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영의 잡동사니>

아버지와 아들이 당나귀를 몰고 길을 가고 있는 중에 길손을 만났는데 "쯧쯧, 미련한 인간들 같으니라고, 당나귀에 얘라도 태우지, 당나귀를 그냥 몰고 간담" 그 말을 들은 아비는 그럴듯 하다싶어 아들을 당나귀에 태우고 가는데 다시 길에서 마주친 사람은 "저런 몹쓸 것들 봤나, 어째 애비는 걸어가고 어린 것이 당나귀를 타고가노"라고 하자 아비는 그 또한 그럴듯하다고 여겨 아비까지 당나귀에 올라탔다. 한참을 가다 또 만난 길손은 "말 못하는 짐승이라고 너무들 하는구먼. 작은 당나귀에 둘씩이나 타다니"라고 핀잔하였다. 그 말을 들은 아비는 그 또한 옳다고 생각하고 당나귀의 앞발과 뒷발을 각각 묶어 들대에 꿰어 두 부자가 당나귀를 매고 개울을 건너다 그만 개울에 풍덩 빠졌다고 한다.

위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우화로 줏대 없이 남의 말에 쉽게 흔들리는 사람을 빗댄 얘기다.
그런데 실상 보통사람들이 정확한 주관을 가지고 살기는 힘들다. 더구나 복잡다기한 현대에 사는 사람들은 많은 사물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기가 어렵다. 따라서 분야마다 전문가가 있고, 그 전문가의 조언에 의하여 결정하는 일이 흔하다.

그런데 그 전문가들의 조언이 항상 옳은가하면 그건 아닌 것 같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석사, 박사가 차고 넘치지만 나라 돌아가는 모양새가 전문적이지도 않고 상식적이지도 않은 점이 너무 흔하다.

근래 중앙정부 지방정부 할 것 없이 어떤 정책이나 시책이 있으면 걸핏하면 당해 전문가들에게 검토하도록 용역을 주는데 만일 그 전문가들의 용역결과가 제대로라면 실패하는 시책도 적었을 테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이는 전문가들의 한계이기도 하다. 정책이나 시책은 그 결과를 미리 알 수는 없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자신들의 지식을 통하여 시책의 결과를 예측하고자 하지만 미래를 예측하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전문가들의 처지에 따라서 주관이나 이해관계가 끼어들면 그 용역결과는 더욱 신뢰하기 어렵게 된다. 지금 경제전문가들인 재정경제부 고급관료들은 참여정부 시절에는 종부세가 정당하다고 했다가 이명박정부 들어서는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전문가들이 한 입으로 두 말하는 사례도 있는데 각각 다른 전문가들의 시각이 모두 맞을 리 없다.

한편 전문가들이 만능도 아니다. 심리학자가 자기 마누라 마음하나 몰라주는 경우가 수두룩하고, 국어선생이 연애편지 한 장 제대로 못 쓰는 경우가 많다는 말은 이론과 실제의 틈새가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앞서의 당나귀 우화에서의 길손들도 아마도 그 방면 전문가들일지도 모른다. 예컨대 첫 번째 길손은 요새말로 실용주의자, 두 번째 길손은 충효사상이 밴 유학자, 세 번째 길손은 아마도 동물보호주의자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들은 어디까지나 자신들의 주관적인 시각으로만 사물을 판단하고 있다고 우화는 비유하고 있다.

전문가들의 조언이야 어떻든 잘되나 못되나 결과는 당사자가 책임질 수밖에 없다. 요즈음 주식이나 펀드로 쪽박 찬 사람들이 수두룩한데 그들이 스스로의 판단으로만 전 재산을 털어 투자했을 리는 없고 그 방면 전문가들인 펀드매니저나 애널리스트의 조언을 들었을 테지만 그들이 책임져줄 리는 없다.

대통령이나 자치단체장 같은 최고책임자의 경륜과 판단은 그만큼 더 중요하다. 전문가들 나름대로의 시각에 따른 조언에 주관 없이 휘둘리다 자칫 잘못되면 그 결과 고통은 고스란히 국민, 또는 주민이 감당해야 되기 때문이다.

정부수립 60년이 되는 해다. 우리 국민들 그동안 60년간 지도자를 뽑아봤는데 몇 번이나 최선의 선택을 했는지 자문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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