김순옥(본사 대표), 조애숙(부귀면), 정병귀(백운 마을조사단), 주창근(용담면) 씨가 함께 했습니다.

▲ 산행 중간중간, 이강욱씨로부터 나무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산행을 시작할까요?
달력은 10월을 가리키고, 계절도 가을로 접어들었지만 웬일인지 날씨는 여름이었다. 과연 가을이 맞나 싶었는데, 10월도 종반으로 접어들면서 제 날씨가 되어 가는 지 가을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제법 쌀쌀함이 느껴지는 요즘이다.

두발로 선 진안 산행을 하기로 한 지난 10월 25일, 하늘은 청명하고 햇살은 꽤 따사롭다. 그야말로 가을 날씨에 안성맞춤이라 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하는 두발로 선 진안 산행을 자연도 환영(?)하는 듯 하다.

그렇게 자연의 큰 환대를 받으며 시작한 산행, 우리 일행이 올라야 할 곳은 부귀면 두남리 산봉마을의 매남이재이다. 매남이재는 부귀면 두남리 산봉마을에서 시작해 2시간 여 남짓 고개를 넘다 보면 진안읍 운산리가 나오는 고갯길이다.

오전 10시를 조금 넘은 시각, 부귀 농협 앞에서 이번 산행에 함께 동참 한 일행들을 만났다. 짧게 나눈 인사를 뒤로 하고 이강욱씨의 차에 올라 산봉마을로 이동했다.

자동차가 마을로 들어서고 잠시 후 이강욱씨는 일행들을 차에서 내려놓았다. 그 곳에는 큰 키를 자랑하며 하늘로 솟아 있는 나무와 함께 돌탑이 있다. 그리고 그 앞으로 마을 주민들이 앉아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정자도 마련되어 있다.

"지금은 정자가 만들어져 있지만 정자가 있기 전, 이 자리는 옛날 어르신들이 매남이재를 오르기 위해 모였던 장소라고 합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모이면 다 같이 고개를 올랐다고 하네요."

꽤 긴 고개를 혼자 오르기에는 심심할 터, 옛 어른들은 그렇게 벗과 함께 말동무가 되어 고개를 지났었나 보다. 혼자보다 누군가와 함께 오르는 길이 훨씬 수월할 터.
 

▲ 화창한 날씨 속에 진행된 두발로 선 진안 산행에 함께 동참한 일행들이 매넘이재 정상에 올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아름답다! 가을 산
'두런두런' 일행들 사이로 이야기꽃이 피었다. 처음 만남의 어색함을 그렇게 털어버리고 조금씩 발걸음을 내 딛는다.

매넘이재 입구에 다다르기 전, 일행들 눈에 처음 보는 무언가가 들어온다. 밭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폐가가 된 작은 벽돌집. 그 위에 올라가 있는 비석과 사람 형상을 하고 있는 석상 두 개. 이강욱씨 설명으로는 옛날 무속인이 살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어찌됐든 처음 보는 그 건물에 신기해하고 있을 때, 저 멀리 산 밑에서는 한 할아버지가 나무에 달린 감 따는데 여념이 없는 모습도 보인다.

그렇게 우리들은 매넘이재 오르는 초입에 들어섰다. 고개 입구에는 '마이산 운해 촬영지'라는 안내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곳곳에는 '산양삼 재배지역'이라는 현수막도 볼 수 있었다.

매넘이재 오르는 길은 처음부터 시멘트 포장길이다. 현재 임도로 되어 있는 이 길은 중간, 중간 비포장 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포장이 되어 있다. 일행들 모두 흙을 밟으며 올라가야 할 산길이 딱딱한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어 아쉬움에 한마디씩 주고받는다. 그래도 숲에서 흘러나오는 상쾌한 향기에 위로삼아 걸음을 재촉해 본다.

"여러분은 이 식물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야관문이라고 합니다."
고개를 오르는 중간 중간, 이강욱씨는 일행들에게 야관문(비수리)부터 비목, 신나무, 불나무, 층층목, 접골목, 때죽나무 등 식물들에 대한 친절한 설명도 곁들어준다.

얼마나 올랐을까. 잠깐 올라왔던 그 길을 돌아보았다. '아! 아름답다' 저 멀리 보이는 붉게 물든 가을 산과 파란 하늘에 흰 구름. 감탄이 절로 나온다. 맑은 날씨 속에서 같은 눈높이로 바라본 가을 산은 그렇게 일행들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마이산을 바라보며
천천히, 쉬엄쉬엄 올랐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매넘이재 정상에 다다랐나 보다. 정상에는 부귀산 등산로 안내도와 함께 저 멀리 보이는 마이산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 일행들은 마이산을 병풍삼아 잠시 휴식을 취하며 꿀 맛 같은 김밥과 과일을 나눠 먹고 진안읍 운산리로 내려가기 위해 움직였다.

내려가는 길, 더 자세히 보이는 마이산과 단양리 마을의 모습, 그리고 그 주위로 넓게 퍼져 있는 색깔도 고운 가을 산. 누구라 할 것 없이 일행들은 가을 산의 모습을 작은 프레임 안에 잡아 두기 위해 카메라를 꺼내 든다. 그렇게 가을 산은 꼭 한번 쯤 올라가 봐야 할 곳으로 권해 본다.

"어! 다람쥐다"
내려가는 길, 일행들은 반가운 손님을 만났다. 잠시 마실 나온 다람쥐 한 마리. 조용히 가을 산에서 낭만을 즐겨보고자 했었을까? 다람쥐는 낯선 사람들 소리에 걸음도 빠르게 달아나 버렸다. 그래도 산 속에서 다람쥐를 만난 것은 산행을 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선물이었다.
 

▲ 매넘이재 정상에서 바라다 보면 붉게 물든 가을 산 너머로 마이산이 눈에 들어 온다.
◆가을 산, 다음을 기약하자
얼추 마을에 다다랐나 보다. 숲으로 이루어져 있던 주위가 이제는 농민들이 가꾼 고추밭, 인삼밭으로 바뀌어 간다. 누군가 키우는 수만 마리의 꿀벌의 날개 짓 소리도 들려온다.

저 멀리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후사동 마을이다. 지나는 집집마다 마당에는 널어놓은 고추며, 농산물이 가득가득하다. 올 한해 땀 흘려 거둬들인 풍성한 결실이었다.

마을 중앙에 노란 은행나무 밑 평상이 있다. 평상에 앉아 우리가 지나 온 그 길을 돌아보았다. 길은 어느새 숲 사이로 모습을 감추었다. 우리에게 아름다움을 마음껏 보여주었던 가을 산에 감사함을 전한다. 미풍에 '우수수' 은행나뭇 잎이 흩날린다.

떨어지는 은행잎 따라 올려다 본 곳에는 알알이 은행이 열려 있다. 아직, 가을이 우리 곁에 남아 있음을 느낀다. 아마도, 한 번의 가을비와 바람이 불어온다면 울긋불긋 풍성했던 가지도 앙상하게 남을 것이다. 하지만, 이날 우리가 보고, 느꼈고, 즐겼던 가을 산행의 추억은 영원할 것이다.

2008년의 가을 산행. 이번 산행은 험하지 않은 임도를 걷는 것이었기에 산행이라고 부르기에 아쉬움이 남을 수도 있겠지만, 쉽게 오를 수 있는 길이었기에 어쩌면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가을 산의 매력에 다가갈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가을 산. 내년 이맘때 쯤 올해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만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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